계속 떠들 것이다 "그러면 60만이 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삼성 제품을 보이콧하지 않나요?"
나의 ‘삼성 보이콧’은 내 의지의 소산이라기보다는 20여 년의 유럽 생활에서 얻은 직관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재벌 기업을 용인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원에겐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본 없이 품을 팔아 생존해야 하는 노동자라도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자존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기업 정규직들이 기득권층에 편입되면서 변혁적 노동운동의 동력까지 상실하게 되었다.
하 수상한 시절, 갈수록 희귀종이 되어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그러면 지하철 2호선 강남역 8번 출구로 가라. 거기에 <또 하나의 약속>에서 화면 가득히 다가왔던 늠름한 황상기 씨가 있고, 반올림이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속 떠들어댈 것이다. "한 놈만 패자!", "아픈 데를 때리자!"고.
2015. 10. 22. 결국 황상기 씨와 반올림은 승리했으나 반쪽 승리였다.
우리는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나쁜 것에 익숙해지면 더 나쁜 것을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살아 있는 생명을 내 손으로 가꿀 때 나도 삶의 의지를 포기할 수 없었다"
차광호가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생명을 가꾸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회를 향해 ‘생명에 대한 예의’로 응답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조합원들의 소비와 소유 욕망에 밀려서 연대 정신을 팔아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다.
법이란 "강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판결마저 외면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노동이 노동을 무시하면서 자본의 횡포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조합원들의 소비와 소유 욕망에 밀려서 연대 정신을 팔아버린 결과가 아닐까 싶다.
법이란 "강자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판결마저 외면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노동이 노동을 무시하면서 자본의 횡포에 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노동자는 많지만 노동자 의식은 드문 곳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기 어렵고, 연대 의식의 토대 또한 탄탄해지기 힘들다.
2015. 7. 21. 차광호 씨는 마침내 다시 땅을 밟았다.
나는 앨라이다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볼테르는 광신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이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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