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명왕
오른손에 칼, 왼손에 오라를 잡고 성난 얼굴을 한 불교 팔대 명왕의 하나

대일여래의 화신이라고 하는 부동명왕이다.

청과(울외-참외)밭에 묻혀있던 象이라서 청과부동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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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라져 가는 영혼의 애틋함을, 모든 것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연기를 내며 남아 있는 증오의 끈질김을.

그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미시마야의 별난 괴담 자리는 계속될 예정이다.

청과 부동명왕 | 미야베 미유키 저자, 김소연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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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보물이다.
이 세상이라는 말의 고귀한 열매다.
고맙다, 고맙다.
우린보님, 정말 고맙습니다.
- 본문 중에서

비극을 겪은 소녀의 집념이 만든 가족을 지키는 인형,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는 붓,
그리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여자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

아이를 갖지 못해 쫓겨난 여자.
자식을 잃은 죄를 뒤집어쓰고 이혼당한 여자.
심한 시집살이에 소처럼 부려먹히다 도망친 여자.
살던 곳에서 쫓겨나고 죽어서도 들어갈 무덤조차 없는 여자………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는 여자들이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황폐해진 절 동천암으로 모여든다. 그리하여 서로 돕고 의지하며절터의 생활을 꾸려가던 어느 날 절 앞에 만든 텃밭에서 밭일을 하다가땅 속에 묻혀 있던 부동명왕상을 발견하는데,

한편 오치카의 산달을 맞아 혹시라도 부정이 탈까봐 괴담 자리를쉬고 있던 도미지로에게 이야기꾼이 찾아온다.
이야기꾼은 곧 아기를 낳을 임부 오치카에게 힘을 빌려주고수상한 자들로부터 지켜주겠노라며 방금 땅에서 파낸 듯한 부동명왕상을 도미지로 앞에 내놓는다. 이 수상한 이야기꾼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가 등에 업고 온 부동명왕 상은 과연 오치카와 아기를 지켜줄 수 있을까.

옮긴이 김소연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현재 출판 기획자 겸번역자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교고쿠 나쓰히코의 웃는 이에몬」, 「엿보는 고혜이지, 하타케나카 메구미의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미야베 미유키의 ‘마술은 속삭인다』, 「외딴집」,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괴이」, 「흔들리는 바위」, 「메롱」, 「흑백』, 「안주』, 「그림자밟기』,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맏물이야기」, 「십자가와 반지의초상, 사라진 왕국의 성」, 「희망장」, 「삼귀」, 「금빛 눈의 고양이」,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없다」, 「눈물점」, 「영혼 통행증」,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덴도 아라타의 영원의 아이 마쓰모토 세이초의 짐승의 길」, 「구형의 황야』등이 있으며 독특한 색깔의 일본 문학을 꾸준히 소개, 번역할 계획이다.

서007
청과 부동명왕013
단단 인형167
자재의 붓313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 359
편집자 후기481

연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에도 시대에 관해 공부할 때마다 부당한 사회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절감하곤 합니다. 현실에서는 일이
‘이렇게‘ 쉽게 진행되지 않지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써내려갔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가 흑백의 방에서 들려주는 오싹하지만 따뜻한 4가지 이야기!

【청과 부동명왕]
오치카의 출산을 돕겠다며 부동명왕을 짊어지고 미시마야를 찾은 여자와 그녀의 동료들

【단단 인형]
비극적인 일을 당한 소녀의 원한과 집념이 만든,
가족을 지키는 인형

【자재의 붓]
누구든 원하기만 하면
자유자재로 걸작을
그려낼 수 있는 마성의 붓

[바늘비가 내리는 마을]
정체를 짐작하기 힘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자란 소년의 이야기

청과 부동명왕 속에는괴담으로서의 두근거림, 미스터리로서의 흡인력, 판타지로서의 환상적인 묘사가 모두 담겨 있다.
어떻게 미야베 미유키는 이토록 굉장한 이야기를연이어 만들어낼 수 있는 걸까?
《아사히 신문》이 한 권의 책 中

도 간다 미시마초에 있는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는 ‘흑백의 방’이라는 객실에 손님을 초대하여 조금 특이한 괴담 자리를 마련해 왔다.

한 번에 부르는 이야기꾼은 한 명뿐. 이를 마주하여 듣는 이도 한 명이고 이야기도 하나. 어두운 밤에 해야 한다고 고집하지도 않고 초를 켰다 껐다 하지도 않는다.

"이야기하고 버리고 듣고 버리고."

이야기꾼은 이야기하여 추억의 짐을 내려놓고, 듣는 이는 받아 든 짐을 흑백의 방에만 넣어 두고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에 걸쳐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간다. 때로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인생의 덧없음을, 사랑의 아름다움을, 사라져 가는 영혼의 애틋함을, 모든 것을 다 태우고도 여전히 연기를 내며 남아 있는 증오의 끈질김을.

가루눈이 춤을 추듯 내리고 있다.

달력상으로는 초봄이지만 추위가 전혀 가시지 않았다.

도미지로는 사실 잠깐 외출할 작정이었다. 모처럼 눈이 오니 장부와 휴대용 필묵을 들고 간다 일대를 산책하며 그림을 몇 장 그리려고 했는데 그저 연습을 위해서이니 누구에게 보여 줄 생각도 없어서, 말없이 가게를 빠져나갔다가 사과의 뜻으로 군고구마라도 들고 돌아오려고 했다.

그림자는 빗물통의 간소한 지붕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커서 마치 지붕을 뚫고 튀어나온 듯 보였다. 체격도 상당했다. 그래서 빗물통의 ‘그늘에’ 있었지만 전혀 몸을 숨길 수 없었다.

유키보즈雪坊主
산이나 언덕에 눈이 가득 쌓여 나무를 덮은 모습을 스님의 머리에 빗댄 것. 눈이 많이 쌓였을 때 나타난다는 요괴를 말하기도 한다

이 댁 지붕 위에 눈구름 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벚꽃색 삿갓구름이 걸려 있던데, 과연 경사의 표식이었군요.

오늘 가게 사람들에게 내놓을 간식으로 사 두었는데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지금 먹어 버리자. 남이 싫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몇 번이나 인대를 시키는 비정한 형님에게 먹일 수야 없지.

찬찬코
어린아이용의 소매 없는 하오리. 대개 솜을 안에 넣어 방한용으로 입는다

그렇다. ‘업고 있다’는 말을 써야 한다. 한편으로 이걸 ‘짐’이라고 부르면 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실례하겠습니다. 교넨보 님의 소개를 받고 온, 도가야 고즈키무라 마을에 있는 동천암洞泉庵의 이네라고 합니다."

"우린보 님은 부동명왕(오른손에 칼, 왼손에 오라를 잡고 성난 얼굴을 한 불교 팔대 명왕의 하나)이시군요."

도카이도東海道
에도 시대의 5대 가도 중 하나. 에도에서 교토에 이르는, 해안선을 낀 가도로 53개의 역참이 있었다

"그 업의 화신이라고 할까요…… 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상한 자가 오치카의 근처에…… 최근에는 오치카의 가족이자 두 번째 청자인 제 앞에도 나타나게 되어서요."

야무진 오나쓰가 난봉꾼에게 몸을 허락하고 만 까닭은 먹고사는 데 쫓기는 삶 속에서 만난 첫사랑에 아름다운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야무지기 때문에 더더욱 달콤한 꿈에 넘어가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투장묘投げ込み墓
유녀나 행려병자 등 몸을 의탁할 곳 없는 자들을 모아 묻은 곳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가족과 친족을 위해 열심히 일해도, 시집갈 데가 없고 아기를 낳지 못하면 객사한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단가 제도
특정한 절에 가문의 묘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절에 시주를 하고 절은 가문의 장례를 담당하는 제도

우란분
음력 7월 보름에 조상의 명복을 비는 날. 음력 7월 13~16일 동안, 죽은 사람의 혼령을 사후의 괴로운 세계에서 구제하기 위한 불사가 열리며 성묘도 간다. 여러 종류의 곡물을 조상의 혼령 외에도 무연고자의 혼령, 아귀에게 공양하며 명복을 기원한다

피안彼岸
춘분, 추분의 전후 3일씩 7일간

도테라
크기가 넉넉하고 소매가 넓은 솜옷. 겨울에 침구로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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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2000년대 이후로 빠르게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민자들의 거주지 테너먼트(Tenement)와 녹슨 비상 철제 계단으로 상징되는 이 거리의 풍경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지난 세기 막 뉴욕에 도착한 수많은 노동자가 터를 잡은 곳이자 전위적인 작가들과 음악가들이 모여 살았던 로어이스트사이드는 이제 뉴욕에서 가장 힙한 동네 중 하나가 되었다.

벨벳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루 리드가 월세 38달러를 내며 살았던 방은 이제 월세 3800달러를 내도 부족한 곳이 되었다. 오래된 노포들이 있던 자리는 결국 헐리고 그 자리에 더 많은 스타벅스와 자라 매장이 생길 것이다.

모두에게 무료이다. 이 공원이 가진 중요한 장점이다. 불필요할 정도로 크고 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모두가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다. 도시의 공원 입장료가 무료인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시민이 낸 세금으로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공원이나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합의는 생각보다 꽤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뉴욕에는 그래머시파크처럼 인근 주민만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공원들이 남아 있다.

센트럴파크가 처음부터 모두를 위한 공원이었던 건 아니다.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 자리에 터를 잡고 살던 아일랜드 농부들, 세네카빌리지에 모여 살던(비어 있는 땅을 무단 점유한 스콰터로 취급당했지만 교회도 학교도 있는 엄연한 마을이었다) 흑인들을 쫓아내야 했다.

한국의 카페가 거실의 기능을 대신하는 공간이라면 뉴욕의 공원은 공공화된 정원 또는 앞마당이다(뉴욕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일 것 같은 차가운 뉴욕에서 센트럴파크는 돈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따뜻한 상징물이다.

뉴욕의 겨울은 너무나 혹독해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이 센트럴파크의 어린 오리들이 겨우내 어디로 사라져버리는지 걱정하는 게 바로 이해될 정도다(저도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부디 잘 지내고 있길 바랄게요).

센트럴파크는 뉴욕을 낭비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워낙에 유명한 재즈 클럽이기 때문에 언제 가더라도 성지 순례 느낌으로 온 것 같은 재즈 팬들이 몇 사람 꼭 있다. 특히 재즈 저변이 가장 넓은 나라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서 온 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그분들은 거의 90퍼센트의 확률로 졸고 있다. 8시 공연은 한국과 일본에서 온, 시차 적응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가장 졸릴 시간이기 때문이다(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고 한다).

한국의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념일 분위기라면 뉴욕의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더 가깝다. 미국에서도 크리스마스란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 선물을 나누고 취업이라든가 결혼이라든가 잔소리를 주고받으며, 종종 서로 싸우고, 칠면조 로스트 같은 비효율적인 음식을 만들어 먹는 날이다.

나의 크리스마스는 영원히 이들의 크리스마스와 같아질 수 없겠지만 뉴욕이란 도시는 너무나 다양해서 어딘가에는 나 같은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안도감.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장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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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al du Pays, 프랑스어예요. 일반적으로는 향수나 멜랑콜리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양억관 옮김, 민음사, 2013.

메뉴판을 보니 제주산 양식 광어회가 눈에 띈다. 주문을 받는 분은 여기 광어가 한국에서 온 거라고 몇 번을 강조하고 돌아갔다. 뉴욕 퀸스에서 제주도 출신 생선을 만나다니, 21세기의 놀라운 공급사슬과 유통망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탄 시간만이라도 잠시 책을 본다든가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시민들에게 제공하려는 MTA의 배려일 리는 없고, 어차피 뉴욕의 지하철은 오프라인의 작은 평화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하우스턴스트리트를 걷다가 친구에게 한마디 들었다. 길에서 나는 지린내를 언급하는 것은 뉴요커답지 못한 태도라는 것이다.

"우리 내려서 걸을까?"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교통 체증이 심한 뉴욕은 택시보다 걷는 게 더 빠를 때가 있다. 하지만 꼭 그래서 걷자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오랜만에 인파에 묻혀 타임스스퀘어를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먹는 피자는 동네에 있는 베쪼(Vezzo)라는 식당의 루콜라를 잔뜩 올리고 네 가지 치즈로 토핑한 화이트치즈피자다. 완벽한 피자란 언제나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피자’이기 때문에.

줄 서서 먹는 치킨오버라이스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길거리 음식은 아마도 할랄가이즈의 치킨오버라이스일 것이다. 할랄(halal)은 아랍어로 ‘허용된’이라는 뜻이다. 이슬람 율법은 먹을 수 있는 동물의 종류와 도축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이 계율에 따라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허용된 음식을 할랄이라고 한다.

금년 들어 처음으로 오이를 먹는다. 오이의 푸른빛에서 여름이 오고 있다. 5월의 푸른 빛깔 맛에는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아련하고도 간질거리는 비애가 있다.*

* 다자이 오사무, 『여학생』, 전규태 옮김, 열림원, 2014.

과거 유럽에서 넘어온 노동자들은 로어이스트사이드에 많이 정착했다. 흔히 뉴욕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모여 있는 ‘용광로(melting pot)’라고 묘사하는데 로어이스트사이드는 뉴욕이라는 용광로에 쇳물이 부어지는 곳이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유대인 이민자들의 흔적은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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