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 사전 《르 프티 로베르Le Petit Robert》에 따르면 수도는 "한 국가나 지방에서 제1열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정의되어 있다. 《르 프티 라루스Le Petit Larousse》 사전에는 "국가나 정부의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소"라고 적혀 있다. 두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중세 유럽의 수도는 불완전하게, 간헐적으로, 그리고 뒤늦게 탄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인류 문명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지금의 이라크)에서 탄생했듯이, 수도 역시 이 지방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지명은 그리스어로 가운데를 뜻하는 ‘메소’와 강을 뜻하는 ‘포타’의 합성어로, ‘두 강 사이의 땅’을 의미한다.
수메르인에 이어 이 지방을 차지한 아무르인은 기원전 20세기 무렵 우르 북쪽(바그다드 남쪽 80km)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 이 도시의 이름이 바빌론이다.
수도는 이동한다. 생명체의 탄생과 소멸처럼, 수도 역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일정 기간 수도의 역할을 하다가 새로운 도시에 그 자리를 내어준다.
왕의 거처와 신전이 있는 도시를 수도라고 볼 때,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는 멤피스에서 테베로 옮겨갔고,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시대에 오면, 알렉산드리아가 명실상부한 이집트 왕국의 수도가 된다.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가 수도가 된 것은 서기 7세기 무렵에 불과하다.
일찍이 중앙 집권 체제를 완성한 프랑스와 영국을 제외하고, 확실한 수도를 가진 나라는 드물었다. 독일의 경우 역사적으로 파리나 런던 같은 진정한 의미의 수도를 찾아볼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독일에는 수많은 공후국이 있었기 때문에 핵심적인 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역사적으로 파리나 런던 같은 진정한 의미의 수도를 찾아볼 수 없다. 신성 로마 제국에 속해 있던 독일에는 수많은 공후국이 있었기 때문에 핵심적인 수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나라의 수도는 역사적 이유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간다.
이 분류는 역사 지리학자인 파운즈Pounds가 한 것이다. 그는 근대국가로 발전하는 유럽을 설명하기 위해 중핵지역core-area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여기서는 ‘중핵’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중핵 수도, 신중핵 수도, 이중핵 수도, 그리고 다중핵 수도로 수도들을 분류했다.
1. 불변의 중심도시, 중핵수도 중핵中核 수도는 유럽의 파리, 런던, 아테네 같은 도시를 가리킨다. 중핵이라는 용어가 ‘사물의 중심이 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뜻이므로, 전통적으로 한 국가에서 불변의 위치를 점하고 있던 수도를 중핵 수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로마, 파리, 런던, 아테네
2. 새롭게 부상한 신도시, 신중핵 수도 전통의 중핵 수도가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롭게 등장한 신도시가 수도로 부상한 나라들이 있다. 과거의 수도와 현재의 수도가 공존하는 나라가 여기에 속한다. 아울러 새롭게 건설된 신수도 역시 신新중핵 수도로 분류했다.
바르샤바, 뉴델리
3. 경쟁하는 도시들, 이중핵 수도 이중핵二中核 수도란 한 나라에 수도의 지위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여러 도시가 있는 경우다. 이 책에서는 수도가 2개였던 국가를 가리킨다.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와 스페인이다.
모스크바, 마드리드
4. 여러 도시가 수도의 후보! 다중핵 수도 다중핵多中核 수도는 한 왕국이나 제국에 여러 개의 도시들이 수도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했던 경우를 가리킨다. 독일은 긴 역사 동안 여러 도시들이 수도의 지위에 있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여러 개의 수도를 확정한 나라에 속한다.
베를린, 베른
로마의 건국이 살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까? 로마는 주변 국가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인다. 마침내 로마는 지중해의 패자가 되었고, 유럽의 대부분과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세력을 넓혀 나갔다.
로마의 별명은 ‘영원의 도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전 역사가 이 도시와 연관되어 있다. 내가 로마 땅을 밟게 된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의 탄생일이자 나의 진정한 삶이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을 밀라노에서 공포한 이유도, 당시 밀라노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기 때문이었다. 374년에는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면서 밀라노는 북부 이탈리아의 종교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 궁전의 제1정문인 황제의 문에는 "신의 은총과 허락으로 두 대륙의 술탄이자 두 바다의 지배자, 현세와 내세에서의 신의 그림자, 동방과 서방에서 신의 총애를 받는 자, 육지와 바다의 통치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성城의 정복자인 술탄……"이라고 적혀 있다.
몽골족의 등장
12세기 유럽인들에게 몽골족은 중국과 스텝steppe(러시아, 아시아 등지의 초원) 사이에 살던 여러 유목민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당대의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짐승처럼 살고 있고, 이끌어줄 종교나 법도 없으며, 야생동물이 풀을 뜯는 것처럼 그저 한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떠돌아다닌다."
"그들은 약탈과 폭력, 부도덕함과 방탕을 남자다움과 뛰어남의 징표로 생각한다."
카라코룸은 몽골어로 ‘검은 자갈밭’을 뜻하는 ‘Qara-Qorum’에서 나왔는데, 중국 문헌에는 ‘客喇和林(객자화림)’ 또는 ‘和林(화림)’으로 등장한다.
자금성에서 ‘금禁’은 금지한다는 뜻이다. 즉, 황제가 거처하는 궁궐은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다는 의미다. 영어로 자금성은 ‘Forbidden City(금지된 도시)’로 번역된다.
청나라는 이렇게 중화사상을 고집하는 한족뿐만 아니라, 변방에 살던 이민족의 종교 또한 제국의 경영에 도움이 된다면 수용했다.
로마 제국의 동북 지방의 국경이었던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그리고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등 많은 도시를 지난다. 가히 수도의 강이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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