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분자나 밀정이 아무리 많아도 반일, 척일하는 조선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놈이 그 점은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친일하는 그들은 조선인을 짓밟고 일본에 기생하면서 잘 먹고 잘 산다. 반대로 호의호식과는 담을 쌓게 될지라도 대개 조선인은 반일한다.

구국일념 의병 전사 어디 있나. 어디에 있나.
하느님도 임금 영웅도 우리를 구제치 못하리.
우리는 다만 우리 손으로 해방을 이루리. 자유를 누리리.
춥고 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될지라도
일제강도 무찌르고 우리나라 되찾으리. 꼭 찾으리.
간절한 의지 불굴의 용기로 싸우리. 빛나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끝내 끝끝내 이기리.

북로군정서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 여천이 그쪽 지휘부 성원이 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연합을 제의한 적이 있었다. 성사되지 않았다. 여천에게는 답을 않던 그들끼리 연합해 북로군정서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금년 3월에 독립군부에서 대한독립군으로 통지서를 보내왔다. 홍범도를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니 홍범도 총사령관은 북간도로 진출해 간도에 있는 모든 독립군을 지휘하라는 내용이었다.

여천으로부터 전투를 익힌 화일은 스물세 살 때부터 대한독립군 별동분대장 노릇을 해왔다. 화일로서는 홍범도를 독립군 총사령관에 임명한다는 독립군부의 통지서가 솔직히 가소로웠다. 모여서 회의는 할지라도 연합하지도, 합동하지도 않는데 무슨 군부軍部란 말인가. 무엇보다 그들은 주로 입으로 독립전쟁을 했다. 화일이 어떻게 생각하든 여천은 부대를 이끌고 북간도로 이동했다.

최진동 집안은 봉오동 일대의 광활한 토지와 임야를 소유한 거부로서 작년 3.1 만세운동 소식에 격동된 삼 형제가 뜻을 합쳐 의병을 일으켰다. 안무는 혜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간도로 와서 최진동 집안과 가까이 지내던 차였다. 대한군무도독부와 신민단과 대한독립군이 연합했다. 연합군 명칭이 북로독군부로 정해졌다. 대원들은 북로독군부가 어렵다며 쉽게 대한독립군으로 불렀다.

삼둔치는 봉오동 입구 서느락골에서 시오 리 밖에 있는 조선인 마을이다. 간도가 원래 조선 땅이라 골짜기마다 조선 사람이 살았다. 조선이 일제에 침략당하면서 살기 어려워 강을 건너온 인민들로 흔했다. 근 2, 30년 새 건너온 사람들이 삼둔치 일대를 일궜다. 그렇게 일군 전답이 상당했다. 독립군 비전투원들도 봉오동에서 인근 마을들을 오르내리며 땅을 일궜고 씨앗을 뿌렸다. 여천도 삼둔치에 여러 차례 들러 쉬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말을 하다 보니 어제 사령소에서 들었던 책망 투다. 잘했는데 너무 잘해버려 칭찬만 할 수 없는 상황.

훈춘 사건을 핑계로 일제 2만 5천여 병력이 제꺽, 위세 높게 간도로 들어왔다. 일본군이 곧 독립군 부대들 본거지를 토벌하러 나설 것이니 알아서 하라. 중국군에서 봉오동으로 통보해왔다. 대한독립군이 떠나지 않으면 봉오동이며 인근 마을 인민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었다. 사령관 최진동이 반문한다.

북로군정서 사령관 김좌진이 막사 앞으로 나와 맞이한다.
"어서 오십시오, 홍 장군님. 반갑습니다."
김좌진은 서른한 살이라 했다. 여천은 그가 젊다고 듣고 있었으나 실제 보니 훨씬 젊다. 북로군정서 지휘부에는 젊은이 여럿이 보인다.

대한독립군 부대장 겸 내무장 이원, 제1지대장 박승길, 제2지대장 안무, 제3지대장 최운산, 제4지대장 이천오, 제5지대장 강상모, 제6지대장 한영준, 제7지대장 김치명, 별동대장 이화일. 비전투부대도 다섯 지대로 나누고 비전투부대장으로 강시범을 임명했다.

9명이 건너온다고 전갈했는데 북로군정서에서는 12명이 나와 있다. 김좌진과 나중소와 이범석, 박영희, 강화린, 김찬수, 오상세, 이민화, 김훈 등과 이상룡, 지청천, 김동삼 등이다. 이상룡과 지청천과 김동삼은 서로군정서를 이끌던 이들로 최근에 북로군정서로 합류했노라 소개한다. 세 사람 다 여천과 안면이 있다. 어쨌든 만주와 간도 일대 어지간한 독립군 부대들이 북로군정서와 대한독립군으로 통합된 셈이다.

호랑이가 근방에 있다고 느꼈던 적이 네댓 번 됐다. 산속에서 문득 딴 세상인 듯이 느낄 때가 있었다. 새나 벌레가 움직이지 않고 바람조차도 멈췄다고 느껴지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그와 나만 여기 있는 것 같은 오로지한 때. 호랑이도 이쪽을 느끼는 것이라 여겨질 때.

여천은 그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호랑이로부터 물러났다. 결국 호랑이는 만나본 적도 없는 셈인데 백두산 호랑이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저쪽 분들은 다 양반님들 아닙니까? 김좌진 그분만 해도 조선서 천 석지기, 아흔아홉 칸 집 양반댁에서 나셨다면서요? 오늘 타고 오신 백마만 해도 참말 멋지더구먼요. 천리마는 몰라도 관우가 탔다는 적토마는 되겠다 싶고요. 저는, 우리 대장은 왜 저런 말이 없나 싶어 샘이 나고 속이 상하던걸요."

"그건 대장님이 상놈 출신이시라 하시는 말씀이고, 좀 전에 이 자리에 계셨던 저쪽 양반 출신 참모들 생각은 다를걸요. 통합하면 상놈들과 똑같은 지위가 돼버리니까 하기 싫은 거지요. 첨부터 그걸 느낀 우리 쪽 참모들은 배알이 꼬이니까 통합하기 싫은 거고요. 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죽든 살든 동지들과 전투를 치를 때 함께하는 기쁨을 느낀다. 어떤 위태 상황에서도 동지들이 있으므로 위태롭게 느끼지 않는다. 위태를 모르기에 두려움을 모를 것이다.

대한독립군 지휘성원들은 북로군정서 지휘부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 악감정까지는 아니어도 반감은 분명하다. 스무 명이나 되는 지휘성원 중에 당장 달려가서 돕자고 떨쳐 일어나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북로군정서 지원 문제는 회의할 시간이 없는바 대장 전권으로 결정하겠소. 우리 대한독립군은 구국 동지인 북로군정서를 지원하러 갑니다. 현재 시각이 11시 10분이오. 11시 30분에 출발할 수 있게 준비하시오. 그리고 별동대장!"

곧 도망쳐야 한다. 여기서 나가는 길에 4만 2천 일본군과 맞닥뜨려 전멸할지도 모른다. 이 청산리 곳곳에서 싸우고, 싸우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싸우다가 간신히 빠져나가 또 유랑하는 걸인들처럼 남의 나라 땅이 된 조선을 떠돌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목청껏 만세를 외친다. 피를 토하듯 절규한다. 만세, 만세,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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