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인도, 아시아의 해안을 지배하는 해상 제국으로 부상한 15세기 말. 수도 리스본Lisboa에서는 이제껏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던 신기한 장터가 열렸다.
부둣가에서 멀지 않은 도시 한복판, 펠로리뉴Pelourinho(형틀) 광장. 구매자들이 어슬렁거리며 살 ‘물건’을 살펴본다. ‘물건’들은 꿈틀거린다. 네 발 달린 짐승들? 아니다. 꼿꼿하게 두 발로 서서 앞을 응시하는 인간들이다. 벌거벗은 몸, 늠름한 몸매, 검은 피부. 이들의 손과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다. 각 사람의 목에는 헝겊 조각 같은 것이 걸려 있다. 양피지에 적어 놓은 ‘가격표’이다.
크레모나Cremona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주의 도시 중에서도 결코 큰 편은 아니지만 바이올린의 세계에서만은 홀로 우뚝 솟아있는 거봉이다. 크레모나가 바이올린의 성지가 된 것은 과르네리Guareri와 스트라디바리Stradivari(라틴어로 스트라디바리우스Stradivarius)라는 두 현악기 명장의 가문이 크레모나 출신으로 이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중해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모나코Monaco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국가다. 면적이 2.1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 서울 여의도의 면적도 채 안 되는 크기인 데다 여의도처럼 고른 평지도 아니다.
이 좁은 나라는 모든 이에게 활짝 문이 열려 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동산을 취득할 수 있다. 집값이 좀 비싸긴 하다. 평균 1제곱킬로미터당 10만 유로로, 한국 돈으로는 1억 3~4천만 원이다. 그러나 부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나라가 없다. 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그러면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까? 이 나라 재정의 비밀은 이름 하나에 담겨 있다. 몬테카를로 카지노Casino de Monte Carlo.
몬테카를로 카지노. 세계 어디에서 어떻게 벌었는지 알 수 없는 거액을 물 쓰듯 하는 외국 손님들만을 위한 이 도박의 성전은 다른 이들에게는 몰라도 그리말디 가문에게는 무한한 축복이다. 카지노 덕에 소득세를 안 내는 모나코 시민들에게도 복덩어리임은 분명하다.
뤼베크에 남아 있는 것은 한 위대한 작가의 자취만은 아니다. 돈을 벌되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신용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상업을 지탱했던 자랑스러운 전통이 그 도시에 서려 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스페인 북쪽 도시 산티아고Santiago까지 매일 걷고 또 걷는 오늘날의 ‘순례자’ 대부분은 일반 관광객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 관광 상품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1985년만 해도 불과 690명만이 그 길을 완주했으나 2017년부터는 그 수가 30만 명을 넘었다.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관광객이 아니라 ‘순례자’의 발길을 안내했다.
‘산티아고’는 도시이자 한 사람의 이름이다. 인종은 유태인, 원래 이름은 ‘야고보Jakobus’.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활약한 예수의 제자로, 예수의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했다. 최초의 순교자 중 한 명인 그는 일찍이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라틴어 ‘성 야고보’(스페인어로는 Sant Iago)가 스페인 토착어로 변하며 ‘산티아고’가 됐다.
주교가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왕도 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즉각 거기에 교회를 지을 것을 명령했다. 교황도 이 소식을 듣고 지체 없이 기적임을 인정했다. 귀한 성인의 시신을 찾는 데 별빛이 결정적으로 기여했기에 산티아고의 지명에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의 ‘데 콤포스텔라de Compostela’가 덧붙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중세 유럽인 사이에서는 기독교 문명권의 3대 순례지 중 하나로 꼽혔다. 다른 두 성지는 예루살렘과 로마. 둘 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도시다. 반면에 산티아고는 오로지 성 야고보의 시신 덕분에 생겨난 소도시로, 엄청난 영예가 아닐 수 없었다.
‘비첸차Vicenza’라는 도시의 이름은 한 인물의 이름,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1508~1580)와 떼어놓을 수 없다. 그가 남긴 건물들은 이 도시가 자랑하는 문화 자산이다.
비첸차 시내와 외곽에 흩어져 있는 23개의 팔라디오 건축물을 감상하려면 장시간의 산책을 각오해야 한다. 눈이 즐거우려면 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건물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다.
여럿이 모여 공 하나를 차는 놀이를 영국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축구football’라고 불렀다. 정확한 규칙은 알려진 바 없으나 이 ‘축구’는 일종의 민속놀이로, 마을과 마을이, 도시의 한 동네와 다른 동네 사람들이 집단으로 대결하는 경기였다. 공놀이는 쉽게 패싸움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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