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북‘이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그 점을 염두에두고 기록해나갔다. 그래서 바람이 하나 있다.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쉽게 찾지 못했던 여러 국립묘지를, 이 책 한 권 들고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떠나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장소 한 곳당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단언컨대 국립묘지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고, 누가 잠들었는지 알고 현장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끼게 될 보람은 투자한 시간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이다. - P4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의 묘역에서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 P5
이외에도 우리 정부가 친일파로 공인하지 않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비공인 친일파 5인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최중심부에 잠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등이 있다. - P5
제2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묘지다. 충남의 자랑인 계룡산 줄기 따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 P5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곳 국립대전현충원 역시 국립서울현충원과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이들 중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이 있다. 2020년 7월 10일백수를 누리고 사망한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 역시 논란 끝에 장군제2묘역에 영면했다. - P5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뤘다. 서울시강북구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민주열사와 애국지사의 무덤,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제3부는 앞선 1부와 2부에 비해 덜 무겁다.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든 휴식 공간인 수유리4.19국립묘지를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펼쳐놨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과정과 희생을 거쳐 탄생하게 됐는지 수유리 4.19 국립묘지 곳곳에 잠든 지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 P6
한눈에 보는국립서울현충원추천 답사 •서울현충원 만남의광장→• 현충탑→・부부위패묘(김홍준)→• 이승만대통령묘소→• 유공자제1묘역(백낙준)→•장군제1묘역(김백일, 채병덕, 신응균)→•박정희대통령묘소→•장군제3묘역(이종찬, 정일권)→•약수터 →•장군제2묘역(신태영, 이응준, 임충식)→•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유공자제2묘역(안익태 등)→●임시정부요인묘역(이상룡, 박은식, 신규식, 지청천, 김성숙 등)→•김익상, 이재명, 박열 등→•충열대→•애국지사묘역(박재혁, 김상옥, 조명하, 이종암, 남자현 등)→•만남의집 ‘갈비탕으로 마무리 - P14
국립서울현충원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사망한 국군장병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동작동 일대에 국립묘지를 조성할 것을 결정했고, 1954년 삼일절을 기념해 공사가 시작됐다. 2년이 지난 1956년 4월 대통령령으로 첫 번째 안장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중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묘였다. 이듬해인1957년 4월부터 신분이 확인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 P16
국가공인 친일파‘도 일곱 명이 있다. 바로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특히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잠든 신태영과 이응준의 묘소 위치가 문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애국지사묘역 머리맡에 있다. 지사들의 묘소를 바라보고 참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국가공인 친일파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흘렀다. - P17
대통령묘소 박정희1명
장군제1묘역14명 강태민(6번)김용기 (140번)김정호(39번)김백일(국가공인/19번)문용채(72번)박범집(1번)박춘식(92번)신학진(275번)채병덕(12번)안병범(232번)최창언(126번)양국진(118번)신응균(국가공인/288번)윤태일(134번)
장군제2묘역3명 신태영(국가공인/3번)이응준(국가공인/6번) 임충식(2번)
장군제3묘역6명 김용국(20번)이종태(42번)김응조(52번)정일권(4번)김일병(40번)이종찬(국가공인/1번)
유공자제1묘역3명 김정렬(33번)백낙준(국가공인/26번)엄민영(3번)
유공자제2묘역2명 안익태(7번)조진만(8번)
위패2명 김호량(부부위패 02-70)김홍준(국가공인/부부위패05-197)
기타 김준원(충혼당2-212-143)박성도(충혼당2-213-127)안광수(7묘역-5-08)최복수(54묘역-4-2195)4명 - P19
임시정부요인묘역 임시정부요인묘역은 1993년 중국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치되어 있던 임시정부 요인 다섯 명을 모셔오면서 조성됐다. 매우 잘한 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국가공인 친일파 두 명이 잠든 장군제2묘역 하단에 묘역을 조성했다. - P20
김영삼 대통령이 묘역 하단에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글까지 새겨 넣은 제단을 조성하며 독립 의지를 고취했으나, 결과적으로 친일파의 무덤 아래 지사들을 모신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됐다. - P20
2020년 4월 기준,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잠들어 있는 분들이다. 박은식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상룡 초대국무령,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신규식 국무총리 대리 및 외무총장 역임김동삼 만주 호랑이라 불렸던 서로군정서 참모장지청천 군무총장 및 광복군 총사령을 역임 - P20
오영선 법무총장. 홍진 국무령 박찬익 외무총장. 이유필 내무총장 양기탁 국무령. 황학수 생계부장 노백린 국무총리. 조경한 비서장 김인전, 손정도, 이강 의정원 의장 윤세용 국무위원 - P21
유관순 3·1운동의 불꽃 이상설과 이위종 헤이그 특사 홍범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냄 오동진 정의부 총사령 김익상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폭탄 의거를 유일하게 성공시킴
등 독립운동을 한 의사와 열사 115위와 한국전쟁 중 납북된 조소앙, 엄항섭, 박열 등 15위도 함께 모셔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이자 5.16군사혁명의 주역인 김종필 전총리가 무후선열제단 헌시비를 작성했다. - P22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 아래쪽으로 조성된 묘역이 독립유공자들이 잠든 곳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이 직접 작성한 소개 글이다. 애국지사 및 임시정부 요인, 무후순국선열을 통틀어 추모하는 충열대가 있다. 1906년 을사5적 처단을 시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한 기산도, 상해의열단 소속으로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계몽운동을 벌인 서재필, 친일 외교 고문인 미국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를 미국에서 척살한 장인환과 전명운, 3·1운동에 참여한 이종일, 권병덕, 라인협 등 민족대표 14위와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23위가안장되어 있다. - P24
간도특설대 중대장에서 여순사건 계엄사령관으로1946년 육군 중위로 임관한 김백일은 불과 4년 뒤인 1950년에 대한민국 육군 소장에 오른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 진압이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 2000여 명이 중위 김지회 등을 중심으로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여수와 순천 지역에 거주했던 무수한 민간인까지 살해됐다. - P29
김백일의 조부 김영학은 만주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만세시위를 전개해 간도지역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손주인 김백일의 길은 달랐다. 김백일은 열아홉 살 때인 1936년 일제가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의 펑톈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향후 간도특설대의 핵심이 되는 신현준, 김석범, 김홍준, 송석하 등을 만났다. 펑톈군관학교를 나온 김백일은 1938년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창설된 간도특설대에 설립부터 기여했다. 해방 때까지 김백일은 간도특설대에서 중위를 거쳐 1944년 대위에 진급한 뒤 중대장에 임명됐다. 김백일의 간도특설대 활동을 높이 평가한 일본 만주국 정부는1943년 김백일에게 훈5위에 해당하는 ‘경운장‘을 수여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김백일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 P31
간도특설대가 집행했다는 삼광정책이란 "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며, 모두 빼앗는다"는 뜻으로, 위원회는 "특설대 설립부터 해산까지108 차에 달하는 토벌 활동을 전개했고 강간, 강탈, 고문, 구타, 방화 등죄악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 P33
국가공인 친일파 신응균은 1921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자 30년 넘게 일본 군인으로 복무한 친일파 신태영의 장남이다. 신응균이 태어날 때 신태영은 일본 나고야 3사단에서 복무 중이었다. - P37
신응균은 아버지 신태영을 따라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20세가 되는 1940년 2월에 53기로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육군과학학교 포병과, 육군중포병학교에서 신식 군사기술을 습득한다. 1943년 12월에대위로 진급한 신웅균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발발하자 일본군 장교로 참전했다. 이 점이 신응균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하는 주된 이유가 됐다. - P37
2020년 1월 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광복회 시무식을 진행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명당자리인 이곳에 잠들어 있다"면서 "이런 이들을 두고 (극우 언론에서) 국민화합과 단결을 외치는데 이게 일제강점기 내선일체와 뭐가 다른가"라고 일갈했다. - P46
그러나 장군제2묘역 입구에 2020년을 맞아 새롭게 세워진 현판에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신태영 중장 등 6위가 모셔져 있다"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장군들의 숭고한얼을 기리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만 기록됐다. 친일 행적과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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