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58~60
2007년 4월 5일 북악산이 개방되던 날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북악산의 도시공학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도대체 얼마나될까요? 이 산을 푹 떠서 뉴욕이나 파리에 내다 팔면 얼마를 받을까요? 이런 아름다운 공간을 대통령이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문화재청의 정성 어린 정비작업을 거쳐 대통령이 된 지 4년 만에 완전 개방해 시민 여러분과 함께 오르게 되니 정말 기쁩니다.

별것도 아닌 일이 그렇게 힘들었다
우선 내가 문화재청장에 부임하게 된 것부터 간단치 않았다. 참여정부 인수위는 1급 관리직이었던 문화재청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해서 전문가에게 맡길 방침이라며 내게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문화재청은 현법기관이므로 차관급이 되려면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니 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구두로 내정을 받고 기다렸지만 당시는 여소야대였던지라 정부 뜻대로 되지 않아 1년이 지나도록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않았다. 그동안 내 처지는 아주 애매해서 무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었을 때는 노대통령의 탄핵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나도 아예 잊고 살았는데 6개월 지나 대통령이 업무에복귀한지 얼마 안 된 2004년 9월 1일 청와대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유교수님, 비서실장께서 오전 중에 청와대로 급히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지금 제주도에 있습니다.˝
˝아이쿠, 큰일났네요.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전화가 다시 왔다.
˝오늘 12시에 문화재청장으로 임명한다는 발표가 있을 겁니다.˝
˝어, 그거 안 되는데요.˝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우리 집사람한테 물어봐야죠.˝
˝네-에?˝
나는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와서 문화재청장을 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냉정하기가 돌부처 같은 집사람은 잠시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거긴 월급 얼만데?˝
벼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해볼 만한 직장‘이면 가서 해보라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수위의 구두발령‘ 후 1년 반이 지나 문화재청장이 되었다. 문화재청은 과연 일해볼 만한 직장이었다. 문화재의 소극적인 관리에서 적극적인 활용으로 정책을 바꾸어 먼저 경복궁 경회루를 43년 만에 개방하니 국민들이 좋아했고 경복궁도 자못 활기를 얻었다. 나는 한양도성의 북악산 성곽도 어떻게 하면 개방할 수 있을까 준비했다.

하산길에 성벽 밑에서 잠시 쉬는데 노대통령이 내게 말했다.

˝유청장님이 신문사에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 지면을 내주겠지요? 어느 신문에는 이 좋은 산을 대통령이 독차지하면 되겠느냐고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좀 기고해주십시오.˝

대통령이 이처럼 북악산 개방에 뜻을 보인 것이 놀랍고 반가웠다.

˝개방하라는 뜻이죠?˝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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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2-09-24 15: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이라는 다큐를 보고 울었습니다.

대장정 2022-09-24 21:27   좋아요 1 | URL
책읽다 노무현 대통령님 얘기 나오면 반갑고 가슴이 뭉클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