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불어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이렇습니다. 먼저 신용카드를 만들죠. 편리하게 사용합니다. 쇼핑, 여행, 뭐든 카드 한 장으로 간편하게 할수 있죠. 그러는 사이 매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일단 심사에서 걸리지는 않으니 백화점, 은행, 슈퍼마켓 할 것 없이 앞다퉈 카드를 만들라고 권유합니다. 카드 회원이 되면 할인이나 우대 등 각종 다양한 혜택이 따라오죠. 그래서 카드 매수를 늘려나가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신용카드의 ‘공급처‘는 사방에널려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쇼핑만이 아니라 현금서비스까지이용하게 됐죠. 편리하니까요. 다시 말해 ‘신용판매‘ 뿐만 아니라 ‘소비자금융‘에도 손을 뻗치게 된겁니다.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은행 계열 카드의 경우에는 계좌의돈을 인출하는 은행 CD기에서 바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판매나 유통 계열 같으면은행 CD코너같이 알록달록한 인출기가 가게 안팎에 설치되어 있죠. 신용카드를 넣고 비밀번호를누르기만 하면, 자기 계좌에서 돈을 꺼내듯 간단히 빚을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어, 뭐야, 현금서비스도 생각보다 간단하네‘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이자도그때는 별로 안 높다고 느꼈고요. 십만 엔을 빼서썼는데, 삼천 엔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약 한달 동안요. 이 점을 기억해주세요. 그때는 이자가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가끔씩 이용하게 됐죠."

 "쇼핑, 현금서비스. 계속 편하게 쓴겁니다. 한 번에 왕창 쓰는 게 아니니까 낭비한다는 느낌도 없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빚은 빚이죠.
기한이 오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점점 쌓일수록 재정 상태가 힘들어집니다. "

그러나 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그 정도가 됩니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현금서비스에 의지하게 되죠. A사에 결제하기 위해 B사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겁니다. 일단 이러기 시작하면 그뒤로는 눈덩이처럼 빚이 늘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현금서비스만으로는 손 쓸 수 없게 됩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요?"
"신용대출인가요?"

"그리고 여기에서도 또다시 같은 과정이 반복되죠. A사에서 빌린 돈을 갚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B사로갑니다. 이어서 C, D, E사를 찾게 되죠. 신용대출회사에 따라서는 자사의 빚을 갚게 하기 위해 고객에게 다른 회사를 소개해주는 곳까지 있으니까요. 물론 훨씬 수준이 낮고, 자금력이 딸리고, 따라서 대출 심사가 느슨한 회사죠. 경영이 힘들다보니 무제한으로 자꾸 빌려주는 겁니다. 그리고이자를 거둬들이죠. 대략 그런 구조입니다."

자전거조업:만성적으로 자기 자본이 부족하여 타인의 자본을 잇달아 거두어들여서 가까스로 이어가는 조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곗바늘을 몇십 년 전으로 되돌려보십시오.
그 옛날의 정겨운 전당포 시대로 말입니다. 그 시절에는 무제한으로 돈을 빌릴 수가 없었어요. 간신히 변통해서 물건을 전당잡히거나, 기껏해야 월급을 가하는 정도였죠. 번화가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무담보 융자를 해주는 기관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무렵에 비하면 훨씬 살기 편한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고금리를 단속하자는 겁니다. 대기업 신용대출의 금리는 연이자로 무려 25퍼센트에서 35퍼센트에 이르는데, 이것은 이자제한법과 개정출자법 틈에 끼어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일이 탓할 수는 없다‘는, 이른바 그레이 존에 속하는 금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채무자 개개인에게는 매우 심각한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그래요.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습니다. 금리란등에 업힌 귀신 같은 거라서 갈수록 무거워지죠."

그리고 또 한 가지, 현금서비스라는 말의 마술 때문입니다. 신용대출을 받는 건,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볼썽사납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신용카드로현금서비스를 받는 건 스마트한 느낌이 들죠. 게다가 금리도 신용대출에 비해 싼 것 같은 느낌이들어요. 그러나 그건 어처구니없는 착각입니다.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 금리는 연이자로 환산하면25퍼센트에서 35퍼센트 대기업 신용대출 금리와 비슷하죠. 그런데도 그 사실을 모르면 왠지 막연하게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가 안전하다고 믿어버리는 겁니다. 그것이 실수의 첫걸음이죠."

"그렇죠. 당신은 지금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소비자신용 세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건 잘 알았다. 구조적인 문제, 금리 문제, 서투른 행정, 부족한 교육. 그건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갚을 수 없다는걸 뻔히 알면서 돈을 빌리고 곤경에 빠지는 건 결국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그 개인에게 약점이 있으니까, 세상을 우습게 보는 면이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추락하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일본 국민 전체가 다중채무자가 된 건 아니지 않은가. 나만 해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제대로된 인간이라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중채무를 떠안은 것은 역시 본인에게 어떤 결함이나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난 말이죠, 강의 같은 데서 ‘어쨌거나 야반도주를 하기 전에, 죽기 전에, 사람을 죽이기 전에파산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십시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청중들은 그걸 듣고 웃죠.
그러나 이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닙니다. 파산에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직장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살아 있는 유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富의강물에 떠내려가는 버려진 이들의 무리.

돈의 멍에는 거리의 발목까지 휘감는다. 하물며 사람의 발목에는 얼마나 강하게 얽혀들까. 낚아채인 인간이 바짝 말라 죽어갈 때까지일까. 아니면 죽을힘을 다해 칼을 휘둘러서 발목을 끊어내고 도망칠 때까지일까.

・・・・・선생님, 어쩌다 이렇게 많은 빚을 지게 됐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난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

그나저나 공공장소에서 휴대전화로 떠들어대는인간들은 왜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고 멍청해 보일까.

혼마는 자기 집에 할부로 산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대형가구나 전자제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빚이 아니라 가게와 개별적인 계약을 맺어 조금씩 갚아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들었다‘는 것은 관리를 모두지즈코에게 맡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구 색깔이나 전자제품의 기능 등은 모두 그녀의취향대로 결정되었다. 혼마에게 상담하는 건 예산뿐이었다.

"너무 많이 올라서 이젠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집마련을 꿈도 꿀 수 없게 된 거죠. 그렇다보니 거주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보통 사람들은 무리해서 대출을 받지 않아요. 현재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으로 파산하는 사람들 중에는 투자 목적으로 빚을내서 부동산을 사들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원룸맨션을 잘 굴려서 돈을 벌 생각으로 큰 빚을내는 거죠. 그런데 어쩌다보니 거품이 꺼지고 맨션 값이 폭락해버린 거예요. 지금 팔면 원금도 못받아요. 하지만 어쨌든 빚에 대한 이자는 내야 하잖아요. 이런 게 아니었는데, 아아 괴롭다…………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많아요. 십대는 거의 없지만, 이십대에서 삼십대정도. 그리고 한참 간격이 벌어져서 퇴직금이나연금을 다 쏟아부은 중년들. 주식으로 날려버린사람도 많고요."

인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벗어던진 웃옷에 체온이 남듯이. 빗살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 있듯이. 어딘가에 무언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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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2 1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차는 지금 봐도 섬뜻할듯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 자체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겠죠.

대장정 2022-09-22 16:57   좋아요 1 | URL
네. 요즘 금리도 오르고 두렵습니다 😢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