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법을 써서 가로챘을까

어느 쪽이든 이 ‘세키네 쇼코‘는 주도면밀하게 손을 써서 감쪽같이 진짜 행세를 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 인간이 완전히 다른 타인의 행세를 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추운 듯 어깨를 움츠리며 이사카가 말했다. 사실은 추운 게 아니다. 실내는 적당한 온도로 난방이 돌아가고 있고, 한기로 빨갛게 얼어붙었던 히사에의 뺨도 원래의 빛깔을 되찾았다.

"그러니 중요한 점은 어떤 경우든 A라는 관공서에 와서 ‘회사에 근무하게 됐으니 국민건강보험을 정지하고 싶다‘고 신청한 여자가 정말로 그 보험에 가입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데 사진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막도장과 건강보험증만 가지고 가면그만이에요. 다른 사람이 가도 알 도리가 없죠. 등본을 떼는 것뿐

이것은 비단 국민건강보험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호적 분가든 주민표 이전이든 다 마찬가지다. 서류로 신원을 확인하는 경우는 있어도 얼굴까지 조회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본적과 현주소 등 대략적인 정보만 파악하고 있으면,
그다음에 무엇을 하든 거의 발각 날 염려가 없는 셈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실제 본인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절대조건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혼마도 어젯밤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먼저 가족, 그리고 이어서 서서히 본인을.. 없앤다.
"당신은 얼른 청소부터 해요. 이따 점심이나 같이 먹게. 난 혼마 씨를 역까지 바래다주고 올게요." 히사에가 일어섰다. 몹시 심각한 표정이었다.

"화차여......"
"화차?"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혼마에게 이사카가 천천히뒷말을 이었다.
"화차여, 오늘은 내 집 앞을 스쳐 지나, 또 어느 가여운 곳으로가려 하느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세키네 쇼코는 거기서 내리려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렸다.
그러나 그녀로 변신한 여자가 그것도 모르고 또다시 그 수레를불러들였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지? 혼마는 밤의 어둠 저편을 향해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게 바로 오해라는 겁니다. 오늘날 같은 현대사회에 신용카드나 대출 때문에 파산에까지 내몰린 사람은 오히려 상당히 고지식하고 겁이 많고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아요. 그런 점을 이해시키려면 먼저 이 업계의 구조부터 설명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느덧 삼십이 년이 지났다.
"1960년, 그해는 일본 고도성장기의 원년이기도 하죠. 그만큼이 나라가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시기였어요. 크레디트 산업의 탄생은 시대의 필연적 결과이기도 했습니다."변호사는 말을 이었다. "또한 앞으로도 그러한 민간금융 업계의 존재 없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와 국민생활이 성립될 수 없겠죠. 이미 돌이킬 수 없는일입니다."

"전형적인 거품현상이라는 뜻인가요?"
변호사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말하는거품이 세간에서 작년에 터졌다고 일컫는 그 거품이라면, 그것과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금융시장이란 애당초 환상입니다. 본래실체가 없는 거죠. 원래 화폐라는 것부터가 그래요. 그냥 종잇조각, 평평하고 둥근 금속 덩어리일 뿐이죠. 안 그래요?"

"앞서 말했듯이 금융시장은 본래 환상입니다." 변호사가 다시한번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자면 현실사회의 ‘그림자‘로서의 환상이죠. 때문에 자연히 한계가 있어요. 사회가 허용하는한계가 그걸 생각하면 소비자신용의 이런 비정상적인 팽창 양상은 아무래도 수상쩍어요. 본래 부풀일이 없는 곳을 무리한 방식으로 부풀리지 않는 한, 이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할 리가 없죠. 이환상은 정상적인 크기보다 훨씬 크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혼마 씨, 당신은 키가 꽤 크지만 그렇다 해도 이 미터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당신의 그림자가 십 미터나 드리운다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자, 그런데 키 이 미터의 소비자신용이 십 미터짜리 그림자를 드리워버린 가장 큰 원인은, 지금부터 말씀드릴 무차별 과잉여신과 고금리, 과도한 수수료 때문입니다. 지금부터가 본론입니다."
예를 들면, 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 년 전쯤 내가 개인파산 상담을 받은 사례인데, 스물여덟 살의 한 직장인이 당시 소지한 신용카드가 서른세 장에 부채 총액은무려 삼천만 엔에 이르렀습니다. 매달 손에 쥐는 급료는 이십만엔이었고, 다른 자산은 없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삼천만 엔… 일개 지방공무원인 혼마로서는 퇴직금으로도 만져볼 수 없는 금액이다.
"매달 이십만 엔을 버는 사람이 어떻게 삼천만 엔이나 되는 빚을 졌을까. 누가 그렇게 큰돈을 빌려줬을까. 어떻게 빌릴 수 있었을까. 이게 바로 과잉여신, 과잉융자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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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9-21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한 문장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좋은 하루 보내시기를 대장정님^^

대장정 2022-09-21 18:53   좋아요 0 | URL
네, 얄라~~님 좋은하루 보내셨죠? 이제 즐거운 저녁시간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