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에 썼던글, 우연히 옛 외장하드를 뒤지다 2편의 글을 발견함. 먼소릴 지껄였는지도 모르겠다. 1th

유라시아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
유목민 이야기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 울란바트르 근교에 있는 돌궐제국의 명장 톤유쿠크 비문에서 -
 
 
  몽골 및 유목문화 전문가 김종래의 “유목민 이야기”는 유목의 출현에서 몽골 제국까지, 그 질주의 문명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배워 온 역사에서 유목민은 약탈과 침략을 일삼으며, 질서를 파괴하는, 문명에 뒤쳐진 야만적 민족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잔인함과 야만적임만으로 당시 발달된 문명의 유럽과 중국을 긴장하게 만들고, 그 거대한 땅을 누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유목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유목민=야만인‘이라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제로 정착민에 의한 기록과 그림, 노래, 최근에는 만화영화에서 까지 유목민을 적, 두려움의 대상, 야만적인 민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어처구니 없는 유언비어들도 꽤 많다. 저자는 유목민은 문명에 미개한 민족이 아니며, 단지 그들이 문자로써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기록에 의해 이 같은 오해가 널리 퍼져 그들에 대한 편견이 생긴 것이며, 이 같은 오해는 정착민들의 정착마인드가 유목민들의 이동마인드를 이해하지 못 한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데는 농경정착마인드를 버리고 유목이동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유목민이란 정확히 어떤 민족이며, 유목이동마인드란 무엇인가?
 
  이 책의 본문에서는 유목민의 정의로 ‘삶의 기초인 경제 활동이 목축에 의해서 이동성을 띠는 경우’만을 인정한다. 그들은 양, 산양, 소, 말, 낙타 등의 가축과 함께 가축들의 뒤를 따라, 풀을 따라 1년을 이동한다. 고인 물이 썩듯이 그들은 고립되면 죽는다. 쿠빌라이칸(칭기스칸의 손자)의 원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계기도 여기에 있다. 정착이 그들의 파멸을 불러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의아한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돌아갈 집을 주고, 많은 것을 누리게 해 주는 정착생활이 왜 파멸을 불러왔다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정착문명의 긴 지배가 마감되고 드디어 유목이동문명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유목민 이야기」의 저자 김종래가 던지는 화두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정착문명 속에서 살아왔다. 정착은 반드시 어떤 근거지를 필요로 한다. 처음에 그것은 농경지 즉, 땅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본이었고 영토였으며 또한 자원이었거나 때로는 이념이기도 했다. 개개인들에게는 학벌과 기득권과 안정된 직업과 평생직장 등이 정착문명세계에서 살아가는 근거지들이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이익의 칸막이, 생존의 고정된 경계라는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이제 모든 칸막이는 무너지고 있으며 경계는 파괴되고 정착의 고정된 근거지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이 그러하다. 저자는 역사이래 단 한번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유목민의 역사를 복원시키면서 이 문명사적 대변혁의 원인과 동력, 그리고 미래의 상을 그려낸다. 움직이는 것만이 살아남는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 비문에 새겨진 이 말은 천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처럼 들린다. 소통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유목민의 삶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모범일지 모른다.
 
  저자는 「유목민 이야기」를 내놓는 다짐을 이렇게 밝힌다. 머지않아 모든 거리는 디지털 문명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인간의 육신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공간의 숙명 앞에서 막막한 거리감과 싸우지 않는다. 대지 위의 길은 그렇게 해서 소멸되지만 이동은 그러나 끝나지 않는다. 먼 옛날 칭기스칸이 밤하늘의 별과 함께 초원 위를 갔듯이 앞으로의 인류는 문명 속에서 문명 속으로 어두운 모니터 안에서 깜박이는 커서와 함께 한없는 질주를 시작하리라.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유목민 역사의 복원에 있다. 농경정착문명이란 성(城)을 만들고 개미처럼 근면성·협동성·조직성을 중시하며,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인 데 비해 유목문명은 길을 만들고, 거미처럼 네트웍을 형성, 기동성과 순간 포착의 힘으로 살아가는 시간 중심의 문명이라는 것이다.
 
  로마제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훈족을 비롯하여 중화중심주의를 내세웠던 중국이 만리장성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쌓고도 공물을 바쳐야 했던 흉노족, 전 세계를 순식간에 통일시켜버린 몽골족, 이들의 역사는 비록 기록되어 전해오지 못했지만, 세계사를 움직여 온 또 하나 역사로서 우리 삶의 방식에 거대한 흔적과 징후를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시대‘ 원형 유목민에 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즉, 오늘날 지구촌 시대와 정보화 사회를 건설한 것은 분명 유목 문명이 아니라 정착 문명이다. 그렇다면 정착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 유목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는 말인 셈인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면서 저자가 피력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저자는 이 역설적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13세기 초원의 유목이동문명이 오늘에 남긴 것들에 주목하면서 21세기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다. 몽골 제국이 자유무역지대를 구축하고 단일 지폐 경제권을 만든 것이나 다민족 다종교 국가를 건설한 것 등 ‘지구촌 시대‘의 원형이 유목민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 프로토콜의 작동 원리를 8세기 전에 가동시켰던 역참제가 그러하고 속도 숭배 사상, 물품의 휴대화, 정보와 기술의 가치를 중시한 점, 혼혈과 잡종을 두려워하지 않는 ‘레고 문명‘의 성격 등 ‘정보화 사회‘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13세기 초원의 유목민에게서 발생한 것이라는 점들을 이 책은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21세기의 노마드는 특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부단한 자기 부정과 변화를 통하여 창조적인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 나가는 하나의 철학적 경향을 의미하고 있다. 즉, 정착과 안주로 점철되는 농경 마인드 생활에 대한 부정적 경향으로서의 디지털 노마디즘이 인터넷과 이동통신으로 뒤덮힌 지구촌 시대의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농경사회는 정착문명을 발전시켰고,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였고, 사유개념에 의한 안주 속의 사회를 건설하였다. 그에 따라 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경쟁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삶의 패턴이 되어버린 것이다. 즉,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된 것이다.
 
  그러나 유목민은 농경민과 달리 상대적으로 소유의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환경적 요소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는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는 이동하며 유목하는 자만이 살아남았고, 이동하며 유목하는 자만이 앞서 나가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정체하지 아니하고, 이동하며 매일 매일의 삶을 개척하는 노마디즘의 물결은 오늘날에도 지구촌에서 지속되고 있다.
 
  유목문화의 근원인 몽골족의 후예, 한민족은 오늘날 인터넷과 휴대폰 문화의 지구촌 최전방 전위대로서 ‘유목민 이동 마인드’로 무장하여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era)의 힘을 지구촌 만방에 표출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은 그저 ‘한류‘라고 부르고 있지만, 조만간 오대양 육대주의 글로벌 리더 ‘팍스코리아나(Pax Koreana)‘를 창조할 수많은 코리언 징기스칸들이 나타나리라.
 
  극도로 열악한 환경이 자포자기 마저도 용납해 주지 않을 때, 대부분의 인간들은 조급증과 자기울분을 못이겨 섣불리 패배의 지점을 찾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오랜 고독을 견디고 견딘 끝에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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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01 2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목민. 노마드, 디지털 유목민 에서 한류까지 13년전에 읽고 이런 글 쓰셨다니 우와 대장정님 돗자리 까셔도 될 듯 ㅎㅎ 넘 반가워요 대장정님 ~~

대장정 2021-12-01 22:54   좋아요 3 | URL
ㅋㅋ 😂 감사합니다.~~ 서두에도 밝혔듯이 다시 읽어보니 ㅎㅎ 먼소릴 지껄였는지 ㅠㅠ 모르겠어요

미미 2021-12-01 2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13년전에 뭘 했었나 잠시 생각했습니다.ㅋㅋㅋ농경사회가 되며 소유의 욕망이 커져 지구까지 아프게 된 것 같아요.
요즘 전 지구인이 혼나는 중🥲
마지막 문장 멋지네요👍

대장정 2021-12-01 23:06   좋아요 3 | URL
네, 그 소유의 욕망 덕에 지구는 뒷전이구 책을 이리 사서 쟁여놓고 있지요 ㅠ ㅠ ㅎㅎ

scott 2021-12-01 2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쉬 👍 대장정님은 십년 앞을 미리 내다 보셨네요! 유라시아 초원에서 디지털 제국까지! 대장정님은 대륙의 氣를 받으신 분 ^^

대장정 2021-12-01 23:18   좋아요 3 | URL
ㅋㅋ 감사합니다. 한치앞도 내다 보지 못하고 매일이 안갯속이며 깨지고 있습니다. 정녕 대륙의 기는 어디로 갔을까요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