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덕혜옹주 (개정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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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 귀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은 왕실 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했다. 이씨 왕가의 자손들은 해방이 되고도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를 만나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했다. 박정희가 물었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나는 대답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 입니다."
-기자 김을한의 말-

덕혜라는 이름을 얻은 대가 처럼 일본의 볼모로 끌려 가야만 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황족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지 못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속에 살아간 옹주. 14세에 조선을 떠나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와 원치않은 정략 결혼을 한다. 일본의 패망으로 이혼을 당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51세가 되어서야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그토록 바라던 낙선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잊혀져 살았다.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 이었다. 실제로 세상은 그녀를 주목하지도,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사는 지,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말라가는 작은 꽃잎이었다. 조선의 황족이 그러할진대 망국의 백성이 겪은 그 시절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 까? 지금을 사는 우리는 상상도 못 하는 삶이 었을 것이다.

처음 읽는것도 아닌데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가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한탄하다 절망하고 멍해지곤 했다. 한 여자의 무참히 버려진 삶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라가, 백성이 유린당하고, 짓밟히도록 만든 원인이 이씨 왕가의 잘못 만 있을까 ....

올해는 광복 76주년 이다. 박근혜의 지시하에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민사 소송을 국익을 위해 (일본과 좋은 관계 유지) 소송지연, 전범 기업이 승소 할 수 있도록 결론을 바꾸라고 지시 했다고 한다. 나라와 백성을 팔아 먹은 자들은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 뿐만이 아니었다.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자 한 수 많은 떨거지들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라를, 국민을 팔아먹은 김기춘, 양승태, 황교안 이 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떨거지들이 있다.

칼을 가진 자가 득세했던 세상. 권력의 그늘이 안온 했던 때. 일본에 빌붙은 친일파들이 황실을 뒤흔들었던 때. 고종을 한갓 허수아비로 만들었던 그 때와 지금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의 말이 떠오른다. 박근혜. 김기춘, 양승태도 몰랐겠지, 이런날이 올 줄 이야....

조선의 마지막 황녀는 돌아 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백성들은 어찌하나. 가슴에 피멍이 든 위안부 할머니들은 어찌하나....

청산할 것을 깨끗이 청산하지 못하면 후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 적절한 때 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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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 - 양장본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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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불의와 부정과 부패함을 마주하게 된다. 비단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을 들여다 보면 권위와 분열이 난무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 인들이 너무도 많다. 목회자에게 상처 받고 성도간에 알력 다툼으로 상처받아 교회를 등지거나 맞서 대항하는게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세 왕 이야기' 는 이런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 하며, 소망을 주어, 온전히 회복시켜 준다.

세 왕 사울, 다윗, 압살롬을 비교 분석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쉽게 읽히는 짧은 이야기 이지만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며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또한 대인 관계와 현실의 부당함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사울 왕: 백성을 연합하여 나라를 세움. 하나님의 영에 충만했던 사람.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을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함.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왕.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혀 살인을 꾀하고, 기꺼이 영적인 어두움 속에 살기로 함.

*다윗 왕: 두 번째 왕으로 선택 되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깨어진 자. 원수에게 저항하지 않음, 말하는 것보다 침묵 함.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 이기는 것보다 지는것을 택함. 권위를 주장하기 보다는 섬김. 외적인 능력보다 내적인 성장을 추구. 자신의 고통을 백성에게 전가하지 않음.

*압살롬: 충성 스러우면서도 야망을 가진자. 상황에 부합한 자. 다윗에 반역한 아들.

다윗은 압살롬의 나이때 사울을 섬겼으나 사울에게 수많은 위협과 고난을 당했고. 사울의 나이가 되어 왕 이었을 때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을 가는 고통을 겪었다. 젊었을 때는 늙은 사울에게, 늙어서는 젊은 압살롬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다.

다윗은 왕국을 분열시킬 수도, 사울을 넘어 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열을 초래하기 보다는 도피를 선택 했다. 연합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으며, 사울의 모든 부정에 대해서는 입과 귀를 막았다. 반역을 일으킬 충분한 이유를 가졌음에도 대적하지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 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였다. 시편에는 수많은 다윗의 애가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윗은 사울의 불의한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그가 자신을 죽이는 것을, 자신이 사울과 같이 되는 것보다는 그가 자신을 죽이는 것이 낫다고 했다. 다윗은 왕들을 미쳐버리게 하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다윗의 심장 안에 있는 사울을 제거하지 않으셨다면, 양치기 다윗은 사울 왕 2세로 성장했을 것이다.속사람 사울을 제거하기 위해 겉사람 사울을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종종 형편없는 사람, 가치없는 자들에게도 능력을 주신다. 지독한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일지라도 밖으로는 완전히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어듭고 추악한 행위를 하곤 한다. 모든 사람들로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적인 헐벗음의 진정한 모습을 보도록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기름을 부의신 것이다.

우리는 사울 왕의 반열에 있는 사람을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신다. 사울 계열에 있는 사람, 다윗 계열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나의 왕은 사울 일 수도, 다윗 일 수도 있다. 우리의 판단은 다윗 계열에 속한 사람이라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전적이 있다.(못박은 이가 다윗계열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에 차서) 사울이라 확신한 나머지 하사님의 자리를 기꺼이 빼앗은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뿐이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지도자는 많은 행동을 보여주게 될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지도자에 대한 나의 반응들이 - 그가 다윗이건, 사울이건 간에 - 많은 것을 보여 주게 된다. 다윗은 결코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잠짐히, 혼자서, 그 가혹한 시련을 겪었으며. 그의 속사람 전부가 절단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성품이 변화 되었다..

권위를 되풀이 해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권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 할 뿐. 순종에 대해 연설하는 사람은 자기들 마음 속에 있는 두 가지 두려움을 은영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 뿐 이다. 하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진정한 지도자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을 대항할지도 모를 반역에 대해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

다윗은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반역을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어려움을 백성이 겪는게 아니라 지도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통으로 부터 백성을 보호해 주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 권위를 가진 사람은 도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어하려 하지도 않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 사울같이 나를 죽이려고 나에게 창을 던진다면?나는 용맹스럽고 담대하게 창을 주워 상대에게 던질 것이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강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나는 부정이나 부당함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로움 이다. 잘몬 된 것을 바로 잡고 정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 훗날에 나는 온땅에 정의롭고 믿음의 수호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 될것이다. .. 그리고 아마도 사울 처럼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제거할 명분과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모든것을 다 잃느냐, 아니면 사울이 되느냐?의 선택만 한면 되었다. 그럼에도 사울때와 같이 변함이 없이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렸다. 사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이 권세있는 미친 왕으로 부터 아무 힘없는 한 목동을 구해 내셨듯이, 역시 야망에 찬 젊은 반역자로 부터 늙은 왕을 구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상황 부합의 시험에 부딪치게 된다. 이건 정의로운 거야, 부당함에는 맞서 싸워야 해, 저 사람은 잘못됐어, 올바르지 않고 부정한 사람이야 라고 확고한 자기 신념에 빠진다.. 나의 오랜 경험과, 주위의 호응을 보며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고 확신에 차있다.

압살롬 처럼 젊은 혈기 왕성함에 권위에 반역을 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순종과 맹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년들에 분개했고 권위를 내세우는 지도자에게 분개 했었다. 나는 부당한것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압살롬 이었다, 내 지도자는 사울 계열 이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나는 회피하지 않았고 변혁을 꿈꿨다. 되어야 할 것과 될 것에 대한 꿈. 이것이 내가 할 것 이라는 확고함이 있었던 때였다. 내 속에 사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시험(test)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어리석은 때였다. 시간이 흐르면 여러 주장과 또 그 주장을 반대하는 주장들 간에 관여된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숨겨진 동기들이 드러나게 될 거라는 걸 알지 못 했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숨겨진 동기란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숨겨진 동기란게 있다는 것을...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기의 마음을 모른다.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이든 다윗은 늙은 사울에게 겪은 시험을 또 받게되었다. 젊은 압살롬의 도전 이었다. 시험(test)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는 내내 우리는 하나님의 test를 받는다. 피할 수도 없다. 내 안의 젊은 압살롬의 야망 숨겨딘 동기와 늙은 사울의 시기와 질투심이 아직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다윗을 일깨우는 것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다윗의 고백 처럼.

"아직까지 확신 할 수 있는 게 없다네." "다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젊었을때 나는 압살롬이 아니었고, 지금 노년에 와서는 나는 사울과 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네. 그저 늙은 이때에도 나는 다윗의 모습 그대로이고 싶을 뿐이라네."

우리 마음 속에는 사울과 다윗의 두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울의 반열에 설 것인지, 다윗의 반열에 설 것인지는 내가 얼만큼 깨어짐으로 변화된 삶을 사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그가 소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깨뜨리신다.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그 속에서 발견할 때까지 깨뜨리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이유를 제처 놓고 내 마음을 살피면서 그 마음의 사욕들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나의 운명을 넘겨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이 하나님과 먼저 관계하고 나서 자기 위에 있던 사람과 밑에 있는 사람과 관계하였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뜻을 구하였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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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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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사장은 '시민의 교양'을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라고 말한다.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생과, 세계를 나에게 맞추는 삶. 세상의 질서와 시스템에 저항하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인생. 이 두가지 삶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묻는다. 더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해줄 것인가? 라고 묻는다. 나를 바꿀 것인가 세계를 바꿀 것인가?

시민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선택의 상황에 놓여있다. 너무도 많은 정보와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고민하고 판단할 여유가 없다. 일상에 시달리는 부모와, 입시에 몰두해 있는 아이들과, 취업과 노동에 숨 가쁜 사람들을 위해 단순하고 친절한 가이드 북을 만든 것이다.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여, 시민의 합리적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다.

이 한권에 한 명의 시민이 살아감에 있어서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것들인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정의, 미래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너무도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초등 고학년 부터 중. 장년까지 읽기에 무리가 없다. 이해가 쏙쏙 교양이 팍팍 쌓인다.

알지 못하면 말할 수 없고, 이끄는대로 끌려 살 수 밖에 없다. 끌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끌고가는 인생.
적어도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에 대한 권리는 행사하며 살아야겠다. 어떤 시민으로 살것인지,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지는 나의 투표권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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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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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스릴러. 처음부터 가해자를 알고 시작한다. 그럼에도 흥미롭고 긴장을 늦출수 없는것은 심리전 때문이다. 철저하고, 계획적인 포커패이스로 이중 생활을 하는 가해자 잭, 잭의 사이코패스를 증명하려는 아내 그레이스의 심리전.

완벽한 집에 완벽한 남편, 완벽한 생활.... 완벽함 속에 숨겨진 거짓. 매맞는 여자들을 헌신적으로 변호하는 승률 100%의 유명한 변호사 잭은 사이코패스 이다. 그레이스는 끔찍한 심리적폭력의 희생자 이다.

"난 절대 당신을 떠나지 않아, 하지만 죽일 수는 있지."라고 말하는 그레이스. 본격적으로 잭과의 심리전이 시작된다.

"공포야 말로 최고의 재갈 이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은 참혹하다. 조그만 욕조의 수도 덕분에 목이 말라 죽을 염려는 없지만 지루함에 죽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는 진실만을 말한다는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말 뒤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라는 걸 즐긴다."

"잭은 반복만큼 편안함을 주는 것이 없음을 알기에 반복에 익숙하게 해주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이 없다보니 길들여져 아무 생각도 없어질 위험이 없다. 나는 스스로 생각을 해야만 한다."

(공포에 길들이려는 잭과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그레이스의 심리전이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부분 이었다.)

육체적 학대는 증거를 남기지만, 심리적 학대는 교묘하여 증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매번 잭의 심리에 말리는 그레이스는 증명하기를 포기하고 죽이기로 계획을 바꾼다.

'비하인드 도어'.. (밀실, 비공개) 완벽한 집의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은 문이 열렸을 때와는 상반된 공포와 심리적학대가 집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남들이 보기에 완벽하고 좋아 보이는 삶. 지금 우리들의 삶은 보여주는 삶에 안달이 났다. 먹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모든것을 SNS에 올려 남들에게 얼마나 행복 한지를 과시 한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저마다의 쓸쓸함과 허기로 삶이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Tv에 나와서 다정한 잉꼬 부부 행세를 하고는 얼마있다 파경을 맞는 연예인. 좋아요 개수에 따라 내 행복이 결정 되는 것만 같은 우리들의 삶.

읽는 내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내 삶에 집중하고 있는가? 남의 시선에 집중하고 있는가?

'비하인드 도어' 는 구성과 스토리 전개 모두 전형적인 미국 소설이다. 그럼에도 먼 미국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많은 부분이 공감이 된다. 예전에는 상상 할 수도 없던 일들이 뉴스에 자주 나온다. 우리 사회도 점점 닮아가고 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어버린 잭!
가해자에서 시작하는 이는 없다. 그 시작 점은 피해자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보호가 좀더 철저하게 이루어 지기를 바란다.

*한숨에 읽기에 좋음.
*지루하지 않음.
*스토리는 보통 (예상가능).
*기막힌 반전 없음.
*'나를 찾아줘 ' 가 훨씬 재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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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실의 죄수
진 에드워드 지음, 서은재 옮김 / 좋은씨앗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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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실의 죄수* (진 에드워드)

"아무도 몰랐다."
물론 훗날 알게 되었지. 이 땅 아닌 곳에서 말이다. 이곳에서 평생을 사는 동안 그들이 알게 된 것이라고는,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내가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 그들은,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과거 세대들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올 모든 세대도 그러겠지.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세례 요한은 삶의 목적이 분명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았다. 주의 날을 선포하고, 예비하는 자.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드린 자. 이전까지 이 세상은 요한 같은 이를 본적이 없었으며, 이후로도 다시는 그 같은 이를 볼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그런 요한이 주의 날을 선포하다 감옥에 갇혔다. 두렵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망 스럽지도 않았다. 1호실의 죄수 처럼 모든 것을 한 사람의 탓(헤롯)으로 돌리지 않았으며, 2호실의 죄수처럼 모든것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3호실의 요한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인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 지? 예수님께 물었다.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요한은 하나님이 왜 자신을 불렀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른체 죽음을 맞았다. 이땅에서의 삶이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한체 죽음을 맞았다. 왜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허락했는지 이해하지 못한체 죽음을 맞았다.

삶을 온전히 부어드렸으며 오로지 하나님만을 위해 살은 요한, 그 모든 헌신조차 요한이 던진 단 하나의 질문에 대답하시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지 못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은 베일을 벗겨내어 요한의 인생과 죽음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알려주지 않으셨다. 하나님께 드린 유일한 요구인데도 말이다.

"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 침묵하시는가?

"3호실의 죄수"는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도, 이해 할 수도 없는 수많은 상황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는 질문들을 세례 요한의 사역을 이야기 형식으로 꾸며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계획을, 모든 일어난 상황을 알고 싶어 하나님께 묻는다. 왜 내 기도에는 응답이 없는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과연 하나님의 계획인지, 묻고 묻고 또 묻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대답을 기다리다 지쳐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도 있고, 하나님은 없다고 등을 돌리는 이도 있다. 여전히 하나님은 대답이 없으시다.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예수님 사역 당시 수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 광야에서, 마을에서, 집에서 예수님이 계신 곳 이면 어디든 수 많은 무리들이 모였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왜?라고 묻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나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전에도 응답해주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응답해주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의 방식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주권에 담겨 있는 비밀이다. 그것이 내가 온 세대를 인도하는 방법이다. 그 누구도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람들이 예견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내 뜻을 이룰 것이다. 그러니 이제 내가 네게 질문을 하겠다. " 너의 기대대로 행하지 않는 나를 계속 따르겠느냐?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네 고통이 심히 크구나, 나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너는 나를 이해하고, 나의 길을 통찰하며, 나의 주권에 담긴 수수께끼 같은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네 가슴은 산산이 깨어져가고 있구나. 하지만 , 이런 과정을 거친 사람은 네가 처음이 아니다. 너는 온갖 질문과 의구심 속에서 나에게 부르짖었던 사람들, 전역사를 거쳐 맥을 이어온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네 부르짖음은 내 뜻이 과연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며 울부짖던 그 수 않은 외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

"나를 인해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인도를 받을 뿐이다.

나는 하나님을 인해 실족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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