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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7월
평점 :
-사는게 뭐라고 -(사노 요코)
지극히 일본적인, 일본인 할머니의 괴팍하고, 뒤죽박죽 멋대로인유쾌한 생활이야기.
암선고를 받은 일흔의 할머니 사노 요쿄.
암선고를 받자 항암 주사도 주지 말고,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 .
병원을 나오며 제규어 매장에서 잉그리시 그린의 차를사는 할머니.
암수술을 하고 바로 담배를 피워대는 할머니.
"나는 행운아다.
담당 의사가 근사한 남자였기때문이다.
언제나 웃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날이 기다려져.
일흔의 할머니가 근사한 남자를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쁜가."
암선고를 받은 일흔의 할머니 임에도 젊은 남자를 좋아 한다.
죽는게 겁나지 않느냐는 친구의 말에도
"전혀, 언젠가는 죽는 걸.
모두 아는 사실 이잖아
안무섭다니까. 오히려 기뻐,
죽으면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고.
돈을 안벌어도 되는거야.
돈 걱정이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행운인걸.
게다가 암은 정말로 좋은 병이야
때가 되면 죽으니까.
훨씬 더 힘든 병도
얼마든지 있다고~~"
무엇이 이 할머니를 이토록 당당하고 거침없게 만든 걸까?
어떤 날은 침대서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하면서도 밥을 해먹고, 하루종일 한류 드라마를 보느라 턱이 돌아가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친구를 만나고, 마작을 하고, 쇼핑을 한다.
"인생은 번거롭지만 먹고,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 는 요코 할머니는 그렇게 매일을 먹고,자고 일어난다.
삶에 당당하고 징징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괴팍한 늙은이로 볼까봐 소심하게 행동 하다가도, 뭐어때 요코는 원래 그래, 라며 이랬다 저랬다 맘대로 하고 싶은대로 산다.
사노 요코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100만 번 산 고양이" 의 동화 작가이다.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다 알게된 작가 이다.
"100만번 산 고양이" 에서도 사노 요코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볼 수 있다. 백만 번을 죽고, 백만 번을 살았으며, 백만 명의 주인에게 사랑을 받은 얼룩 고양이.
그러나 모는것에 심드렁 했고 오직 자신만을 사랑 했다.
고양이는 사는것도 죽는것도 심드렁 했다.
그러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흰색 고양이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삶이 즐거웠다.
고양이는 더이상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바람 대로 고양이는 더이상 다시 태어 나지 않았다. 다행 이었다.
사노 요코는 죽음을 영원한 이별이나 슬픔이라 여기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 처럼 표현 한다.
천상병 시인이 쓴 시처럼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
사노 요코는 이 곳에서의 삶을 소풍으로 생각 한다.
그러니 죽음이 두렵지 않고 새로운 장소로의 이사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는 어려서 부터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 보았다. 2차 대전때 중국에서 생활 했으며,일본이 패전하고 그로인해 생활고를 겪었고 오빠와 동생을 떠나 보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죽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는 내내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오빠와 동생을 안쓰러워하고 추억 할 뿐이다.
사노 요코는 먹는 걸 좋아한다. 책 여기 저기에 음식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요코가 즐겨 해먹는 음식들은 주로 서양식 이다.
'리버페이스트' 서양음식의 일본화 된 돈까스, 콘비프,서양식드레싱, 고수,등 다양한 음식과 재료가 나와 요리 책을 보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한류 드라마 광팬 이라 한국 이야기도 더러나온다. 그러나 반가움과 기쁨이 아니라 일본인 다운 이중성이 보여 심기가 불편해져 책을 버리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
턱이 돌아갈 정도로 한류 드라마 광팬 이면서
어느 순간에는 한국이 미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꼰다.
"그 나라는 미국을 정말로 좋아한다.
드라마에서 툭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미국으로 사라지고,
미국에서 돌아 온다.
실수로 라도 일본으로 유학 오지 않는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그럼 성형외과에서
책음을 져야 하는건가." 라고 말한다.
일본 문화나 생활에세 서 여기저기 서양의 모습이 풍기는 건 일본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요코는 브런치를 먹으러간 카페에서 할머니들의 옷차림을 보고도 한국을 폄하 하다니
"일본 할머니들의 영국 가정교사 처럼 보이는 옷차림,초원의 집 로라 처럼 입은 옷 차림"
이름 또한 서양 이름이을 많이 사용하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 가 있다고 나무라는 겪이다.
또 하나는 다른 저서 "이것 좋아, 저것 싫어" 에서는 느끼지 못해던 일본 제국주의 야욕이 여기저기 묻어나 있기도 하다.
그녀는 일흔이 넘은 나이고, 배울만큼 배운 작가이며, 어린 나이지만 일본의 만행도 격은 세대이다.
표면적으로 일본의 행태를 비판하고 수치 스럽다고말하면서도 , 한 편 으로는 무심한 척 모른 척 한다.
그녀에게는 유일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
36년을 뜨문뜨문 교류 했으며 그때마다 그 남자에게 일본의 만행에 대해 귀가 따갑게 연설을 들어야 했다.
매번 미안해 했다. 그러다 더는 미안해 하기 싫어졌다.
"아, 그렇단 말이지 나도 서른 여섯해 동안
당신의 압제를 견뎠다고. 이제 끝이다.
평생 원망 하시지, 원망 해봤자 뭔 이득이
있는가.
일본 제국도 모르는 채 자란 나에게
이 나라의 극악무도함을 혼자서 짊어
지라는 것인가.
대체 어쩌란 것인가. 이로써 절교다.
다시는 안봐."
"웃음으로 친근함을 담아 작별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 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이별을
했다. "
그녀의 미소가 섬득 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그만 하라고 소리지르며 한 판 싸우고 절교를 선언 했다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했을 것이다.
암 선고를 받은 일흔의 할머니, 그럴수 있다고 생각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생활에 있어서는 이것 좋아, 저것 싫어 거리낌 없이 표현하던 할머니가. 한국인 친구에게는 그냥 자선을
베푼 것이었다.
지극히 일본인 다운 포커페이스 이다.
일본 할머니의 변덕스러운 성격이 싫어 진다.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포근하고 친근한 할머니가 좋다.
열두폭 치맛자락으로 모든걸 덮어주는 할머니.
우리에겐 박완서, 박경리 할머니가 있다.
박완서 작가님은 전형적 한국 할머니 셨다.
죽음 앞에서도 변덕 스럽지 않으시고 한복의 옷 태와 같이 기품이 있고 곱고 고우 셨다.
박완서 할머니의 글이 읽고 싶어 진다.
(사노 요코 할머니 다신 안봐, 절교 야!
-책 6권을 모두 치워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