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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황석영작가분의 글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만큼은 그분의 모습만큼이나 익숙함이 있었다. '바리데기는 내가 황석영작가분의 책들 중에 처음으로 완독을 하게 된 책이다. 어떤 내용인줄도 모르고 적어도 한 권쯤은 이분의 책을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 보게 된 책이었다. 그러니 책을 읽기 전에는 좋아하는 소설책을 읽게 된다는 설레임보다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이 더 컸었다.
그러나 막상 읽기시작해서는 의무감보다는 이 책을 더 빨리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앉은 자리에서 책을 훌쩍 읽게 되었다.
주인공 아이의 이름은 ‘바리’ 이름으로 부르기엔 뭔가 이상한 어감이 있는 이름이지 싶다.
그 옛날 혹은 현재까지 보수적인 집안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그녀가 태어난 집안 또한 딸보다는 아들을 더 바라고 있었다. 더욱이 그녀 위로 이미 여섯 명의 딸을 낳은 후였기에 아들을 바라는 마음은 그 어느 집보다 크고 강했다. 그러나 태어난 그녀는 남자가 아니었기에 태어난 직후에 어미에 의해서 버림을 받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버리러 나갔던 어미의 뒤를 쫒던 흰둥이에 의해 목숨을 건졌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후에 아이에게는 '버린다'는 의미가 담긴 ‘바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아이가 열두살이 되던 해에 뜻하지 않게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살던 곳인 북한을 벗어나 런던에까지 이르게 된다. 할머니와 부모님, 위로 여섯 자매와 흰둥이의 자식인 칠성이까지, 대가족의 구성원이었던 그녀가 런던에 도착했을 땐 아무도 곁에 남아있지 않고, 혼자된 몸이었다. 낯선 땅에서 아직 20살도 되지 못했던 그녀였기에 런던으로 가는 과정이, 런던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삶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할머니로부터 무녀의 기질을 이어받았던 그녀였기에 비록 혼자였지만 그녀 곁에는 늘 이미 떠나간 자들이 함께하고 있었고 그녀 스스로가 무척 강인함을 지닌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시작부터가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북한식의 말투에서 낯설면서도 정겨운 기운이 스리슬쩍 느껴졌기 때문이다. 번역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요즘 주로 외국의 소설을 읽다보니 오랜만에 보게 된 우리식의 정겨운 말이 가슴 찡할 정도로 반가웠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 생각에 진저리가 나기까지 했던 표준어가 아닌 단어들에게서 아련함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슬그머니 쓴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책에선 주인공 ‘바리’의 삶이, 고작해야 열 몇 살에서 스무 살 초반에 이르는 10년 정도의 시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고작해야 10년. 우리내로 치면 중,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입학해서 억압되어 있던 자유를 막 풀어내고 있는 시간들.
같은 동포이면서도 남과 북이란 지역차이는 실로 엄청나게 다른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 그녀를 죽음의 세계로 이끌지 알 수 없음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어쩔 수 없이 건너간 중국에선 발마사지를 배웠고 런던으로 건너와서는 특유의 능력과 발마사지 능력으로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더불어 같은 주택에 머물던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기까지 한다. 이제 비로소 안정을 찾은 듯했지만 애초에 그곳이 그녀가 편안히 살아갔던 고향이 아님을 알리듯이 불행은 끊이지 않고 그녀를 찾아온다.
이야기는 여주인공 ‘바리’의 삶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삶 속에는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자 했던 ‘아픔’이 곳곳에 베여있다. 자연재해로 인해 배고픔을 겪고, 그로 인해 무수히 삶을 놓아버리게 되는 우리의 북한 동포들, 살고자하여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뱀 같은 자들의 탐욕에 의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북한 동포들...그들에 비하면 ‘바리’의 삶은 마치 신께서 보살펴주기라도 하는 듯 늘 행운이 따랐다. 비록 그녀가 풍족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었대도 말이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을 이야기하지만은 않는다. ‘바리’가 지닌 능력, 다른이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이미 저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들로 인해 이야기는 중간 중간 현실을 벗어나곤 한다. 때로는 아련한 꿈 길 같고, 때로는 무서운 불구덩이 같은 곳으로 그녀는 그때그때 현실을 잠시 접어두고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를 지탱해줄 사람들을 만나고, 버팀목이 되어줄 조언을 얻는다. 사실 바리의 삶이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고, 그녀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특히나 그녀의 가족들-간에 나누는 대화 또한 너무나도 현실적이었기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환상 같은 장면들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러한 장면들이 그녀를 지탱해주고, 그녀를 더욱 강하게 해줌을 알게 된 후에는 오히려 그러한 장면들이 반갑기까지 했다.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책의 끝 부분에 짧게나마 작가인터뷰가 실려있다. 간단간단하게 질문과 응답이 이어진 글 속에서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많은 생각들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또한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
‘바리’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그녀에게 자주 들려주셨던 설화 속에선 여주인공이 생명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되살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질문. 질문을 읽자마자 ‘그래~! 답은?’하고 바로 작가분께서 말씀하신 답변을 보았다.
비록 기대했던 것과 같이 답은 1~! 과 같은 명쾌한 답변은 제시하지 않으셨지만 답변이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면 괜히 힘이 빠지지 않았을까?
이미 유행지난 개그처럼 그녀가 찾던 생명수의 행방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