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시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방문하는 곳이 스타일적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상업지향의 갤러리-아트페어와 담론지향의 미술관-비엔날레. 아트페어는 갤러리가 모여있고, 비엔날레는 미술관이 모여있는 페스티발, 혹은 모음집이다.

전자는 팔리기 위한 미술이고 후자는 시대적 비평을 위한 미술이지만 이 두 분류는 임시적인 것일뿐 무 자르듯이 잘리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 모두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도 있고 경우에 따라 국공립미술관이 아트페어의 홍보역할을 하는 등 보완적 역할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도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가 있지만 봉준호처럼 칸느-오스카 두 곳에서 모두 상을 받은 감독이 있는 것과 같다. 예술은 엄격한 분류를 거부한다.

관객입장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미술관은 좀 어렵고 갤러리는 친근하다 정도다. 미술관은 큰 공간에 있고 전시글을 열심히 읽어야 이해가 되며, 갤러리는 작은 공간에 이리저리 나뉘어 있지만 난해하지는 않다.

그런데 같은 관객이 외국여행을 가면 갤러리보다는 미술관을 더 편하게 여긴다. 한국에서 갤러리를 자주 다니다가도 외국에 가면 갤러리를 잘 가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술관을 어려워하다가도 외국에 가면 미술관에 간다. 물론 외국화랑의 문지방을 넘었다가 구매의사ㄷ 없는데 혹시 말이라도 걸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수 있다.

외국에서 미술관은 접근성이 좋고 방문에 심리적 허들이 별로 없으며 다들 미술관은 한 번 정도 가는 것 같아서 돈이 많건 적건 방문 부담이 없다. 한편 갤러리는 그렇지 않으며, 관광객을 위한 정보도 미술관보다 적은 편인데다가, 무엇보다 시간이 금인 임시 방문객으로서 단위 면적당 작품량이 적은 갤러리를 많은 시간을 걸려서 가느니 미술관에 가는 게 낫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문득 홍콩 H Queens 빌딩은 글로벌 화랑 세 네 곳이 모여있는데 007영화같이 감시요원이 작품을 훼손하지는 않는가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어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미술관을 막론하고 미술관의 모든 전시를 사람들이 편하게 관람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서양회화 (인상주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과, 한국 전통미술 서예, 민화, 도자기를 애호하는 사람이 있다. 현대미술만 가는 사람이 있다. 셋 다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 미술관에서 드러난 자신의 취향이 외국 미술관 방문시에도 이어진다. 유럽 회화를 좋아했다면 높은 확률로 일본 도쿄 우에노 국립서양미술관에 갈 것이다. 리움 고미술관과 국중박의 도자기를 좋아했다면 높은 확률로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기박물관을 갈 것이다.

유럽회화는? 돈만 있다면 서유럽에 가서 쉥겐무비자협정 90일을 꽉 채워서 볼 만큼 엄청난 컬렉션이 있다. 본토에는.

국내미술관 전시 선택요건과 외국미술관의 그것이 연결되는 까닭은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내 나라 내 땅 내 문화 내 말씨 내 제도가 아니라 승강장을 놓칠까 버스를 놓칠까 정신이 곤두서 있는데 미술관에서 마저 너무 지적 레벨이 높아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자국에서도 잘 알고 배웠던 것이어야 외국에서도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자국어로 생산하는 글, 영상 등의 콘텐츠 주제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다수가 잘 모르고 낯선 것이라면 좋아요와 조회수를 올리기 어렵다. 빠니보틀과 애굽민수의 콜라보 여행이 각광을 받은 것은 그동안 애굽민수가 유투브에서 오랫동안 이집트에 대해 설명해와서 수용계층이 형성되어있고 알아듣기 쉬운 정도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잘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집트 미라에 대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전시도 여러 차례하기도 했다.

그럼 반례는 무엇인가.
중국 청동기
일본 사무라이 칼과 갑옷, 기모노
유럽 중세 필사본
이슬람 문양과 꾸란전시
현대미술 STS, 바디올로지로서 페미니즘, 비인간, 동물, 장애, 생태

같은 것이다. 문외한이 감상하기에 문화적 허들이 높고 마이너한 취향의 목록들.

중국 청동기를 보고 오 옛날에 이런 것도 만들었네! 하고 사진 찍고 지나치는 정도로 훑는 감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부할 것이 천지삐까리다. 은, 서주, 춘추 등 중국고대사, 갑골문, 금문, 도철문 등의 문예학, 예기(禮器), 종묘제사, 천명, 종법제도, 봉건제, 조상숭배, 제천의례 등의 정치사회사상을 이해한 후 이런 추상적인 관념이 어떻게 물성에 반영이 되었는지 잘 쓰이지 않는 낯선 한자와 함께 톺아본다. 누구는 이것이 일본 애니에 탐닉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재밌는 지적 희열을 줄 수 있다. 중국 고대사 오타쿠.

鼎 정이니 爵 작이니 觚 고니 尊 존이니 卣 유니 簋 궤니 鐘 종이니 鐃 뇨니 하는 어마무시하게 복잡한 글자와 각 발음의 한글발음, 중국발음, 일본음독과 영어해석과 그 형태와 디테일상에서의 차이들. 바로 이래서 전공자 박사가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 이렇게 어려우니 팔리기 위한 상업예술 전시하지 않는 갤러리작품이 난해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고해도 굳이 발걸음하지 않는, 난해하고 낯선 전시는 예컨대 티베트 밀교, 이슬람 서예, 꾸란관련 모든 것, 인도 종교조각, 중국 청동예기, 비잔틴 신학미술, 아프리카 의례미술, 현대미술 이론전, 마야와 아즈텍 문명관련 전시, 러시아 정교회 미술, 유럽 중세필사본이 있을 것이다.

그 반대에서 국제적으로 통약가능한, 모두 쉽게 쉽게 감상가능한 장르는 대략, 인상주의, 풍경화, 초상화, 동물과 꽃 그림, 도자기, 단색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물적 감상이 된다.

역사, 미술사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깊게 볼 수 있지만, 없어도 감상이 가능하다.

사파비 왕조 꾸란 필사본전이나 은대 청동기전은 전문가가 감탄하는 전시일 수는 있지만 일반 관객이 즉각적으로 즐기기는 곤란하다.

감각적 접근(sensory access)과 해석적 접근(interpreive access)으로 구분해 본다면 인상주의는 감각적 접근성이 높고, 신학미술은 해석적 접근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해석적 접근을 하는 모든 것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한다.

감각적 접근이 부각되는 미술전시에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석을 경유하지 않아도 감각만으로 예쁘다! 좋다! 라고 할 수 있기에 접근성이 좋다. 해석적 접근이 우위에 있는 전시는 지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재미를 느낄 여지가 없다.

도자기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청자, 백자, 흑유, 삼채, 채도, 경덕진, 가마의 위치, 환원염, 산화염, 당삼채, 송원명청, 오채, 분채, 법랑채, 여요, 관요, 균요, 정요, 용천요 같은 온갖 지리, 기술, 화학, 역사 용어를 알아야한다.

일본 사무라이 칼과 갑옷도 막부, 쇼군, 다이묘, 번, 로닌, 무사도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어휘뿐 아니라,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센고쿠, 에도와 각 지역의 발전사, 일본도의 검신구조, 하몬(刃文)이니 지하다(地肌)니 나카고(茎)니 츠바(鍔)니 코시라에(拵)하는 것들. 유파별 차이인 비젠, 야마시로, 소슈, 미노. 또, 명장 마사무네, 무라마사. 갑옷의 종류 오요로이, 도세이구소쿠,카부토, 멘포, 사시모노, 우치카케, 후리소데, 토메소데. 하카마, 오비의 디테일. 거기에 염색인 유젠, 시보리, 카타조메에 더해 와비사비, 모노노아와레 같은 미학/미의식까지. 언뜻 생각해보아도 감상 준비단계에서 지적 장애물이 매우 높다. 익숙해지면 항상 나오는 패턴이지만. 여기에다가 만화에서의 수용까지.

유럽도 인상주의 이전으로 내려가면 건축과 신학을 모르면 맹인이나 다름없다.

개신교 교회나 가톨릭 성당에 다녔다면 이런 어휘는 익숙하다.
삼위일체, 성육신, 원죄, 구속, 종말론, 연옥, 성인공경, 스콜라 철학와 교부철학의 차이, 수도원주의, 십자군, 이단심문,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등

그러나 이는 예열 단계의 초심자 어휘이고 이 이상으로 들어가 건축구조에 신학사상이 어떻게 반영되어있는지 확인하려면
Typology (예형론)
Exegesis (성서해석학)
Transubstantiation (실체변화)
Relic Cult (성유물 숭배)
Marian Devotion (성모신심)
Apse
Transept
Ambulatory
Clerestory
Tympanum
Archivolt
Jamb Figure
삼폭제단화 트립티크와 폴립티크와 성상학(Iconography)
그리고 로마네스크, 고딕의 차이, 플라잉 버트레스와 리브 볼트와 장미창을 모두 하나씩 뜯어봐야한다.

이슬람은?

타우히드
샤리아
움마
칼리프
하디스
순나
피크흐
꾸란 연구
타프시르
타즈위드
키라아트
나스크
쿠피체
나스크체
술루스체
디와니체
나스탈리크체
아라베스크
무카르나스
기를리흐
테셀레이션
미흐랍
민바르
이완
무카르나스
마드라사
우마이야왕조, 압바스
셀주크
맘루크
사파비
오스만
이 기본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스탄나라의 이슬람이 러시아 사회주의와의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까지 더하면 점입가경이다.

중앙아 미술관에 가서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국내+외국 미술관에서 인상주의의 풍경화, 초상화, 동물과 꽃, 단색화 정도만 대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고 그외의 모든 곳은 감상이 쉽지 않고 전문적으로 배워도 남에게 설명하는데 그만큼 또 시간이 소요되고 이해시키느라 애를 쓰지만 인상주의만큼 효과도 없다.

그렇게 모든 전시 관련 콘텐츠의 조회수와 영향력은 보기 편하고 좋아요 받기 쉬운 미술로 수렴한다. 무해하고 반짝이며 설명이 필요없는 미술로 수렴한다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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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먼슬리 클래식) ㅣ 먼슬리 클래식 18
다자이 오사무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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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quin Phoenix and Michael Stuhlbarg


<조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나폴레옹> <허>의 호아킨 피닉스와

<링컨> <컨택트> <콜미바이유어네임> <더포스트>의 마이클 스툴버그가

너무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 올렸던 포스팅에 리스트 추가해야겠다.

-내 생각에 닮아보이는 얼굴-

한쪽이 한쪽의 보급형인 경우도 아닌 경우도

주원 강동원
박진영 멧데이먼
제시 플레먼스 브레드피트
송중기 홍경
김고은 이수지
한소희 류진

유현준 손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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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에서의 축지법
만리포 지음 / 녹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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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자기고백적 에세이다. 솔직하고 투명하다는 것이 어느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한다. 아무도 읽지 못하지만, 누구라도 읽을 수 있고, 보편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각 사회의 내부에 존재하는 부분집합들에게는 열렬히 환영받을 이야기다. 한국어로 쓰여진 유럽문학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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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에서의 축지법
만리포 지음 / 녹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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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출판만화상을 받은 작가라는 홍보문고는 있었지만 그런 주례사 비평은 어디에나 있어서 큰 설득력이 없고 특이해보이는 책은 별 생각 없이 구매하는 습관때문에 손에 쥐게 된 책이다. 그런 가운데 생각지 못했던 기적인 세렌디피티가 있기 때문. 계획하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우연히 들어간 골목길 가게에서 최고의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세로로 긴 폰트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편집이라는 첫 인상밖에 없었다. 그 퍼스트 임프레션은 곧 충격으로 바뀔 것이었다.

 

한국어로 쓰여졌다 뿐, 내용은 프랑스문학이다. 모두가 하하호호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범용성이 있는 글은 아니다. 대개 유럽문학이 그렇다. 유럽이라는 문화자본과 외국어라는 낯섦에 의해 포장이 되었을 뿐 내용적으로는 이상하고 뒤틀린 부분이 있다. 일단 그리스로마신화의 부친살해, 난봉꾼, 근친상간 등의 파격적 주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는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로 유럽적 사고를 하는 흥미롭고 놀라운 저자다. 정치적으로 깨어있고 국제적인 사고를 하며 거시적 시야를 장착했는데 또한 유년시절 쌍둥이 심리적 트라우마와 현재 남친과의 늪에 빠진 관계성과 개인적 모순에 대해 탐구하는 미시적 시야까지 있다. 유일무이한 단독자로 존재하는, 어디에도 닮은 이가 없는 캐릭터다.

 

글에는 저자가 의식했든 안했든 유럽문학권의 세례가 있다. 토마스 만, 밀란 쿤데라, 제임스 조이스, 사라 워터가 부분적으로 모두 느껴진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다음 권호로 있어야하는데 이제 신간으로 나왔고 2-30년 후에는 세계문학의 시리즈로 함께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두세 페이지마다 좋은 표현이 있어 포스트잇 날개를 달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줄을 쳤다. 예컨대

p25 주변시로 훑어봤다.

p27 기억의 핀 조명도 거기서 꺼진다. / 로 끝나는 구절

p29 아주 귀애하는

p32 외따로 떠올린다.

p35 마지막 쌍둥이의 구절로 해당 장 슬레이트를 임팩트있게 마무리

p39 개개 풀어져 무장 해제되고 이윽고 무적이 되는 것 같았다.

p110 만화의 홈통을 타고 배수되는 두분의 간수 같은 시간 속에서 .. 찰방찰방 나아가다보면

 

내용적으로는 다음 부분이 특히 문체도 내용도 유럽문학 같이 사회문화적 분석과 내면적 탐구가 함께 결합된다.

p52 우익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p54-56 특히 p55 나카무라에 대한 분석은 p7의 남자 이야기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p66 장례지도사 분노 일화

p150 <속가> 장, 그리고 이후 모든 스무 페이지 전부

 

책을 덮고 나서 날개의 찬사가 모두 이해되었다. "자기 피를 어디로 튀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라는 조익상 만화평론가의 코멘트와, "정교하고 집요하고 탁월한 자기 추적"이라는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의 감탄은 일리가 있다. 아트선재 <스펙트로신테시스>보다 절규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대도시의 사랑>보다는 솔직하고 포장하지 않고 민낯을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이 34편, 54시간에 이르는 자신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투명하고 솔직하고 진실되어야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말만 할 뿐 딱히 진실된 점이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외국어 번역투에 외국식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서양문학과 달리 한국어로 쓰여져서 그 자기고백이 훨씬 더 사람냄새를 풍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작품은 장 주네의 <하녀>의 솔랑주와 클레르뿐인데, 이 관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치사상가 레오 스트라우스는 과거에는 책을 처음부터 선형적으로 낭독해 읽고 스키밍하거나 검색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야기는 자기 말을 잘 들어준 사람들을 위해 2/3지점부터 숨겨놓는다고 했다. 밀교적(esoteric) 글쓰기다. 이 책 역시 대략 2/3지점인 100페이지까지 따라가야 그 이후 더 충격적인 개인사가 나온다. 이미 앞부분도 상당했는데 과거의 이야기고, 그 이후 나오는 모든 부분은 지금-여기의 자기 스토리다. 가끔 영화 중에 타이틀이 처음 10분 안에 뜨지 않고 중간이나 뒤에 삽입되는 경우가 있다. <나미비아의 사막>이 그렇다. 이 책은 p103에 <림보에서의 축지법>이라는 책제목을 딴 장이 나온다. 그 이후 책을 덮을 때까지 손을 뗼 수 없다. 그것도 2/3지점인 100페이지를 읽어와 저자가 스스로 내면을 투명하기로 보여주기로 선택한 고백적 일기를 다 읽어 준 사람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나카무라, 주민세, 노비타(도라에몽의 진구), 시바리테, 가이낙스, 안노 히데아키,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일부 고유명사로 인해 저자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로서 일하고 있음이 짐작이 되긴 하지만, 옛 사회문화보다는 컨템포러리한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읽힌다. 아무 국가의 아무 사람이나 읽어도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다루는 정체성, 트라우마, 성적 페티시가 전혀 보편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소수 취향은 각 국가에서 부분집합으로 긁어모아 국제적으로 단합한다는 측면에서 느슨한 보편성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현재와 기억이 습합되고 착종되는 것 같으나 일견 저자의 복잡다단해 보이는 세계는 대단히 일관적이다. 이런 종단적 분석은 어문학과 문학분석 시간에 다루기에 적절하다.


p19의 기어다니는 이미지는 p178의 개로, p182의 에필로그로

p26의 붙들림과 굴욕은 p130 p143의 돔섭관계로

p25의 유년시절 기억은 p180의 현재로

p17의 튀어오르는 볼은 p111의 엉덩이에서 p142의 페티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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