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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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듀 보이스가 이중 의식이라고 묘사한 상태 속에 존재한다. 세계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의식과 그 세계가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내면의 자아에 대한 의식을 함께 지닌 상태로, 팔레스타인 번역가는 두 영토에 걸쳐 살지만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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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의 기술 - MACD 창시자 아펠이 직접 쓴 MACD 투자 전략
제럴드 아펠 지음, 송미리 옮김 / 이레미디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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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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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폭발하는 집중력으로 책을 읽지만 카페인의 힘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스르륵 사라진다. 전기 동력이 끊긴 기차가 달리던 관성으로 역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페이지를 밀고나가는 자는 복이 있을진저! 대개 집중력이 사라진 지점이후에는 책을 덮어버린다. 


특히 도서관에 있는 책은 앞부분만 닳았다. 책장은 앞만 접혀있고 뒷부분은 깨끗하다. 학술서는 참고문헌과 인덱스가 덕지덕지 달려있는 부분이라 읽는 파트가 아니라 휘리릭 스키밍하는 부분이다. 저자든 편집자든 정리에 품이 많이 들지만 독자는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앉아 있으면 끝까지 재생되는 수동적 감상법의 영화와는 달리 책은 적극적 감상이 요구되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내면의 추진력이 없다면, 혹은 중간까지 읽어서 어쨌든 끝까지 보려는 관성이 없다면 완독이 어렵다. 그러한 완독을 위해 동기부여와 호기심이라는 소형모듈원자로가 독서감상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다.


헬스장에서 근력운동할 때 마지막 2-3번이 힘든데 근육 내 ATP-PCr 시스템이 고갈되고 젖산이 쌓여 근수축에 동원될 번개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체적 한계를 넘어야 근육이 성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서도, 그 책이 아무리 재미지다고 할지라도, 어떤 중간 분기점에서는 정신적, 체력적 한계에 봉착하고 완결을 보려면 힘이 든다. 만화, 무협, 경제분석, 에세이 등 모든 종이 콘텐츠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초중반의 에너지원과 후반의 에너지원이 다르다. 전자는 궁금증과 희열같은 순수한 감정이고, 후자는 인내심, 절제력같은 훈련된 태도다. 당연히 후자가 더 어렵기 마련. 그것이 설령 만화라고 할지라도 대단한 재능이다. 원피스 113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볼 수 있는 자는 엄청난 사람이다.


물론 책마다 요구하는 읽기의 방식이 다르다. 어떤 책은 잔인하고 무서워서 포식동물을 만난 초식동물마냥 붙박은 듯 가만히 집중해 지켜보게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다음 전개를 알쏭달쏭 궁금하게 만들어서 폭주기관차마냥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내용이 이어지지 않은 분절형 부제인 숏츠같이로 퀼트처럼 얼기설기 엮어있어서 짧은 도파민 분비에 의지해 나아가다보니 연속 100m달리기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처럼 되기도 한다. 선형적으로 학습량이 증가하는 수험서, 문제집, 어학서 등은 1과와 20과의 지적 밀도가 다르기에 한 번에 물흐릇 후르륵 읽을 수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며 뒷부분이 더 어렵다.


그러나 대개 많은 책들은 100장이 있다고 했을 때 정규분포를 띈다. 1-20장은 흥미를 유발해 달리게 만들고, 30-80장은 장르적 관습에 의지하며 관성에 의해 나아가게끔 하다가, 80-100장은 흐지부지 사라진다. 여기서 참고문헌이든 인덱스든 에필로그든 엔딩이든 덤이기에 어디서 끝나도 크게 상관없고, 문제집처럼 뒷부분이 강화되는 구조는 아니다.


이런 생각은 조슈어 프레이거의 100권의 책이 말하는 100살까지의 당신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려 본 생각이다. 다양한 작가가 저마다 구체적인 나이를 언급하며 통찰하는 구절을 모아놓은 책이다. 영어 원서는 일반적 판형인데 민음사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가로로 긴 (OO학교에서 배우는 100가지 시리즈처럼) 특이한 판형으로 바꾸어 출간했다. 서문에서 편집한 구절의 질과 적절성이 좋다고 했는데 적절성은 잘 모르겠고 퀄리티는 그저그렇다. 기획은 좋다. 프로이트의 엄마를 박제하고 싶은 8살의 상상이나 에이미 탄의 지옥 개념에 대해 들은 4살의 땅 속 댄스는 보편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기에 적절성은 의문이다. 편집한 모든 작가는 저마다 취향을 많이 타고 각 나이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는지는 모르겟따. 그러나 기획은 재밌었다.


이렇게 1살부터 100살까지를 한 페이지 한 구절씩 읽어나가면서 사람의 생애주기를 빠르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 1-20살이 재밌고 30-80살은 그 나이대 평균적인 경험을 하며, 언제죽을지 모르기에 80-100살은 꺼져가듯 희미하다는 점에서 1-20장은 재밌게 읽고 30-80장은 관성대로 가다가 80-100장의 덤이기에 어느 순간 책을 덮는 일반적인 독서경험과도 맞닿아있다. 


1-20살/장은 매 년 신체성장도 정신적 발전도 다르다.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몰입하는 구간이다.


30-80살/장은 사회적 지위 마련, 자아 실현, 가정과 재생산, 노후대비, 상실 등 사회적 생애주기에 맞는 평균의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공감받을 수 없는 개별적인 경험을 한다. 일반과 특수의 교집합이다.


80-100살/장은 언제 끝맺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마감하는 황혼의 시절이다. 같은 구간인데 숫자의 변화가 앞선 1-20살/장과 같지 않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밀도 높던 11살과 12살의 1차이가 81-82살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6살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96살의 죽음은 희극이다. 참고문헌이나 결어의 한 페이지와 그 다음 페이지가 프롤로그/문제제기의 한 페이지와 다른 것과 같다. 조슈아 프레이저의 책에서 30-80살은 그닥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이었고, 80-100살은 딱히 그 나이를 대변한다기보다 그냥 노년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느껴졌다. 허나, 1살과 99살은 매우 다르고, 10살과 80살의 분위기는 상전벽해였다. 책은 성동격서처럼 읽혀졌다.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양극단의 차이만 보였다는 뜻이다.


독서든 삶이든 그렇다. 개별 숫자의 델타값(변화량)보다는 처음과 끝의 변화가 더 생생하다. 읽어서 끝까지 나아간 자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고 존버해서 호들해서 마지막 생애까지 숨 쉰 자가 다르다. (hodl은 비트코인 크립토쪽 용어다. hold(버티다)의 뒷 음소만 바꾼 언어유희로 존버란 뜻이다)


카페인에서 시작해 관성에 의지해 참고문헌 즈음해서 손절. 호기심, 동기, 악바리, 뭐든 에너지원은 알아서 마련하자. 그래도 80%까지는 존버다. 중간은 재미없다. 누구에도 공감받지 못하거나, 모든 사람과 다 비슷해보인다. 그래도 존나게 버티는 거다. 인생이든 공부든 책이든. 그 마지막이 설령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 특별한 영웅같지 않은 시시한 결말이라고 해도. 시작할 때 확신한 생각과 끝날 때까지 붙잡고 있던 생각, 경이로운 탄생과 스러지는 죽음, 알파와 오메가는 선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압도적인 변화량을 개개인이 육신으로 체감하기 위해 존재하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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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한문 목판본 읽었다.


기원전 5-3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은 사도 내습을 자연재해의 일종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지중해 연안에서 전승되던 고대문명의 서사시가 실크로드를 건너 한문으로 기록되고 변형된 판본을 안노 히데아키가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재구성하고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하면서 처음의 설정이 많이 변형되었다.


에반게리온 원전은 생각보다 짧다. 플라톤부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후대 주석가가 덧붙인 내용이 워낙 많아 지금 분량이 된 것이다. 특히 인류보완계획 부분은 옛 선현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렸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비밀에 잠겼던 내용을 자세히 강독한다.


葛城赤木綾波真司侍坐. 碇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갈성, 적목, 능파, 진사 시좌. 정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카츠라기, 아카기, 아야나미, 신지가 겐도를 모시고 앉았다. 이카리 겐도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너희보다 스코시 많다하나 보쿠 때문에 어려워들 말게나"



葛城赤木綾波真司侍坐. 碇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갈성, 적목, 능파, 진사 시좌. 정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카츠라기, 아카기, 아야나미, 신지가 겐도를 모시고 앉았다. 이카리 겐도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너희보다 스코시 많다하나 보쿠 때문에 어려워들 말게나"


○ 주석: 갈성은 카츠라기 미사토를 일컫고, 적목은 아카기 리츠코를 이르며, 능파는 아야나미 레이를 지칭한다. 동월은 후유츠키 코조, 부사령관이다. 진사는 일본국 발음으로 신지를 음차한 것이다. 

<희>는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들>자를 더하면 뜻이 거듭 나온다. (복수중복) 그러므로 <너희>라고 하는 것이 옳다.


居則曰 ‘不吾知也!’如或知爾 則何以哉

거즉왈 ‘불오지야!’여혹지이 즉하이재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거얌!" 이라고 말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쓰여지겠는가!


葛城率爾而對曰 

갈성솔이이대왈 

카츠라기가 경거망동하여 대답하기를


巨人機械之國 攝乎異域之間 加之以使徒 因之以崩壞

거인기계지국 섭호이역지간 가지이사도 인지이붕괴

거대한 기계가 있는 나라가 외부의 위협 속에 있고, 사도들의 공격까지 더하여져 그로 인해 세계가 붕괴됩니다. 


葛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戰 且知懼也

갈야위지 비급삽년 가사유전 차지구야

제가 맡는다면 3년 안에 싸울 수 있게 만들고 두려움을 알게 하겠습니다.


夫子哂之.

부자신지.

라고 하니 이카리 겐도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赤木! 爾.何如 

적목! 이.하여 

아카기! 너는 어떠냐? 


對曰 絕對心界之理 三賢機之事 赤木爲之 比及三年 可使人機相應 如其補完之議 以俟君子

대왈 절대심계지리 삼현기지사 적목위지 비급삼년 가사인기상응 여기보완지의 이사군자

대답하기를 AT필드의 원리와 마기 시스템의 운용이라면 제가 맡겠습니다. 3년이면 인간과 기계(에바)가 서로 호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인류보완계획 같은 문제는 더 지혜로운 사람을 기다리겠습니다.

○절대심계는 AT필드(Absolute Terror FIELD)를 이른다. 삼현기는 MAGI 인공지능 시스템을 일컫으며, MAGI는 라틴어 magus의 복수로 멜키오르, 발타사르, 카스파르 세 현자에서 유래했다. 인기상응은 인간과 기계가 상호 교감하는 것이다. 기계는 곧 복음기(에반게리온)을 뜻한다. 아카기 리츠고의 위爲(하다)는 석析(분석)을 말한다.


綾波! 爾.何如 

능파! 이.하여 

아야나미! 너는 어떠냐?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대왈 비왈능지 원학언. 종묘지사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對曰 非曰能之 願從命焉. 神人相接之事 如使徒來襲 白羽衣 乘福音機 願爲操初号機者焉

대왈 비왈능지 원종명언 신인상접지사 여사도내습 백우의 승복음기 원위조초호기자언

"제가 잘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명을 따르길 원합니다. 신과 사람이 서로 만나는 일 또는 사도가 습격하는 때에 흰 깃옷을 입고 에바에 올라, 그 초호기 파일럿이 되고 싶습니다."

○ 복음기는 에반게리온이다. 조초호기자는 술목(VO)구조다. 조종하다+초호기를+하는 자.


真司! 爾.何如 

진사! 이.하여

신지! 너는 어떠한가?


鼓琴希 鏗爾 舍琴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고금희 갱이 사금이작 대왈 이호.삼자자지선!

그 첼로 연주를 드문드문하다가 소리가 희미해지며 툭하고 첼로를 놓고 일어나 대답했다. "세 사람(의 갖고 있는 것=뜻)과는 다르답니다! 지가우요!"

○琴금은 大提琴대제금, 첼로를 이른다. 곧, (서)양금이다. 撰具也. 선, 구야. 선은 갖춤이다. 뒷 내용과 연결되어 志(뜻 지)와 같다.


碇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정왈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이카리 겐도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曰 莫春者 使徒旣滅 福音機旣藏 同僚五六人 友達六七人 遊乎第三東京市海岸 風乎第一中學 詠而歸

왈 모춘자 사도기멸 복음기기장 동료오륙인 우달육칠인 유호제삼동경시해안 풍호제일중학 영이귀

(신지가) 말하기를 "늦봄에 사도가 사라지고 에바가 봉인되면 동료 5,6인과 토모다찌 6,7명과 함께 제3동경신도시 해변에서 목욕하고 학교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올거다냥!"

○작중배경에서 늦봄은 곧 맑은 여름이다. 사도멸망과 에바봉인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상상한 것이다.

신지의 열망은 정치나 정서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물에 들어가고 즐거이 바람을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는 평범한 하루다. 거대한 인류보완계획, NERV 총사령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을 바라보고 있찌 않다는 뜻이 은연중 말밖에 나타났으니, 친구 몇 사람과 함께 해변을 걷다가 저녁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돌아오고 싶다는 의중을 표한 것이다.


夫子喟然歎曰 吾與爾也!  四子者出 冬月後. 冬月曰 夫.四子者之言.何如

부자위연탄왈 오여이야!  사자자출 동월후. 동월왈 부.사자자지언.하여

선생님께서 우왕!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너(신지)를 허여한다, 하셨다." 네 사람이 나가자 후유츠키가 뒤에 남았었는데 후유츠키가 말하였다. 저 네 사람(카츠라기 미사토, 아카기 리츠코, 아야나미 레이, 이카리 신지)의 말이 어떻습니까? 


碇曰 亦各言其志也已矣.  曰夫子何哂.葛城也 

정왈 역각언기지야이의.  왈부자하신.갈성야   

이카리 겐도 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또한 각각 자신의 뜻을 말했을 뿐이다. 선생님께서 어째서 카츠라기에게 빙그레 웃으셨습니까? 


NERV 운영은 예로써 해야하는데 그녀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절제를 모르고 맥주나 퍼마시므로 웃은 것이다.

○NERV는 国際連合直属非公開組織 特務機関(국제연합직속비공식기관 특무기관)을 이른다. 


아카기 리츠코가 말한 것은 과학기술과 행정운영의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이후 소실)


정리하면

카츠라기 미사토 = 자로 "사도가 와도 싸우겠슴돠!"

아카기 리츠코 = 염유 "기술적 문제는 해결해드리죠"

아야나미 레이 = 공서화 "배우겠습니다. 보조 역할을 맡겠습니다."

이카리 신지 = 증석 "친구들과 학교에 가고 싶어! 놀거야!"


참고로 증석曾晳의 일본발음은 소-세키(そうせき)로


夏目漱石 나츠메 소-세키 Natsume Sōseki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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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관한 구 63빌딩 아쿠아리움에 생긴 퐁피두 한화 큐비즘전이 있듯, 상하이에도 퐁피두 분관이 있다. 언젠가 가봐야지. 이름은 서안미술관 West Bund Museum이다.


서쪽 강기슭을 뜻하는 씨안(西岸 서안 West Bund)으로 불리고, 마찬가지로 강기슭을 의미하는 와이탄 지역의 연장선에 있다. 와이탄이 조금 더 역사문화적 브랜드가치가 높아 상위개념에 가깝다.


https://wbmshanghai.com/zh-hans/exhibition/reinventing-landscape-2025


시안을 영어로 직역하면 West Bund가 아니라 West Bank가 되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상하이 정부는 일부러 West Bund라는 영어 이름을 공식 채택했는데 그 이유는 더이상 강기슭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세계적 금융문화관광중심지로서 상하이의 와이탄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더 분드로 확장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나 프랑스 좌안(히브 고슈 rive gauche) 같은 프리미엄 수변 문화 지구를 글로벌적으로 벤치마킹한 사례로 보인다.


그러니까 명사의 지시적 의미로 황푸강의 서쪽 강기슭을 넘어서, 기존의 역사문화적 명소로 쓰이던 와이탄이라는 이름을 The Bund로 확장하려는 현대적인 도시계획의 일환이다. 초광역도시로서 메가시티 서울이 위례 하남 판교를 포함하려는 것과 같은 의도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왜 Bund를 쓰는지 궁금했었는데 논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내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urban-history/article/colonial-concepts-in-motion-the-shanghai-bund-and-its-british-imperial-genealogies/3C245E27DD35F197B7369497CFD60904?utm_campaign=shareaholic&utm_medium=copy_link&utm_source=bookmark


일견 Bund는 분데스레푸블릭(독일 연방공화국)이나 분데스리가(독일 프로축구)같이 연합, 동맹, 연방, Federation, Union을 뜻하는 독일어 접미사가 생각난다. 고대 게르만어에 뿌리를 둔 순수 독일어 단어로, 영어의 묶다(Bind) 결속, 채권(Bond과 같은 계보에 있다.


그런데 상하이에서 쓰는 강기슭으로서 분드는 유럽과 전혀 상관없는 인도 페르시아 계통의 어원이었다.


인도 페르시아어로 Bunder는 제방, 둑, 강가, 항구를 의미하고 19세기 영국 상인들이 상하이에 가져왔다. 아편전쟁 이후 황푸강 서안을 매립하고 제방을 쌓으며 인도에서 쓰던 표현대로 더 분드(강기슭)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저 유럽 어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다른 가짜 친구 인도페르시아 어휘을 더 멀리 상하이로 옮긴 주체가 영국인일 뿐.


앵글로색슨, 게르만이 사용하던 맥락이 아니라 영국식 인도 식민지 영어가 상하이에 이식된 특이한 사례다.


정리하면, 독일어의 분드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연방, 동맹, 결속이고

상하이의 분드는 인도페르시아 분더의 제방이다. 


아울러 이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이 와자와자 먼 길을 비행해서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보다 다음 시즌에 이웃나라 한국의 퐁피두로 오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두 번 오는 것보다 순회하는데 필요한 이동경비가 절약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지만.


같은 순회전이라도 나라에 따라 배치방식이나 소개글이 달라서 지역,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서 큰 배움이 된다. 마치 같은 고기 식재료가 다르게 요리되듯, 같은 작품도 다른 공간, 문화, 언어, 맥락을 만나 다르게 수용된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으나 전시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전시 서문을 다 번역하고 일부 코멘트한다.



1) ding,sheng鼎盛이나 han,gai涵盖나 tan,tao探讨처럼 고풍스러운 어휘가 눈에 띄고


2) 같은 한자인데 한중일 다른 뉘앙스가 드러나는 점도 흥미로우며 (切入)


3) 서양미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구절이 독특하다.


서양의 발전과정이 중국보다 느렸다, 풍경화는 중국에 이미 있었던 유구한 전통인데 서양이 조금 늦게 도입했지만 볼 만하다, 라는 살짝 문화적 위계를 자국에 두지만 둘 다 존중하는 듯한 미묘한 뉘앙스가 읽힌다.


한국어로 다 자연스럽게 풀지만, 원래 한문의 특성을 살려 20세기 초 국한문 혼용체의 느낌으로 다시 서술하기도 해보았다.


번역


중국 예술과 달리, 서양 예술은 매!우! 뒤늦게 풍경에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与中国艺术不同,西方艺术/很晚才/赋予风景自主性 ;


오랜 시간 동안, 풍경은 (간신히) 영웅 주제나 전원 장면의 그림에서만 배경으로 나타났습니다.

在很长一段时间里,风景<仅仅>在英雄主题或田园场景的绘画中作为背景出现。


독립적인 주제의 풍경화는 19세기에 바야흐로 절정에 달했으며, 특히 인상파의 부상과 함께 두드러졌습니다.

作为独立题材的风景画在19世纪达到<鼎盛>,尤其是随着印象派的兴起。

-鼎 솥 정 盛 성할 성 = 바야흐로 한창 흥성하다. flourishing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 주제는 깊은 변화를 겪었으며, 그 스타일은 선구적인 예술 운동에 의해 변화되었고, 도식은 점점 더 산업화 과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在20世纪至21世纪,这一题材经历了深刻的变革,其风格受先锋艺术运动的驱使发生转变,图式则日益受到工业化进程的影响。

-그 풍격은 선봉적 예술운동의 구사에 의해 전변이 발생했고, 도식은 공업화과정의 영향을 일익 수수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이번 전시는 (획기적으로=오리지널하게) 거대한 테마 여행으로 설계되었으며, 

针对这一演变,本次展览被(开创性地)设计为一场宏大的主题之旅,

-전람은 개창적(창조적, 획기적)으로 웅대한 주제의 여행으로 피설계되고


전시품은 퐁피두 센터의 풍부한 소장품에서 엄선되어 회화, 설치물, 영상 및 뉴미디어 작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展品精选自蓬皮杜中心丰富的馆藏,涵盖了绘画、装置、影像及新媒体作品。

-전품은 봉피두(팡삐두) 중심의 풍부한 관내 장품으로 정선되어, 회화, 장치, 영상 및 신매체작품을 함애합니다.

-涵盖 포함하고 덮습니다 뚜겅 개


전시는 2개의 전시장에 분포된 7개의 장을 통해 1905년부터 현재까지 자연과 도시 환경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展览通过(分布于两个展厅内的七个章节),探讨了自1905年至今,自然与城市环境的多元表现方式。

-자연 및 성시환경의 다원표현방식을 탐(구)토(론)했습니다.


이러한 풍경 표현 형식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여 현대 풍경 주제의 독특성을 드러냅니다.

这些风景的表现形式从不同视角切入,揭示了现当代风景题材的独特性。


-절입하다. qiērù 깊이 파고 들다 (cf. 切入点 착안점)


-일본어로 절과 입을 쓰는 어휘는 키리이루 切入る 칼을 휘두르며 적 속으로 쳐들어가다, / 입에 책 받침이 붇어 일본에만 쓰는 표현이 되는 코무를 붙이며 키리코무切(り)込む는 깊이 베다 < 상대방의 논의를 날카롭게 추궁하여 따진다.

일본어의 절은 '무언가를 자르듯이 깔끔하다, 깔끔하게 다 하다, 마무리하다'의 뉘앙스가 있다. 한국에는 자르다의 뉘앙스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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