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한문 목판본 읽었다.


기원전 5-3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은 사도 내습을 자연재해의 일종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지중해 연안에서 전승되던 고대문명의 서사시가 실크로드를 건너 한문으로 기록되고 변형된 판본을 안노 히데아키가 현대 일본을 배경으로 재구성하고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하면서 처음의 설정이 많이 변형되었다.


에반게리온 원전은 생각보다 짧다. 플라톤부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후대 주석가가 덧붙인 내용이 워낙 많아 지금 분량이 된 것이다. 특히 인류보완계획 부분은 옛 선현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갈렸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비밀에 잠겼던 내용을 자세히 강독한다.


葛城赤木綾波真司侍坐. 碇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갈성, 적목, 능파, 진사 시좌. 정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카츠라기, 아카기, 아야나미, 신지가 겐도를 모시고 앉았다. 이카리 겐도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너희보다 스코시 많다하나 보쿠 때문에 어려워들 말게나"



葛城赤木綾波真司侍坐. 碇曰 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갈성, 적목, 능파, 진사 시좌. 정왈 이오일일장호이. 무오이야

카츠라기, 아카기, 아야나미, 신지가 겐도를 모시고 앉았다. 이카리 겐도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내 나이가 너희보다 스코시 많다하나 보쿠 때문에 어려워들 말게나"


○ 주석: 갈성은 카츠라기 미사토를 일컫고, 적목은 아카기 리츠코를 이르며, 능파는 아야나미 레이를 지칭한다. 동월은 후유츠키 코조, 부사령관이다. 진사는 일본국 발음으로 신지를 음차한 것이다. 

<희>는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들>자를 더하면 뜻이 거듭 나온다. (복수중복) 그러므로 <너희>라고 하는 것이 옳다.


居則曰 ‘不吾知也!’如或知爾 則何以哉

거즉왈 ‘불오지야!’여혹지이 즉하이재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거얌!" 이라고 말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를 알아준다면 어떻게 쓰여지겠는가!


葛城率爾而對曰 

갈성솔이이대왈 

카츠라기가 경거망동하여 대답하기를


巨人機械之國 攝乎異域之間 加之以使徒 因之以崩壞

거인기계지국 섭호이역지간 가지이사도 인지이붕괴

거대한 기계가 있는 나라가 외부의 위협 속에 있고, 사도들의 공격까지 더하여져 그로 인해 세계가 붕괴됩니다. 


葛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戰 且知懼也

갈야위지 비급삽년 가사유전 차지구야

제가 맡는다면 3년 안에 싸울 수 있게 만들고 두려움을 알게 하겠습니다.


夫子哂之.

부자신지.

라고 하니 이카리 겐도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赤木! 爾.何如 

적목! 이.하여 

아카기! 너는 어떠냐? 


對曰 絕對心界之理 三賢機之事 赤木爲之 比及三年 可使人機相應 如其補完之議 以俟君子

대왈 절대심계지리 삼현기지사 적목위지 비급삼년 가사인기상응 여기보완지의 이사군자

대답하기를 AT필드의 원리와 마기 시스템의 운용이라면 제가 맡겠습니다. 3년이면 인간과 기계(에바)가 서로 호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인류보완계획 같은 문제는 더 지혜로운 사람을 기다리겠습니다.

○절대심계는 AT필드(Absolute Terror FIELD)를 이른다. 삼현기는 MAGI 인공지능 시스템을 일컫으며, MAGI는 라틴어 magus의 복수로 멜키오르, 발타사르, 카스파르 세 현자에서 유래했다. 인기상응은 인간과 기계가 상호 교감하는 것이다. 기계는 곧 복음기(에반게리온)을 뜻한다. 아카기 리츠고의 위爲(하다)는 석析(분석)을 말한다.


綾波! 爾.何如 

능파! 이.하여 

아야나미! 너는 어떠냐? 


對曰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대왈 비왈능지 원학언. 종묘지사 여회동 단장보 원위소상언.


對曰 非曰能之 願從命焉. 神人相接之事 如使徒來襲 白羽衣 乘福音機 願爲操初号機者焉

대왈 비왈능지 원종명언 신인상접지사 여사도내습 백우의 승복음기 원위조초호기자언

"제가 잘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못합니다. 다만 명을 따르길 원합니다. 신과 사람이 서로 만나는 일 또는 사도가 습격하는 때에 흰 깃옷을 입고 에바에 올라, 그 초호기 파일럿이 되고 싶습니다."

○ 복음기는 에반게리온이다. 조초호기자는 술목(VO)구조다. 조종하다+초호기를+하는 자.


真司! 爾.何如 

진사! 이.하여

신지! 너는 어떠한가?


鼓琴希 鏗爾 舍琴而作 對曰 異乎.三子者之撰!

고금희 갱이 사금이작 대왈 이호.삼자자지선!

그 첼로 연주를 드문드문하다가 소리가 희미해지며 툭하고 첼로를 놓고 일어나 대답했다. "세 사람(의 갖고 있는 것=뜻)과는 다르답니다! 지가우요!"

○琴금은 大提琴대제금, 첼로를 이른다. 곧, (서)양금이다. 撰具也. 선, 구야. 선은 갖춤이다. 뒷 내용과 연결되어 志(뜻 지)와 같다.


碇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정왈 하상호 역각언기지야.

이카리 겐도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자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曰 莫春者 使徒旣滅 福音機旣藏 同僚五六人 友達六七人 遊乎第三東京市海岸 風乎第一中學 詠而歸

왈 모춘자 사도기멸 복음기기장 동료오륙인 우달육칠인 유호제삼동경시해안 풍호제일중학 영이귀

(신지가) 말하기를 "늦봄에 사도가 사라지고 에바가 봉인되면 동료 5,6인과 토모다찌 6,7명과 함께 제3동경신도시 해변에서 목욕하고 학교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올거다냥!"

○작중배경에서 늦봄은 곧 맑은 여름이다. 사도멸망과 에바봉인이라는 불가능한 일을 상상한 것이다.

신지의 열망은 정치나 정서가 아닌 친구들과 함께 물에 들어가고 즐거이 바람을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는 평범한 하루다. 거대한 인류보완계획, NERV 총사령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을 바라보고 있찌 않다는 뜻이 은연중 말밖에 나타났으니, 친구 몇 사람과 함께 해변을 걷다가 저녁 바닷바람을 맞으며 말없이 돌아오고 싶다는 의중을 표한 것이다.


夫子喟然歎曰 吾與爾也!  四子者出 冬月後. 冬月曰 夫.四子者之言.何如

부자위연탄왈 오여이야!  사자자출 동월후. 동월왈 부.사자자지언.하여

선생님께서 우왕! 하고 감탄하시며, 나는 너(신지)를 허여한다, 하셨다." 네 사람이 나가자 후유츠키가 뒤에 남았었는데 후유츠키가 말하였다. 저 네 사람(카츠라기 미사토, 아카기 리츠코, 아야나미 레이, 이카리 신지)의 말이 어떻습니까? 


碇曰 亦各言其志也已矣.  曰夫子何哂.葛城也 

정왈 역각언기지야이의.  왈부자하신.갈성야   

이카리 겐도 선생님께서 대답하셨다. 또한 각각 자신의 뜻을 말했을 뿐이다. 선생님께서 어째서 카츠라기에게 빙그레 웃으셨습니까? 


NERV 운영은 예로써 해야하는데 그녀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절제를 모르고 맥주나 퍼마시므로 웃은 것이다.

○NERV는 国際連合直属非公開組織 特務機関(국제연합직속비공식기관 특무기관)을 이른다. 


아카기 리츠코가 말한 것은 과학기술과 행정운영의 일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이후 소실)


정리하면

카츠라기 미사토 = 자로 "사도가 와도 싸우겠슴돠!"

아카기 리츠코 = 염유 "기술적 문제는 해결해드리죠"

아야나미 레이 = 공서화 "배우겠습니다. 보조 역할을 맡겠습니다."

이카리 신지 = 증석 "친구들과 학교에 가고 싶어! 놀거야!"


참고로 증석曾晳의 일본발음은 소-세키(そうせき)로


夏目漱石 나츠메 소-세키 Natsume Sōseki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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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관한 구 63빌딩 아쿠아리움에 생긴 퐁피두 한화 큐비즘전이 있듯, 상하이에도 퐁피두 분관이 있다. 언젠가 가봐야지. 이름은 서안미술관 West Bund Museum이다.


서쪽 강기슭을 뜻하는 씨안(西岸 서안 West Bund)으로 불리고, 마찬가지로 강기슭을 의미하는 와이탄 지역의 연장선에 있다. 와이탄이 조금 더 역사문화적 브랜드가치가 높아 상위개념에 가깝다.


https://wbmshanghai.com/zh-hans/exhibition/reinventing-landscape-2025


시안을 영어로 직역하면 West Bund가 아니라 West Bank가 되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상하이 정부는 일부러 West Bund라는 영어 이름을 공식 채택했는데 그 이유는 더이상 강기슭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세계적 금융문화관광중심지로서 상하이의 와이탄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더 분드로 확장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영국 런던 사우스뱅크나 프랑스 좌안(히브 고슈 rive gauche) 같은 프리미엄 수변 문화 지구를 글로벌적으로 벤치마킹한 사례로 보인다.


그러니까 명사의 지시적 의미로 황푸강의 서쪽 강기슭을 넘어서, 기존의 역사문화적 명소로 쓰이던 와이탄이라는 이름을 The Bund로 확장하려는 현대적인 도시계획의 일환이다. 초광역도시로서 메가시티 서울이 위례 하남 판교를 포함하려는 것과 같은 의도라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왜 Bund를 쓰는지 궁금했었는데 논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내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흥미로웠다.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urban-history/article/colonial-concepts-in-motion-the-shanghai-bund-and-its-british-imperial-genealogies/3C245E27DD35F197B7369497CFD60904?utm_campaign=shareaholic&utm_medium=copy_link&utm_source=bookmark


일견 Bund는 분데스레푸블릭(독일 연방공화국)이나 분데스리가(독일 프로축구)같이 연합, 동맹, 연방, Federation, Union을 뜻하는 독일어 접미사가 생각난다. 고대 게르만어에 뿌리를 둔 순수 독일어 단어로, 영어의 묶다(Bind) 결속, 채권(Bond과 같은 계보에 있다.


그런데 상하이에서 쓰는 강기슭으로서 분드는 유럽과 전혀 상관없는 인도 페르시아 계통의 어원이었다.


인도 페르시아어로 Bunder는 제방, 둑, 강가, 항구를 의미하고 19세기 영국 상인들이 상하이에 가져왔다. 아편전쟁 이후 황푸강 서안을 매립하고 제방을 쌓으며 인도에서 쓰던 표현대로 더 분드(강기슭)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저 유럽 어휘와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는 다른 가짜 친구 인도페르시아 어휘을 더 멀리 상하이로 옮긴 주체가 영국인일 뿐.


앵글로색슨, 게르만이 사용하던 맥락이 아니라 영국식 인도 식민지 영어가 상하이에 이식된 특이한 사례다.


정리하면, 독일어의 분드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한 연방, 동맹, 결속이고

상하이의 분드는 인도페르시아 분더의 제방이다. 


아울러 이 퐁피두 센터의 소장품이 와자와자 먼 길을 비행해서 왔는데 다시 돌아가기보다 다음 시즌에 이웃나라 한국의 퐁피두로 오지 않을까도 생각해본다. 두 번 오는 것보다 순회하는데 필요한 이동경비가 절약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르겠지만.


같은 순회전이라도 나라에 따라 배치방식이나 소개글이 달라서 지역, 문화의 차이를 드러내서 큰 배움이 된다. 마치 같은 고기 식재료가 다르게 요리되듯, 같은 작품도 다른 공간, 문화, 언어, 맥락을 만나 다르게 수용된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으나 전시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전시 서문을 다 번역하고 일부 코멘트한다.



1) ding,sheng鼎盛이나 han,gai涵盖나 tan,tao探讨처럼 고풍스러운 어휘가 눈에 띄고


2) 같은 한자인데 한중일 다른 뉘앙스가 드러나는 점도 흥미로우며 (切入)


3) 서양미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구절이 독특하다.


서양의 발전과정이 중국보다 느렸다, 풍경화는 중국에 이미 있었던 유구한 전통인데 서양이 조금 늦게 도입했지만 볼 만하다, 라는 살짝 문화적 위계를 자국에 두지만 둘 다 존중하는 듯한 미묘한 뉘앙스가 읽힌다.


한국어로 다 자연스럽게 풀지만, 원래 한문의 특성을 살려 20세기 초 국한문 혼용체의 느낌으로 다시 서술하기도 해보았다.


번역


중국 예술과 달리, 서양 예술은 매!우! 뒤늦게 풍경에 자율성을 부여했습니다.

与中国艺术不同,西方艺术/很晚才/赋予风景自主性 ;


오랜 시간 동안, 풍경은 (간신히) 영웅 주제나 전원 장면의 그림에서만 배경으로 나타났습니다.

在很长一段时间里,风景<仅仅>在英雄主题或田园场景的绘画中作为背景出现。


독립적인 주제의 풍경화는 19세기에 바야흐로 절정에 달했으며, 특히 인상파의 부상과 함께 두드러졌습니다.

作为独立题材的风景画在19世纪达到<鼎盛>,尤其是随着印象派的兴起。

-鼎 솥 정 盛 성할 성 = 바야흐로 한창 흥성하다. flourishing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이 주제는 깊은 변화를 겪었으며, 그 스타일은 선구적인 예술 운동에 의해 변화되었고, 도식은 점점 더 산업화 과정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在20世纪至21世纪,这一题材经历了深刻的变革,其风格受先锋艺术运动的驱使发生转变,图式则日益受到工业化进程的影响。

-그 풍격은 선봉적 예술운동의 구사에 의해 전변이 발생했고, 도식은 공업화과정의 영향을 일익 수수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여 이번 전시는 (획기적으로=오리지널하게) 거대한 테마 여행으로 설계되었으며, 

针对这一演变,本次展览被(开创性地)设计为一场宏大的主题之旅,

-전람은 개창적(창조적, 획기적)으로 웅대한 주제의 여행으로 피설계되고


전시품은 퐁피두 센터의 풍부한 소장품에서 엄선되어 회화, 설치물, 영상 및 뉴미디어 작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展品精选自蓬皮杜中心丰富的馆藏,涵盖了绘画、装置、影像及新媒体作品。

-전품은 봉피두(팡삐두) 중심의 풍부한 관내 장품으로 정선되어, 회화, 장치, 영상 및 신매체작품을 함애합니다.

-涵盖 포함하고 덮습니다 뚜겅 개


전시는 2개의 전시장에 분포된 7개의 장을 통해 1905년부터 현재까지 자연과 도시 환경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展览通过(分布于两个展厅内的七个章节),探讨了自1905年至今,自然与城市环境的多元表现方式。

-자연 및 성시환경의 다원표현방식을 탐(구)토(론)했습니다.


이러한 풍경 표현 형식은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여 현대 풍경 주제의 독특성을 드러냅니다.

这些风景的表现形式从不同视角切入,揭示了现当代风景题材的独特性。


-절입하다. qiērù 깊이 파고 들다 (cf. 切入点 착안점)


-일본어로 절과 입을 쓰는 어휘는 키리이루 切入る 칼을 휘두르며 적 속으로 쳐들어가다, / 입에 책 받침이 붇어 일본에만 쓰는 표현이 되는 코무를 붙이며 키리코무切(り)込む는 깊이 베다 < 상대방의 논의를 날카롭게 추궁하여 따진다.

일본어의 절은 '무언가를 자르듯이 깔끔하다, 깔끔하게 다 하다, 마무리하다'의 뉘앙스가 있다. 한국에는 자르다의 뉘앙스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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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시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방문하는 곳이 스타일적으로 두 갈래로 나뉜다. 상업지향의 갤러리-아트페어와 담론지향의 미술관-비엔날레. 아트페어는 갤러리가 모여있고, 비엔날레는 미술관이 모여있는 페스티발, 혹은 모음집이다.

전자는 팔리기 위한 미술이고 후자는 시대적 비평을 위한 미술이지만 이 두 분류는 임시적인 것일뿐 무 자르듯이 잘리는 것은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 모두에서 전시를 하는 작가도 있고 경우에 따라 국공립미술관이 아트페어의 홍보역할을 하는 등 보완적 역할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도 블록버스터 상업영화와 독립예술영화가 있지만 봉준호처럼 칸느-오스카 두 곳에서 모두 상을 받은 감독이 있는 것과 같다. 예술은 엄격한 분류를 거부한다.

관객입장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미술관은 좀 어렵고 갤러리는 친근하다 정도다. 미술관은 큰 공간에 있고 전시글을 열심히 읽어야 이해가 되며, 갤러리는 작은 공간에 이리저리 나뉘어 있지만 난해하지는 않다.

그런데 같은 관객이 외국여행을 가면 갤러리보다는 미술관을 더 편하게 여긴다. 한국에서 갤러리를 자주 다니다가도 외국에 가면 갤러리를 잘 가지 않는다. 한국에서 미술관을 어려워하다가도 외국에 가면 미술관에 간다. 물론 외국화랑의 문지방을 넘었다가 구매의사ㄷ 없는데 혹시 말이라도 걸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수 있다.

외국에서 미술관은 접근성이 좋고 방문에 심리적 허들이 별로 없으며 다들 미술관은 한 번 정도 가는 것 같아서 돈이 많건 적건 방문 부담이 없다. 한편 갤러리는 그렇지 않으며, 관광객을 위한 정보도 미술관보다 적은 편인데다가, 무엇보다 시간이 금인 임시 방문객으로서 단위 면적당 작품량이 적은 갤러리를 많은 시간을 걸려서 가느니 미술관에 가는 게 낫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문득 홍콩 H Queens 빌딩은 글로벌 화랑 세 네 곳이 모여있는데 007영화같이 감시요원이 작품을 훼손하지는 않는가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그런 적이 없어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미술관을 막론하고 미술관의 모든 전시를 사람들이 편하게 관람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서양회화 (인상주의)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과, 한국 전통미술 서예, 민화, 도자기를 애호하는 사람이 있다. 현대미술만 가는 사람이 있다. 셋 다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 미술관에서 드러난 자신의 취향이 외국 미술관 방문시에도 이어진다. 유럽 회화를 좋아했다면 높은 확률로 일본 도쿄 우에노 국립서양미술관에 갈 것이다. 리움 고미술관과 국중박의 도자기를 좋아했다면 높은 확률로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기박물관을 갈 것이다.

유럽회화는? 돈만 있다면 서유럽에 가서 쉥겐무비자협정 90일을 꽉 채워서 볼 만큼 엄청난 컬렉션이 있다. 본토에는.

국내미술관 전시 선택요건과 외국미술관의 그것이 연결되는 까닭은 배경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내 나라 내 땅 내 문화 내 말씨 내 제도가 아니라 승강장을 놓칠까 버스를 놓칠까 정신이 곤두서 있는데 미술관에서 마저 너무 지적 레벨이 높아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이미 자국에서도 잘 알고 배웠던 것이어야 외국에서도 향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자국어로 생산하는 글, 영상 등의 콘텐츠 주제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다수가 잘 모르고 낯선 것이라면 좋아요와 조회수를 올리기 어렵다. 빠니보틀과 애굽민수의 콜라보 여행이 각광을 받은 것은 그동안 애굽민수가 유투브에서 오랫동안 이집트에 대해 설명해와서 수용계층이 형성되어있고 알아듣기 쉬운 정도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잘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집트 미라에 대해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전시도 여러 차례하기도 했다.

그럼 반례는 무엇인가.
중국 청동기
일본 사무라이 칼과 갑옷, 기모노
유럽 중세 필사본
이슬람 문양과 꾸란전시
현대미술 STS, 바디올로지로서 페미니즘, 비인간, 동물, 장애, 생태

같은 것이다. 문외한이 감상하기에 문화적 허들이 높고 마이너한 취향의 목록들.

중국 청동기를 보고 오 옛날에 이런 것도 만들었네! 하고 사진 찍고 지나치는 정도로 훑는 감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공부할 것이 천지삐까리다. 은, 서주, 춘추 등 중국고대사, 갑골문, 금문, 도철문 등의 문예학, 예기(禮器), 종묘제사, 천명, 종법제도, 봉건제, 조상숭배, 제천의례 등의 정치사회사상을 이해한 후 이런 추상적인 관념이 어떻게 물성에 반영이 되었는지 잘 쓰이지 않는 낯선 한자와 함께 톺아본다. 누구는 이것이 일본 애니에 탐닉하는 것보다 더 기쁘고 재밌는 지적 희열을 줄 수 있다. 중국 고대사 오타쿠.

鼎 정이니 爵 작이니 觚 고니 尊 존이니 卣 유니 簋 궤니 鐘 종이니 鐃 뇨니 하는 어마무시하게 복잡한 글자와 각 발음의 한글발음, 중국발음, 일본음독과 영어해석과 그 형태와 디테일상에서의 차이들. 바로 이래서 전공자 박사가 있는 것이다.

미술관이 이렇게 어려우니 팔리기 위한 상업예술 전시하지 않는 갤러리작품이 난해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고해도 굳이 발걸음하지 않는, 난해하고 낯선 전시는 예컨대 티베트 밀교, 이슬람 서예, 꾸란관련 모든 것, 인도 종교조각, 중국 청동예기, 비잔틴 신학미술, 아프리카 의례미술, 현대미술 이론전, 마야와 아즈텍 문명관련 전시, 러시아 정교회 미술, 유럽 중세필사본이 있을 것이다.

그 반대에서 국제적으로 통약가능한, 모두 쉽게 쉽게 감상가능한 장르는 대략, 인상주의, 풍경화, 초상화, 동물과 꽃 그림, 도자기, 단색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물적 감상이 된다.

역사, 미술사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깊게 볼 수 있지만, 없어도 감상이 가능하다.

사파비 왕조 꾸란 필사본전이나 은대 청동기전은 전문가가 감탄하는 전시일 수는 있지만 일반 관객이 즉각적으로 즐기기는 곤란하다.

감각적 접근(sensory access)과 해석적 접근(interpreive access)으로 구분해 본다면 인상주의는 감각적 접근성이 높고, 신학미술은 해석적 접근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겠다. 해석적 접근을 하는 모든 것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용어가 난무한다.

감각적 접근이 부각되는 미술전시에 해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석을 경유하지 않아도 감각만으로 예쁘다! 좋다! 라고 할 수 있기에 접근성이 좋다. 해석적 접근이 우위에 있는 전시는 지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재미를 느낄 여지가 없다.

도자기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청자, 백자, 흑유, 삼채, 채도, 경덕진, 가마의 위치, 환원염, 산화염, 당삼채, 송원명청, 오채, 분채, 법랑채, 여요, 관요, 균요, 정요, 용천요 같은 온갖 지리, 기술, 화학, 역사 용어를 알아야한다.

일본 사무라이 칼과 갑옷도 막부, 쇼군, 다이묘, 번, 로닌, 무사도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어휘뿐 아니라,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센고쿠, 에도와 각 지역의 발전사, 일본도의 검신구조, 하몬(刃文)이니 지하다(地肌)니 나카고(茎)니 츠바(鍔)니 코시라에(拵)하는 것들. 유파별 차이인 비젠, 야마시로, 소슈, 미노. 또, 명장 마사무네, 무라마사. 갑옷의 종류 오요로이, 도세이구소쿠,카부토, 멘포, 사시모노, 우치카케, 후리소데, 토메소데. 하카마, 오비의 디테일. 거기에 염색인 유젠, 시보리, 카타조메에 더해 와비사비, 모노노아와레 같은 미학/미의식까지. 언뜻 생각해보아도 감상 준비단계에서 지적 장애물이 매우 높다. 익숙해지면 항상 나오는 패턴이지만. 여기에다가 만화에서의 수용까지.

유럽도 인상주의 이전으로 내려가면 건축과 신학을 모르면 맹인이나 다름없다.

개신교 교회나 가톨릭 성당에 다녔다면 이런 어휘는 익숙하다.
삼위일체, 성육신, 원죄, 구속, 종말론, 연옥, 성인공경, 스콜라 철학와 교부철학의 차이, 수도원주의, 십자군, 이단심문,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등

그러나 이는 예열 단계의 초심자 어휘이고 이 이상으로 들어가 건축구조에 신학사상이 어떻게 반영되어있는지 확인하려면
Typology (예형론)
Exegesis (성서해석학)
Transubstantiation (실체변화)
Relic Cult (성유물 숭배)
Marian Devotion (성모신심)
Apse
Transept
Ambulatory
Clerestory
Tympanum
Archivolt
Jamb Figure
삼폭제단화 트립티크와 폴립티크와 성상학(Iconography)
그리고 로마네스크, 고딕의 차이, 플라잉 버트레스와 리브 볼트와 장미창을 모두 하나씩 뜯어봐야한다.

이슬람은?

타우히드
샤리아
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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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본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스탄나라의 이슬람이 러시아 사회주의와의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까지 더하면 점입가경이다.

중앙아 미술관에 가서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국내+외국 미술관에서 인상주의의 풍경화, 초상화, 동물과 꽃, 단색화 정도만 대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고 그외의 모든 곳은 감상이 쉽지 않고 전문적으로 배워도 남에게 설명하는데 그만큼 또 시간이 소요되고 이해시키느라 애를 쓰지만 인상주의만큼 효과도 없다.

그렇게 모든 전시 관련 콘텐츠의 조회수와 영향력은 보기 편하고 좋아요 받기 쉬운 미술로 수렴한다. 무해하고 반짝이며 설명이 필요없는 미술로 수렴한다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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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먼슬리 클래식 18
다자이 오사무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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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quin Phoenix and Michael Stuhlbarg


<조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나폴레옹> <허>의 호아킨 피닉스와

<링컨> <컨택트> <콜미바이유어네임> <더포스트>의 마이클 스툴버그가

너무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옛날에 올렸던 포스팅에 리스트 추가해야겠다.

-내 생각에 닮아보이는 얼굴-

한쪽이 한쪽의 보급형인 경우도 아닌 경우도

주원 강동원
박진영 멧데이먼
제시 플레먼스 브레드피트
송중기 홍경
김고은 이수지
한소희 류진

유현준 손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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