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영화이론에서 카메라는 인간의 눈을 의미한다. 패닝으로 고개를 돌리고 줌으로 집중을 한다. 카메라는 관객의 시선을 대리하고, 그렇게 연장된 인간의 시각이 필름에 영구적으로 저장된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4년작 이창(裏窓, Rear Window 뒷쪽 창문이라는 뜻)에서 카메라는 주인공의 방 안에서 주인공이 시선을 이동하는대로 따라간다. 인간의 눈이 세계를 훔쳐보는 방식을 카메라가 재현한다. 가장 쉬운 예시로, 앞서 걸어가는 주인공의 뒤를 찍으며 따라가는 카메라는 뒤따라가는 내 시선을 나타낸다.
이걸 기준점으로 두고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세르지오 리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는 땀과 주름이 보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황야를 길게 응시하는 익스트림 롱샷을 사용한다. 사람은 그렇게 볼 수 없다. 과잉된 눈이다. 오스 야스지로의 다다미숏은 사람눈높이보다 낮고 움직이지 않으니 그 누구의 눈도 아니다. 주체 없는 시선, 함께 앉아 있는 존재에 가깝다. 관객은 동일시 없이 인물 옆에 머문다 개입하지 않기에 스토리도 클라이맥스나 폭로가 없이 정적으로 흐른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액션 영화의 카메라도 눈이 아니다. 액션을 돋보이게 설계된 장치로, 관객은 자유롭게 보는게 아니라 무술합을 특정 방식으로 보도록 호명된다. 사람이 있기에 불가능한 각도로 끊임없이 위치를 이동하며 액션 연출자를 조명한다. 핸드핼드로 찍은 킹스맨도 마찬가지다. 또, 작은아씨들처럼 페미니즘이론으로 카메라는 남근적 시선male gaze로 권력화된 시선의 배치로 읽을 수 있다.
카메라를 눈이라는 감각기관이 아니라 기록장치는 점에 주목하면 인간의 현재형 지각이 아니라 감독이 재현한 세계에 남겨진 흔적을 재호출하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럼 카메라의 시선은 지각하기에(늦기에) 사후적이다.
한편 영화에서 중요한건 누가 보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보게 되었느냐에 있다. 카메라는 특정인의 시선을 대행하기보다 시선이 성립하는 환경을 드러낸다. 거리나 높이나 방해(차단)이나 반복 등 그래서 보는 이는 인물의 눈을공유하는 걸 넘어 시선이 조작되는 구조를 추체험한다.
아울러 카메라를 주어로 두고 카메라가 무엇을 보느냐에서 한결 더 나아가보자. 카메라가 어떻게 서있고 누워있고 매달려 있는지를 상상해보자. 낮은 앵글은 불안정한 몸의 자세, 핸드핼드는 균형을 잃은 육체일 수 있다. 우선적으로 신체 감각적으로 접근한 후 감정 해석이 뒤따른다.
메멘토처럼 컷을 눈 깜빡임과 기억의 누락으로 볼 수도 있다. 시각적으로 연속되지 않은 컷마다 기억이 건너뛴다. 장면은 잘리고 공백은 의문을 남긴다. 그럼 카메라는 기억 재구성 장치다.
최근 트렌드에서 특이한 예시가 보인다.
CCTV(하나그리고둘, 롱디, 드라마 등 여럿), 차량 블박숏(밤낚시), 버즈아이뷰, 부감숏에서 나아간 상승 하강하는 드론숏(플라워킬링문)
드론으로 낮게 활공하는 숏(흑백요리사2)
바디캠숏(자백의 대가)
그중 가장 의아한 숏은 냉장고 안에 고프로를 넣고 냉장고를 여는 배우의 얼굴을 찍는 방법이다. 팬텀스레드에서 찻잔 아래 숏도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