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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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 카를로스 푸엔테스 / 송상기 옮김 / 민음사



그녀는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해.

드디어 그녀의 두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 안에서 너는 거품을 일으키며 파도치다

이내 잠잠해지곤 다시 파도를 일으키는 초록빛 바다를 발견해.

그 눈망울들을 바라보며 넌 꿈이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여.



월급 900페소를 받는 역사학자인 펠리페 몬테로는 프랑스 체류경험이 있는 젊은 비서를 뽑는다는 채용광고를 보게 된다. 4000페소와 함께 숙식제공의 좋은 조건에 끌려 펠리페는 그곳으로 찾아간다. 콘수엘로부인은 남편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부탁한다. 비망록을 출판하려는 것이다. 펠리페는 너무 어두운 그집이 내키지 않아 자신의 집에서 원고를 정리하고자 했으나 조카를 소개받고 갑작스레 나타난 아우라를 보자 펠리페는 그녀들과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 초록빛 눈동자의 아우라!



콘수엘로 부인의 집에서 지내며 펠리페는 콘수엘로가 아우라에게 비밀스러운 힘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는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둡고 그늘진 집에서 갇혀 다 죽어가는 노파를 돌보며 사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는 누군가 올가미로부터 구출해주길 바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악몽을 꾸다 깨어난 펠리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속삭이는 누군가의 손길을 느낀다. 그것은 아우라였다!



"당신은 제 남편이예요."



펠리페는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에서 부인 콘수엘로에 대해 적어 놓은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요렌테 장군이 부인을 안 것은 부인의 나이 열다섯 살이었고 녹색 눈을 가진 어린 인형이라 표현하며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적고 있었다. 그리고 나이를 계산해보니 콘수엘로 부인은 백아홉 살이었다! 비망록을 읽으며 펠리페는 왜 아우라가 콘수엘로부인의 집에 있는지 알게 된다, 불쌍한 미치광이 노파에게 젊음과 아름다운에 대한 허상을 지속시켜주기 위해 초상처럼 거울 속에 갇힌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엌에서 본 아우라는 새끼 양의 목을 자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펠리페는 구역질을 하고 만다. 아우라와 눈이 마주쳤으나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던 아우라. 그리고 펠리페는 노파에게 가서 따지려 한다. 그런데 노파는 허공에 팔을 뻗고 두 손을 움직이며 한 손은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뭔가를 잡고 있는 것 같고 다른 손은 주먹을 쥐고 계속 같은 곳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뭔가를 자르는 듯했다. 부인은 이번엔 뭔가를 벗기고 있다. 마치 짐승의 가죽 같은 것을.....



아우라라는 이름과 1876년이라는 연도가 흰 잉크로 적인 이 은판사진의 접힌 뒷면에는

우리의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며 찍음. 이라고 "콘수엘로 요렌테"라는 서명과 같은 필체로 적혀 있어.

이번엔 아우라가 노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는데,

외출복 차림으로 어느 정원 벤치에 둘이 앉아 있어. 이 사진은 조금 지워졌는데.

아우라가 첫 번째 사진만큼 젊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맞아.

그런데 그 노인은 말이지.... 바로 너야.




읽어가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증이 더 증폭이 되었는데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결말이랄까?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명사인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환상주의 작품인 <아우라>. 주인공인 펠리페를 '너'라 지칭하는 화자는 누구인지 정확치 않다. 주인공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2인칭 시점으로 주인공을 이끌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뭔가 음산하고 어둡고 그늘진 집으로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없는 콘수엘로 부인과 그녀의 조카 아우라를 만나기에 이른다.



콘수엘로 부인의 남편인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을 보며 아우라가 콘수엘로와 동일 인물이고 주인공 펠리페는 요렌테 장군임을 알게 된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동시대의 사람이 아닌 그들을 연결하는 것은 바로 콘수엘로의 염원이다. 아우라를 통하여 펠리페의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비밀(?)을 알지 못하는 펠리페와 독자는 펠리페의 심리를 따라가다가 다른 인물들이 같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과거와 현재라는 개념이 없는 <아우라>는 몽환적이면서 요렌테 장군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오싹함까지 더해진다. 처음 펠리페가 콘수엘로 부인의 집을 찾아갈 때 69번지였다가 현재는 815번지가 된 것부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함을 뜻한다. 아우라가 콘수엘로였다는 것을 안 펠리페는 절망한다. 그러나 펠리페 역시 콘수엘로가 만든 욕망에 투영된 요렌테 장군의 환영이므로 모든 것은 콘수엘로의 죽음을 넘은 사랑에 대한 염원이 만든 허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욕망이 어린 허상이 만들어 낸 이야기, 콘수엘로의 사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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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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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하인리히 뵐 / 김연수 옮김 / 민음사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여섯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돈을 벌기 위해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했던 카타리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모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가정부나 판매원으로 일을 했다. 오빠를 통해 알게 된 남자와 결혼했으나 남편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도시로 떠나 이혼한다. 일을 하면서도 국가공인시험을 치고 열심히 살아간다. 신뢰를 쌓은 카타리나는 좋은 분들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대출을 받아 아파트도 산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카타리나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를 한다. 무슨 일로?



돈을 벌어 아픈 어머니와 교도소에 수감중인 오빠에게도 보내고 대출금을 차곡차곡 갚아 나가는 카타리나. 범죄와는 거리가 먼 착실한 여자인데 살인을 저지르고 자수를 하러 경찰소에 직접 찾아갔다. 매년 11월 11일 11시 11초에 시작하는 카니발 기간 중에 대모의 집에서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춤을 추고 자신의 아파트로 갔다.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카타리나. 그러나 그 남자는 나라가 찾고 있는 살인사건의 용의자이며 은행가도죄를 저지르고 도망다니던 중이었다. 경찰의 미행을 당하던 중이었는데 그남자는 카타리나의 아파트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 어떻게?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황색언론의 희생량이 된 어떤 여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황색언론이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범죄나 성적 추문 등의 사건을 과도하게 부풀려 취재, 보도하는 저널리즘을 말한다. 수배중인 루트비히가 카타리나와 함께 댄스파티를 즐기고 카타리나의 아파트까지 갔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뒤 카타리나는 경찰과 기자들의 감시 속에 지내게 되고 이를 알고 있던 기자는 카타리나 주변의 인물들을 찾아가 인터뷰하고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한다. 카타리나가 아파트에서 연행될 때 찍은 사진을 대서특필하며 자극적인 남의 일에 떠들기 좋아라하는 독자들의 수요에 공급처가 된다. 기자는 암을 앓고 있던 카타리나의 어머니를 찾아가 현재의 상황을 얘기해서 놀라게 해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카타리나의 주변지인들까지 신상털기를 시작한다. 카타리나의 전남편을 찾아가고 카타리나에게 불만이 있던 전남편에게서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자는 걸러줄 생각이 없다. 댄스파티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카타리나와 루트비히는 첫 만남에도 오랜 연인같은 인상을 주었나보다. 주변에서 기자에게 인터뷰하기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그건 우연한 만남이 아니고 분명히 재회였다고 했다. 그녀가 사회적 지위가 있는 분들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자 그녀의 깔끔하고 성실한 태도에 반한 '신사'들이 그녀에게 치근대고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우는 등의 일이 생기자 카타리나는 돈이 조금 생기자 차부터 산다. 경찰은 그녀의 재산상태와 평소의 자동차의 주행거리까지 계산하며 연인 루트비히를 감춰 주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시작해서 대대적인 신상털기를 하는데 읽는 내내 거북스러웠다. 모든 것이 각색되고 오해로 점철된 기사들 속에서 카타리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1975년도에 발표된 작품이니 '인권'과는 거리가 멀었을 당시에 담대하고 꼿꼿한 카타리나는 그러나 어느 순간 감당하지 못할 슬픔에 울어 버린다.어머니의 죽음이 그녀를 냉정과 이성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든 듯하다. 점차 카타리나와 주변인들을 죄어오는 상황에서 오해로 점철된 시선과 오보에 결국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제 폭력과 오해로 만들어 낸 이 황당한 결과를 카타리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그녀의 잃어버린 명예는 어떻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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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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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 셰익스피어 / 최종철 옮김 / 민음사




아아! 지금까지 내가 읽은 그 어떤 것에도 이야기나 역사로 들었던 그 어디에서도 참사랑의 길은

결코 순탄한 적 없었으니...

오, 지옥이다! 다른 사람 눈으로 사랑을 택하다니!




허미아를 사랑하는 두 남자, 라이샌더와 드미트리우스. 행복한 허미아여야하지만 허미아는 라이샌더를 사랑하고 허미아의 아버지는 드미트리우스와의 결혼을 종용한다. 그들은 결국 테세우스 공작을 찾아가 현명히 판단해줄 것을 요청한다. 테세우스 공작은 테세우스와 히폴리타의 결혼식에 맞춰 결정하도록 말미를 주며 허미아에게 법에 따라 죽임을 당하거나 남성과의 교제를 영원히 포기하는 방법 중 선택하도록 한다. 이에 허미아와 라이샌더는 아테네를 떠나 도망가기로 한다. 허미아는 친구인 헬레나에게 계획을 얘기해준다. 하지만 헬레나는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해 이들의 계획을 그에게 알린다.



사랑때문에 괴로워하는 청춘들을 보게 된 요정의 왕 오베론은 자신의 시종을 시켜서 드미트리우스가 자고 난 후 처음 만나는 여성 즉 헬레나를 사랑하도록 조치한다. 그러나 오베른에게서 부족한 정보를 들은 시종은 라이샌더에게 잘못 처치하고 또한 드미트리우스를 찾아 다시 처치한다. 이젠 동시에 헬레나를 사랑하게 된 두 남자. 운명의 장난은 시작되었다!





<한여름 밤의 꿈>은 3가지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허미아를 둘러 싼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이야기와 요정의 왕 오베론과 그의 아내 티타니아의 이야기 그리고 테세우스의 결혼식에 올릴 연극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굉장히 짦은 내용으로 부담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분량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 밤의 꿈>은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다루지만 여기에 신이 개입하면서 잠깐의 해프닝을 겪는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보면 질투를 하고 바람을 피고 실수하고 욕심많고 터무니없는 그야말로 신답지 않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성적이고 중용에 있어야할 신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모습은 정반대의 그것이다. 그들은 신이라기보다 인간과 신의 중간자적 존재처럼 느껴진다. 신적인 능력이 있지만 감정적이며 인간다운. 그래서 <한여름 밤의 꿈>에서도 오베론이 인간의 일에 개입하여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는 헬레나를 불쌍히 여겨 허미아에게 기울어진 드미트리우스의 마음을 헬레나에게 돌리고자 한다. 여기서 해프닝이 생긴다. 신이 주재하는 일도 가끔은 이렇게 실수하여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황당하기도 마치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가끔은 이렇게 현실 세계에도 신이 등장해서 꿈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래 볼 수 있는 짧은 <한여름 밤의 꿈>. 세계문학전집 읽기를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기를 계획한다면 얼른 만나기를 추천한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의 해프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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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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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옮김 / 민음사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저기에 있다니!




역사학자인 파룩은 게브제 郡 산하 기록보관소의 먼지투성이 궤짝안에서 발견한 필사본을 읽고 그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그 내용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꾼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 터키 함대에게 잡혀 포로가 된 '나'는 다른 노예들과는 다른 특별한 노예였다. 같은 포로가 된 이들을 낫게 해주었던 나는 학문과 예술을 공부했었다. 천체학, 수학, 물리학을 배웠을 만큼 영리했고 나를 따를 자가 없다는 자신감과 자만심에 빠져있던 스물세살 청년이었다. 이스탄불에서는 파샤(군 지휘관)의 해소천식을 고쳐주고 그의 신임을 받게 된 어느 날 파샤의 아들 결혼식 때문에 불꽃놀이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 준비를 같이 할 '호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였다!



너무나 닮은 모습에 놀랐지만 곧 나는 그리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호자'와 폭죽을 열심히 만들어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파샤의 부름에 한달음 달려갔다. 칭찬을 받으며 내 나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파샤는 무슬림으로 개종하기를 종용했고 결국 뜻을 굽히지 않은 나는 처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파샤는 곧 나를 풀어주며 호자에게 나를 선물로 주었고 호자는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호자는 천문학, 의학, 공학 등 서양의 모든 학문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우리는 함께 연구하며 모든 것을 함께 했다.



호자는 파디샤(통치자)의 눈에 들기를 원한다. 그러나 쉽사리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고 그러던 중 이스탄불은 흑사병이 돌기 시작한다. 파디샤의 명으로 흑사병을 조사하는 호자. 호자는 나의 조언으로 흑사병을 조사하고 퇴치한다. 드디어 파디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곧 전쟁이 시작되고 무기를 제작하게 된 호자와 나. 그러나 무기제조는 실패했고 전쟁도 이기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실패의 원인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곧 목숨이 위태로워진 나는 드디어 내 고향 이탈리아로 도망갔고 호자는 결혼도 하고 황실 점성술사가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돌아간 것은 내가 아니라 호자였다! 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할 것들이지요.



'나'는 이탈리아인이다. '호자'는 터키인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닮았다는 설정은 꽤나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서양과 동양은 사실 다르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호자는 '나'에게서 서양에 대한 모든 것을 흡수하려한다. 하다못해 '나'의 어린시절에 있었던 작은 일들과 내 나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 그리고 자국민들을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호자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주위에서는 둘을 쌍둥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호자는 '나'와 거울 앞에 서서 비교해보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서양과 동양은 어찌보면 닮아있는 '하나'로 설정하고 호자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행동들은 동양이 서양을 따라가고 싶은 열망을 그리는 듯도 하다. 당시의 동양은 서양에 비해 뒤처져있는 때라서 성장해야 함을 작가가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호자와 '나'를 닮은 존재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애매하면서도 아리송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성>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이다. 그는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정체성, 동서양의 문제, 문명의 충돌 등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니 조금은 <하얀 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흑사병에 걸린 호자를 버려두고 섬으로 도망쳤던 '나'는 어머니와 약혼녀가 꿈에 나타나고 처형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개종을 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돌아가기를 열망했었다. 그러한 그가 끝내는 돌아가지 않고 결혼을 하고 호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설정은 <하얀 성>을 다 읽어낼 때쯤에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자의 눈에는 서양은 따라잡고 싶은 이상향이었고 동양은 어리석은 바보로 느껴졌는데 '나'의 눈에 동양은 호자의 눈에 비친 동양과는 다르므로 그는 안주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서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고 때로는 애매한 설정들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에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하얀 성>은 한 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좀 힘에 부친다. 호자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나 자국보다는 덜 개화된 나라에서 노예로서 사는 '나'의 삶이 길어지면서 끝내 돌아가지 않고 안주하는 삶을 택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역시 고전은 읽을 때는 힘들어도 읽고 난 후에 밀려오는 전율은 왜 두고두고 필독서로 꼽히는지 알만하다. 서평을 쓰며 다시 일부분을 읽어보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처음부터 꼭꼭 씹어가며 읽어봐야할 것 같다. 왜 제목이 <하얀 성>일까? 전쟁 중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던 하얀 성.... 그 의미를 다시 되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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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
제임스 M. 케인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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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 제임스 M.케인 / 이만식 옮김 / 민음사




여기 사람들이 온다.

맥코넬 신부는 기도가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날 위해, 그리고 코라를 위해 기도해 주길.

거기가 어디이든 우리가 함께 있기를.




길 위의 남자 프랭크는 돈도 없이 고속도로 변의 간이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주인 남자 닉은 프랭크에게 같이 일 할 것을 제안한다. 망설이던 프랭크, 그러나 닉의 부인 코라를 보자 맘이 바뀐다. 너무 아름다웠던 코라.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코라도 프랭크에게 반한다. 급격히 솟아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 둘은 닉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닉은 크게 다친다. 그후 닉은 보험에 가입하고 코라와 프랭크는 다시 한번 닉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성공한다. 그러나 검사의 미끼를 덥석 물게 된 프랭크와 코라는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둘은 간신히 집행유예로 풀려나와 닉이 남긴 보험금으로 방랑벽이 도진 프랭크는 이 도시를 떠나자 제의하지만 코라는 남기를 원한다. 의견 조율이 되지 않던 차에 코라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코라가 고향에 간 사이 프랭크는 처음 만난 여자와 여행을 다녀온다. 다시 돌아온 코라는 임신을 했음을 프랭크에게 알리고 둘은 바다에 들어가 잠수를 한다. 곧 코라는 이상조짐을 느끼고 프랭크가 운전해서 급하게 병원으로 떠난다. 그러나 도통 길이 뚫리지 않자 다급해졌던 프랭크는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자 보지 못했던 배수로의 벽에 차를 들이박고 코라는 그자리에서 사망한다.




이후 프랭크는 어떻게 되었을까? 신뢰감으로부터 시작되지 못하고 치정으로 치닫은 사랑의 결말이라고 얘기해야하나? 닉이 사망하긴 했지만 계획했던 대로 일이 추진되지 않자 프랭크는 노련한 검사에게 낚이고 그것이 코라를 배신하는 일이 되자 코라는 프랭크를 증오하고 그런 코라를 보면서 괴로워하고 결국 둘은 감정의 상처를 입는다. 집행유예기간동안 코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로 간이식당은 사람이 북적거려 장사가 잘되고 보험금까지 가진 둘은 다시 감정을 회복하지만 방랑벽이 있는 프랭크는 코라에게 같이 떠나기를 종용한다. 이런 둘은 신뢰감이 쌓이지 못한 채로 불안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탄다. 둘은 과연 사랑이었을까?



범죄와 폭력세계를 다룬 것이 느와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저 치정에 의한 범죄를 다루고 있어 느와르의 시초라서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1934년에 출간되었다. 느와르.... 이렇게 쓰일 느와르가 아닌데. 또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그야말로 고전을 다룬 전집인데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그 내용이 마치 현대물에 가깝다. 치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보험이 관련된 범죄는 고전과 어울리는 소재는 아니다 싶어 전체적으로 왜 이 작품을 꼭 읽어야 하는 고전으로, 또 느와르라 칭하는지 의문이 남는다. 당시에는 굉장한 이슈를 가져온 작품이라는데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기준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렇다쳐도 이 작품을 고전이라고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하기 어렵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한 번도 우체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제목이 이런걸까? 작가는 1928년의 루스 스나이더-저드 그레이 소송사건에서 제목을 따 온다. 이 사건은 아내가 남편 몰래 남편의 명의로 보험에 가입하고 우편배달부에게 자신에게 직접 배달하라고 지시했으며 초인종을 두 번 울리는 것이 신호였다는데서 착안한다. 두 편 모두 보험을 다룬 사건이어서 그랬을까? 사람들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읽으면서 루스-저드 사건을 떠올릴까? 의문이 생긴다.



고전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생각을 글에 녹여 스토리를 만들어 대작을 완성하는 것에 늘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이번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그에 비하면 너무 아쉬워서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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