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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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옮김 / 민음사




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저기에 있다니!




역사학자인 파룩은 게브제 郡 산하 기록보관소의 먼지투성이 궤짝안에서 발견한 필사본을 읽고 그 책을 출판하기로 한다. 그 내용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꾼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 터키 함대에게 잡혀 포로가 된 '나'는 다른 노예들과는 다른 특별한 노예였다. 같은 포로가 된 이들을 낫게 해주었던 나는 학문과 예술을 공부했었다. 천체학, 수학, 물리학을 배웠을 만큼 영리했고 나를 따를 자가 없다는 자신감과 자만심에 빠져있던 스물세살 청년이었다. 이스탄불에서는 파샤(군 지휘관)의 해소천식을 고쳐주고 그의 신임을 받게 된 어느 날 파샤의 아들 결혼식 때문에 불꽃놀이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 준비를 같이 할 '호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였다!



너무나 닮은 모습에 놀랐지만 곧 나는 그리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호자'와 폭죽을 열심히 만들어 성대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파샤의 부름에 한달음 달려갔다. 칭찬을 받으며 내 나라로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파샤는 무슬림으로 개종하기를 종용했고 결국 뜻을 굽히지 않은 나는 처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파샤는 곧 나를 풀어주며 호자에게 나를 선물로 주었고 호자는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호자는 천문학, 의학, 공학 등 서양의 모든 학문에 대해서 궁금해했고 우리는 함께 연구하며 모든 것을 함께 했다.



호자는 파디샤(통치자)의 눈에 들기를 원한다. 그러나 쉽사리 그에게 기회는 오지 않고 그러던 중 이스탄불은 흑사병이 돌기 시작한다. 파디샤의 명으로 흑사병을 조사하는 호자. 호자는 나의 조언으로 흑사병을 조사하고 퇴치한다. 드디어 파디샤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곧 전쟁이 시작되고 무기를 제작하게 된 호자와 나. 그러나 무기제조는 실패했고 전쟁도 이기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실패의 원인을 나의 탓으로 돌렸다. 곧 목숨이 위태로워진 나는 드디어 내 고향 이탈리아로 도망갔고 호자는 결혼도 하고 황실 점성술사가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돌아간 것은 내가 아니라 호자였다! 둘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했던 것과 앞으로 할 것들이지요.



'나'는 이탈리아인이다. '호자'는 터키인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닮았다는 설정은 꽤나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서양과 동양은 사실 다르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호자는 '나'에게서 서양에 대한 모든 것을 흡수하려한다. 하다못해 '나'의 어린시절에 있었던 작은 일들과 내 나라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 그리고 자국민들을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호자는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주위에서는 둘을 쌍둥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호자는 '나'와 거울 앞에 서서 비교해보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서양과 동양은 어찌보면 닮아있는 '하나'로 설정하고 호자의 호기심어린 질문과 행동들은 동양이 서양을 따라가고 싶은 열망을 그리는 듯도 하다. 당시의 동양은 서양에 비해 뒤처져있는 때라서 성장해야 함을 작가가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호자와 '나'를 닮은 존재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애매하면서도 아리송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얀 성>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이다. 그는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정체성, 동서양의 문제, 문명의 충돌 등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하다니 조금은 <하얀 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흑사병에 걸린 호자를 버려두고 섬으로 도망쳤던 '나'는 어머니와 약혼녀가 꿈에 나타나고 처형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개종을 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돌아가기를 열망했었다. 그러한 그가 끝내는 돌아가지 않고 결혼을 하고 호자의 역할을 대신하는 설정은 <하얀 성>을 다 읽어낼 때쯤에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자의 눈에는 서양은 따라잡고 싶은 이상향이었고 동양은 어리석은 바보로 느껴졌는데 '나'의 눈에 동양은 호자의 눈에 비친 동양과는 다르므로 그는 안주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읽으면서 조금 지루한 감도 있었고 때로는 애매한 설정들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에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하얀 성>은 한 번 읽고 이해하기에는 좀 힘에 부친다. 호자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나 자국보다는 덜 개화된 나라에서 노예로서 사는 '나'의 삶이 길어지면서 끝내 돌아가지 않고 안주하는 삶을 택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역시 고전은 읽을 때는 힘들어도 읽고 난 후에 밀려오는 전율은 왜 두고두고 필독서로 꼽히는지 알만하다. 서평을 쓰며 다시 일부분을 읽어보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처음부터 꼭꼭 씹어가며 읽어봐야할 것 같다. 왜 제목이 <하얀 성>일까? 전쟁 중 끝내 함락시키지 못했던 하얀 성.... 그 의미를 다시 되짚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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