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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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거운 한 편의 연극을 본 느낌이다. 소설은 시종 주인공들의 생각을 독백으로 내뱉고 고뇌하고 표현한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이라기보다는 이 도시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안개 쌓인 날씨로, 무너질 듯한 건물로 묘사된다.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독자의 집중력을 유지시키고 극의 흐름으로 빨아들이는 것은 "읽는다"라기보다 "본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의 줄거리는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을만큼 짧지만 이 소설을 읽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쉽사리 쏟아놓을 수가 없다.

경계경보가 울린다. 아마도 전쟁 중인가보다. 이러한 전시 상황 중에서도 그, 왕원쉬안의 생각은 전쟁이 아닌 그의 부인 청수성으로 가득 차있다. 어머니와 부인의 끝없는 신경전이 계속되고 전쟁 속의 피폐한 삶에 지쳐가는 부인이 자신을 떠나갈까 노심초사다. 삼백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그렇다고 이 짧은 문장이 이 소설의 전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왕원쉬안과 청수성은 둘 모두 배운 자들이다. 그런데도 전쟁 속에서 "가난"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들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래"에 대하여 풍부한 꿈을 꾸던 젊은 부부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간다. 

"지금 지식인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에요."...105p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뜻있는 설계보다는 삶의 무게에 지쳐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이 지식인 부부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일 것 같지 않은 어둡고 차가운 집에서 이 부부와 어머니가 삼각구도를 이루며 조금씩 파멸로 치닫는다. '전쟁이 끝나면...'이라는 희망도 부질없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끝도없는 평행선처럼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에 선 왕원쉬안은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려고도, 이해할 수도 없다.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린가."...316p

전쟁이 끝나도 바뀌는 것은 없다. 가난한 지식인들조차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이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진심으로 이해하려고도, 진심으로 그를 위해 행동하지도 않았던 어머니나 자신의 "자유"를 찾아 남편의 곁을 지키지 않고 떠났지만 결국은 되돌아온 청수성이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잡지 않고 흐르는대로 자신의 인생을 내버려 둔 왕원쉬안이나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누구 한 사람이 잘못한 일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이 옳지도 않다. 작가는 그저 보여준다. 이런 삶이 분명 존재했음을... 

"밤은 매우 추웠다."...317p

아마도 이 추운 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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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루비와 가닛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47
재클린 윌슨 지음, 닉 샤랫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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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태어날 때 그 위의 형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받는 스트레스와 같은 것이라고 들었다. 그만큼 강렬한 경험이고 힘든 상황이라고. 아마도 평생을 비교하고 경쟁하고 우정을 나누면서도 힘겨루기를 해야 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선 각자의 인격을 존중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쌍둥이라면 어떨까. 

태어날 때부터 함께이고 모든 것을 함께 한 쌍둥이라면, 자신과 모든 것이 똑같은... 마치 거울을 보는 듯한 평생의 반려자가 언제나 함께 있으므로 그들은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담긴 존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엄연한 두 개의 인격체이므로 성격도, 개성도, 취향도 물론... 다를 수 있다. 항상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오던 이들이 과연 어떻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지.

<<쌍둥이 루비와 가닛>>은 그런 쌍둥이의 모습을 정말로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10살인 루비와 가닛은 언제나 같은 옷에 같은 머리 모양, 같은 걸음걸이, 같은 행동에 똑같이 말을 한다. 반은 남들에게 과시하거나 임팩트를 주기 위한 장난이고 반은 십년동안 매일같이 함께 했으므로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언어이다. 하지만 그들의 성격은 사실 정반대! 루비는 활발하고 나서기를 좋아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지만 가닛은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사색을 좋아한다. 그러니 가닛이 언제나 언니 루비의 결정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이렇게 평생을 보낼 수 있을까? 당연하게도 아니다.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고 급기야 새로운 생활을 위해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이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서로가 원하는 것이 서로 다름을, 지금껏 함께 붙어다니며 강한 무기로서 작용하던 것들이 이제는 삐걱거리게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때로는 질투를, 때로는 미안함을, 때로는 자존심을, 때로는 격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과연 귀엽고 발랄한 이 쌍둥이들이 험난한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 잘 도착할 수 있을까?

"이 편지를 읽고 보니 루비와 네가 늘 붙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너희 둘 모두에게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너희 둘이 서로를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각자에게 아주 귀중한 기회마저 놓치면서 말이야. 앞으로 크면서 각자 독립된 개인으로 발전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194p

작가는 이 꼬마 아가씨들의 이야기를 이들의 노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서 "나"가 되는 과정이 이 아이들의 진심어린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니 읽는 이로서 정말 진실성과 현실감을 느낄 수 있다. 이 나이 또래의 쌍둥이들이 읽으면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을 듯. 우리 딸 추천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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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태동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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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이라는 책을 알게 된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유명세보다 손예진과 고수의 영화가 우선이었다. 이미 1년도 지난 그 영화에 대한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처음 이 책을 펴들고 내용을 머릿속에 넣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아이들이 등장하는건지, 도대체 본격적인 사건은 언제쯤 시작되는건지,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때문에 진도는 지지부진했고, 중간에 책을 내려놓을 뻔했다. 

이제 1권을 힘겹게 마저 다 읽고나서야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있는 영화에 대한 정보와는 완전히 별도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과 너무나 싫어하는 패턴과 소재("권선징악"이라는 주제와 아이들은 언제나 맑아야 한다는 나의 고집을 통째로 뒤흔드는)를 어느 정도는 견디고 끝까지 읽고나서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에게도 변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성격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저 조금은 쉬운 흥미롭고 머리를 굴릴만한 추리 소설을 쓰던 이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왜!!! 유키호와 료지는 그런 길을 걸어 온 것일까. 단지 가정 환경 때문이라든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만약 그런 결론이 난다면... 난 진정으로 이 작품에 화가 날 것 같다.) 그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서라도 나머지 두 권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는 어린 시절 그들 주위에 일어난 의문의 사건들과 함께 그들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성인이 된 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왜, 그들 주위에선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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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동안 너무 게으름을 피워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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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의 특별한 여름- 국제독서협회 아동 청소년상, 뉴베리 영예상
재클린 켈리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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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잔소리쟁이 고모가 좋아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홍미라 옮김, 이승연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2월
7,500원 → 6,750원(10%할인) / 마일리지 37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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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 아프리카의 눈물- MBC 창사특집 특별 다큐멘터리
MBC [아프리카의 눈물] 제작팀 지음, 유상모 그림, 이한율 글 / MBC C&I(MBC프로덕션) / 2010년 12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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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탈무드 리더십의 유머
세상모든책 편집부 엮음, 이시현 그림 / 세상모든책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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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2월 2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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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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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옴 진리교 사건"으로 더욱 잘 알려진 일본의 지하철 사린 사건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이슈화되어 아사하라 교주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만큼 대단했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분명 그 테러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을텐데도 난 한 번도 그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 교주라는 사실과 우리나라와 별로 다르지 않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도 별 종교가 판을 치는구나!(당시는 99년이나 밀레니엄을 앞두고 종말론이 판을 치고 있었으므로)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이른 아침 출근으로 붐비는 지하철 노선 5개의 열차에 맹독성을 띤 사린이라는 가스가 유포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은 이상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몸이 좋지 않은가보다고 생각하며 더딘 반응을 보였고 역시나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지하철 역무원들이나 경찰, 소방서 등도 느린 대응으로 결국 12명 사망, 5000명이 넘는 중경상자를 냈다. 왜, 누가,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사건을 일으킨 걸까.

사건의 전모는 조금씩 밝혀졌다. 연일 보도되던 매스컴들의 관심도 점차 줄어들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범인들에게 어떤 벌을 주어야 하나...이다. 그저 우리의 일이 아니라서 교주에게만 관심을 보였던 나처럼 많은 이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가해자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언더그라운드>>는 정말 특별하다. 이 지하철 사린 사건에 대해 가능한 많은 피해자들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그 당시의 이야기 뿐만아니라,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 당시 느낌은 어땠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일년 여의 시간이 지난 후의 지금은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지. 그야말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각 노선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그곳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분류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떤 식으로 사건이 진행되었는지 개략적으로 느낄 수가 있다. 정말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에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조금은 지루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로서는 꽤나 진지하게 읽어나갔다. 이렇게도 "이야기"가 된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모두 비슷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마다(아마도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 등) 얼마나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많은 피해자들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서 생활이나 직업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작가는 이들을 취재하며 어떤 것들을 느꼈을까. 왜 이런 시도를 한 걸까.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이 취재를 해낼 수 있을까?"...204p

700페이지가 넘는 이 두꺼운 책을 통해 그당시의 사건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단지 사건만이 아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사회적 구조나 모순등도 전해져온다. "가해자"가 꼭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바로 이런 시도를 통해 독자들 스스로 그러한 것을 깨닫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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