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무거운 한 편의 연극을 본 느낌이다. 소설은 시종 주인공들의 생각을 독백으로 내뱉고 고뇌하고 표현한다. 이들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이라기보다는 이 도시의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안개 쌓인 날씨로, 무너질 듯한 건물로 묘사된다. 특별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독자의 집중력을 유지시키고 극의 흐름으로 빨아들이는 것은 "읽는다"라기보다 "본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의 줄거리는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을만큼 짧지만 이 소설을 읽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쉽사리 쏟아놓을 수가 없다. 경계경보가 울린다. 아마도 전쟁 중인가보다. 이러한 전시 상황 중에서도 그, 왕원쉬안의 생각은 전쟁이 아닌 그의 부인 청수성으로 가득 차있다. 어머니와 부인의 끝없는 신경전이 계속되고 전쟁 속의 피폐한 삶에 지쳐가는 부인이 자신을 떠나갈까 노심초사다. 삼백페이지가 넘는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그렇다고 이 짧은 문장이 이 소설의 전부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까? 왕원쉬안과 청수성은 둘 모두 배운 자들이다. 그런데도 전쟁 속에서 "가난"을 이겨낼 방법이 없다. 그들은 착취당하고 있으며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미래"에 대하여 풍부한 꿈을 꾸던 젊은 부부는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간다. "지금 지식인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에요."...105p 미래를 건설하고자 하는 뜻있는 설계보다는 삶의 무게에 지쳐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이 지식인 부부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보일 것 같지 않은 어둡고 차가운 집에서 이 부부와 어머니가 삼각구도를 이루며 조금씩 파멸로 치닫는다. '전쟁이 끝나면...'이라는 희망도 부질없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끝도없는 평행선처럼 첨예한 대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간에 선 왕원쉬안은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려고도, 이해할 수도 없다. "승리는 그들의 승리지, 우리의 승린가."...316p 전쟁이 끝나도 바뀌는 것은 없다. 가난한 지식인들조차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고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이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진심으로 이해하려고도, 진심으로 그를 위해 행동하지도 않았던 어머니나 자신의 "자유"를 찾아 남편의 곁을 지키지 않고 떠났지만 결국은 되돌아온 청수성이나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잡지 않고 흐르는대로 자신의 인생을 내버려 둔 왕원쉬안이나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누구 한 사람이 잘못한 일도 아니고 누구 한 사람이 옳지도 않다. 작가는 그저 보여준다. 이런 삶이 분명 존재했음을... "밤은 매우 추웠다."...317p 아마도 이 추운 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없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