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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
셸리 킹 지음, 이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방에 대한 책을 읽고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라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좋았다. 어떤 식으로든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래서 좋다.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건 창작된 거짓이건 상관
없다. 그냥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이 행복하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는 아니다. 줄거리만 보자면 흔하고 흔한, 그렇고
그런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는 내내 눈을 뗄 수 없고, 더 읽고 싶고 끝나가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그저 이 "헌책방"이라는 소재가
주는 꿈 같은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면 헌책방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때는 너무 어렸고 중학생이 되면 가봐야지~하고 다짐하고
나서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이미 그 동네에서 헌책방들이 싹 사라진 뒤였다. 정말 아쉬웠다. 어렸더라도 엄마를 졸라 사라지기 전의 헌책방에
가볼걸~하는 후회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신이 났었다. 가깝지 않아 자주
방문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요즘엔 신식 중고서점이 이곳저곳 들어서고 있지만 오래된 책 냄새 가득한, 이리저리 열심히 찾아야 찾아낼 수 있는
보물찾기 같은 헌책방은 아니다.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아무런 순서 없이 마구 쌓아놓은 듯한 책더미. 그 중간에 카운터만 있을 뿐이다. 주인인
휴고나 점원인 제이슨은 이 헌책방의 매출 같은 것은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저 책이 좋아서, 여기서는 책을 팔면서 마음껏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책방을 운영하고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주인공 매기가 더해진다. 실리콘밸리 한가운데에서 미래를 향해 달리다가 정리해고 당한지 6개월. 처음엔 다시 그 반짝거리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다가 어느새 희망이 좌절이 되고 난 후부터는 이 "드래건플라이"에 주저앉아 마치 점원인 듯 하루종일 로맨스물을 닥치는대로 읽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책 한 권이 그녀의 손에 들어온다. 낱장 하나하나가 다 분리되는 이 책에는 두 남녀의 필담이 적혀 있다. 매기는 책
내용보다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보면서 순식간에 끌려들어간다.
누구나 꿈이 있다. 어릴 적, 젊을 적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나를 위해 움직여준다고 생각한다. 가끔 좌절의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한 번 놓친 기회에 미련을 갖는다.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 한 발 나아가기 위해 다른 것을 바라보거나
계획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모든 일이 드래건플라이 헌책방에서
시작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꿈, 명예, 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편안함이 아닌, 자신의 열정과 젊음을 바쳐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책들은 상자에서 막 꺼낸 새 책일 때 누군가에게 선택되었다. 그 책을 사지 않고는 못 배길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표지든,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나온 구절이든, 책날개에 적힌 책의 내용이든 뭐든. 하지만 그것은 이 여행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어떤 여행이든 드래건플라이는
그 여정의 길에 위치한 정거장일 뿐이었다. 문득 주위의 책들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을 전해주는 것 같았다."...209p
걸어갈 수 있는 곳에 헌책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작정하고 가지 않고도 가끔 생각날 때면 들러 이번주 읽을 책을 잔뜩 사올 수 있는
헌책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와 함께 손잡고 오늘은 이 책~, 다음엔 이 책~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구입한 책 속에 다른 이의
흔적이라도 발견되면 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며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책방 이야기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