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Z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4
로버트 C. 오브라이언 지음, 이진 옮김 / 비룡소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렬한 빨간색 표지와 <최후의 Z>라는 제목은 다분히 도전적이다. 게다가 표지 속에는 비록 그림자의 형태이지만 총을 든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 "최후"라는 어휘에서부터 지구의 종말이 연결될 수밖에 없고 내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읽었던 <인투 더 포레스트>도 비슷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 내용이 확장될 것인가, 어느 부분에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시작 부분은 <인투 더 포레스트>와 아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고립된 시골 집, 이 골짜기 너머에선 이 세상에 멸종을 불러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인투 더 포레스트>에선 알 수 없는 전염병 같은 것이었지만 <최후의 Z>에선 핵전쟁이다. 핵이 떨어졌고 세균 전쟁이 일어나며 전쟁은 단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결국 살아남았던 사람들조차 분진이나 그 영향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버든 언덕 골짜기만이 달랐다. 이곳은 바람이 밖에서 불어오지 않고 안에서 순환했기 때문에 이 골짜기 안에 살던 두 가족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골짜기에는 16살의 딸 앤만 남았다.

 

원래는 동생도 함께여야 했다. 하지만 동생은 몰래 차 속에 숨어들었고, 사촌동생의 개 파로 또한 사라졌다. 그 이후 앤은 혼자만의 삶을 이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소의 젖을 짜고, 텃밭을 일구고 골짜기 안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고 오염되지 않은 연못 물을 길고 음식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이미 사라졌다.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루하루를 살기 위해 버티는 삶이었고 매일매일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골짜기에 낯선 이가 찾아온다.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앤은 두려움과 희망, 기쁨을 함께 느낀다.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이 골짜기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중요한 건... 이 낯선 이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철저하게 앤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앤이 일기를 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루미스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조차 앤의 생각을 따라가며 함께 추리해야 한다. 동시에 앤의 심리가 고스란히 일기에 적혀 있으므로 우리는 앤이 루미스의 어떤 행동, 어떤 말에 반응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치밀한지, 얼마나 꿈을 꾸며, 미래를 바라며 사는지를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 개봉된 영화 "지포 자카리아"에 대해 찾아봤다. 16세 보다 훨씬 나이 들어보이는 여주인공과 두 명의 남자...였다. 왠지 "사랑" 냄새가 물씬 풍겼고 삼각관계까지 될 것 같으니 이게 정말 지구의 종말에 대한 책일까 싶었는데,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바꿨나 보다. 소설에선 루미스 외에 다른 누구도 나오지 않는다. 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최후의 지구에 두 사람 만이 남았을 때 벌어질 만한 두 인간 간의 이야기이다. 평화롭게 지낼 것이냐, 누군가를 소유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심리 싸움이다.

 

"자카리아"는 앤이 좋아하는 책(어릴 적 알파벳을 익혔던) 속 마지막 Z의 설명이며 Z가 들어간 인물이다. 소설에선 지구의 가장 마지막 인간이라는 뜻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앤이 정말 최후의 인간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앤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하며 놀고 있네 라임 틴틴 스쿨 7
야니 판 데어 몰렌 지음, 김희상 옮김, 김고은 그림 / 라임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재미있는 제목에 표지 그림도 참 익살스러운데... 책을 본 중1짜리 딸은 "헉! 헐~"이라고 내뱉곤 "나보고 읽으라고 할 거 아니지?"란다. 이유는 하나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 도대체 왜 "철학"이라는 낱말이 이렇게 쳐다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존재가 되었을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외워야 할 것만 잔뜩 있고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학문. 그래도 이해해보겠다고 그때 당시 유명했던 책 <소피의 세계>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나 실패. 잘 외워지지도 않는 인물들의 이름만 잔뜩 나온다고 기억했던 책. (다시 읽어봐야겠다.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철학에 대한 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철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느낌 등을 먼저 묻고나서 철학의 정의를 알려준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 궁금한 것, 더 찾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해 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철학이라고. 우리가 좀더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여기까지는 이해하지만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아이들은 다시 멘붕 상태이다. 각각의 단계는 이해하겠으나 하나로 합쳐놓으면 다시 "철학"은 내가 모르는 것, 어려운 것,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하며 놀고 있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반 아이들과 철학 선생님이 계시고 이들의 철학 수업과 함께 반 아이들 각자의 고민이 함께 소개된다. 그래서 좋았다. 현실적인 아이들의 고민이 철학 수업을 통해 소개되는 철학자들의 고민과 함께 연계되며 아이들과 독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철학에 대해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인 철학책처럼 철학자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고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 훌륭한 철학 선생님은 자신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만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철학이 외워야 할 대상이 아닌, 내 생활 속에 스며드는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황금의 중도'라는 아름다운 개념으로 표현했어. 균형 잡힌 생각을 하며 중도를 찾아 완벽해지려 노력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야."...236p

 

철학자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때에 만난 책이라 아주 즐겁게 읽었다. 스와트 선생님의 설명은 더할나위 없이 간결하면서도 쏙쏙 이해를 돕는다. 시험도, 채점도 없는 선생님의 수업처럼 철학자의 이론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있기에 관심을 확장시키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멈춤 - 삶을 바꿀 자유의 시간
박승오.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꽤나 오래전에(아마도 10년 전쯤?) 한동안 자기계발서를 좀 읽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여러 권 읽어보고 나서 느꼈던 건, 실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좀 게으른 사람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실행력을 지닌 사람도 아니다. 아주 천천히 계획한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라 금방 읽고 바로 잊혀지는 자기계발서가 나에겐 잘 맞지 않았다.

 

<위대한 멈춤>의 선택은, 사실 실수였다. ㅎㅎ 목차를 훑어보는데 "독서"라는둥 "글쓰기"라는둥 하는 글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이 책을 받아들기 전까지 이 책이 "책에 대한 책"인 줄 알았던 것이다. 서문을 읽고서야 대강의 이 책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작가들(박승오, 홍승완)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덮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서문과 1부 "부름, 삶이 내게 말을 걸오올 때"에 있었다. 어디선가 읽은 듯한 내용이었는데 예전에 내가 읽었던 많은 자기계발서 중 유일하게 내게 감응을 준 책 <시크릿>을 생각나게 했다. 딱 한 번 밖에 읽지 못했음에도 나는 가끔 그 책 내용을 떠올린다. <위대한 멈춤>을 읽다 보니 어쩌면 나는 그 책을 곁에 두고 때때로 읽었어야 했나 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내게 떠오르는 책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멈춤>은, 그러니까 인생의 위기에, 잠깐의 멈춤의 시기에 그냥 멈춰서서 좌절하며 보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멈췄던 인생이 그냥 그렇게 원래대로 흘러가든가 그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멈춤의 시간 덕분에 아주 새로운 "나"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앞서 서문엔 이 책의 원리와 흐름, 1부에선 멈춰서 있는 동안을 성공할 수 있는 "전환기"로 부르기 위해 필요한 자세와 도구를 간단히 설명한다. 2부는 그 도구 9개에 대해 각각의 2명의 위인들의 예를 들어 실제 전환기를 설명하고 적응법에 대해 설명한다. 3부는 그 전환기를 잘 마친 후의 일상생활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이다.

 

인생에 멈춤 없이 마구 앞으로만 달리는 사람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누구나 멈춤의 시기가 온다.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 해야만 하는 일을 두고 경제력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간절히 추구하는 의지다.닥쳐올 공허감과 고독, 숱한 시련을 모른 척하거나 과소평가하지 않고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하고 걸어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내면의 영웅성과 마주하게 된다."...40p

 

내가 가끔 살면서 느낀 감응들, 현상들, 상징들을 허투루 지나버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책이 방법이라면, 자꾸만 떠오르는 책은 곁에 두고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야겠다. 최근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지금이 멈춤의 시기는 아니지만 언젠가 찾아올 그때를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즈음 엄마는 집에 있던 동화 전집을 세계 명작 전집과 교환하셨다. 맨날 책만 파고 있는 첫 딸을 위한 배려셨고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날은 세계 명작 전집이 막 집으로 온 날이었고 현관 입구에 세로로 죽~ 쌓여있었다. 지금까지 읽던 책과는 다른 책,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제인 에어>나 <테스>, <폭풍의 언덕> 같은 작품을 읽을 생각에 들떠있던 내게 가장 첫 번째 책으로 찍힌 책은 어이없게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시던 아빠가 쌓여있던 책들 맨 위에 얹혀 있던 그 책을 보시곤, "아직 저 책은 읽으면 안되는데!"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듣지 않았더라면 관심도 끌지 못했을 책이 그 한 마디로 내게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둔갑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하면서.

 

비단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가보다. "금서"로 찍힌 책들은 오히려 은밀하게 유통되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결국 금서의 벽을 뚫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금서가 왜 금서인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하는 안일한 수긍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좋은 책은 결국 살아남지 않을까...하는 긍정을 가장한 무관심이었을 것이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는 금서들에 대한 책이다.

 

"책이 세상에 나와 금서가 되었다가 다시 해금되는 이 투쟁은 사회 진보와 시대 변혁의 과정이었다. 금서와 권력의 전쟁을 통해 사상이 진보하고 문명이 발전했다. ... (중략) ... 한마디로 금서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자유의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다."...13p

 

금서는 일반인들에게 정말로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해지지 않는다. 정부나 종교와 같은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잣대로 일반인들에게 숨기고 싶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이유로 정해진다는 점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쩌면 우리는 금서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작가는 작가를 여러 기준으로 나누어 이 책이 왜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금서에서 풀려날 수 있었는지 일화 등을 통해 설명한다. 권력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금서가 된 명작이라거나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통제로, 풍기문란이라는 누명을 쓴 금서도 있다. 지금은 우리가 명작이라고 일컫는 책들이다.

 

금서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금서로 정해지고 작가가 탄압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명작들을 읽을 수 있었을까,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들이나 편집인,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지금 우리 곁에 이 명작들이 남아있었을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

 

갓 스무 살이 되어 읽었던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한 권은 한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두 권의 책은 그야말로 극과 극 체험이었다. 약 한 달 사이를 두고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포르노와 명작의 차이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책이었다. 금서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억지로 하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하지 않는 순진한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읽지 못하게 함으로 대중은 더욱 집중한다. <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속 책들 중 읽은 책도, 읽고 싶었던 책도 있지만 더욱 더 읽고 싶어진 책이 많았던 것이 아주 큰 수확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1년에 카페를 3개나 열었다 - 우리들의 로망, 전창현의 카페 창업 성공 스토리
전창현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와 제목이 참, 직설적이다. 우리집엔 케이블 TV도 없고, 자기계발서도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전창현이라는 전문 강사이자 작가에 대해 잘 모른다. 비단 나뿐만은 아닐텐데, 자신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데다 굉장히 도전적인 제목이다. 자신이 이룬 사실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는 듯하면서 자랑하는 듯도 하고 따라올테면 따라와~하는 분위기도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카페 창업의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와~ 도대체 어떻게? 한 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한다.

 

표지 속 소제목의 "우리들의 로망"이라는 문구처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카페 창업을 꿈꾼다. 다른 많은 장사보다 왠지 쉬워보이기도 하고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주는 우아함이나 편안함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 안에서 앉아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첫 챕터에 가장 쓴소리를 뱉는다.

 

"CHAPTER 1 내 카페에서 책 읽고 싶은 당신, 낭만부터 버려라."

 

솔직히 아니라고 못하겠다. 우리집 근처에 한 치킨집이 어느날 카페로 변신하고 사람이 없어보이는 날, 참 많은 시간에 자리에 앉아 독서하시는 모습을 보며 난 돈 내고 카페 가서 책 읽는데 저분은 저렇게 자기 카페에서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좋겠다는 생각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 동안 지켜보며 저 사장님은 저 빌딩 주인이신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됐는데 혼자 책 읽으시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도 망하지 않고 오랜 시간 유지하고 있어서다.

 

작가는 이미 커피 시장은 레드 오션이며 많은 카페들이 창업했다 문을 닫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는 카페는 존재한다는 사실, 그렇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점만 바라보는 낭만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객관적으로 창업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 그 무엇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행하고 보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책은 카페 창업에 대해 꽤나 구체적이다. 본인이 이미 1년 동안 카페 3개를 창업한 경험이 있으므로 그 과정 자체와 과정 동안 일어난 실수들, 자신이 만든 시스템, 좋은 노하우 등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때문에 실질적으로 카페 창업을 준비 중이라면 무척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둘이서 시골에 자리잡고 카페 하나 열어 책도 읽고 여생을 보내자며 지나가듯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또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동안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우리집 근처 카페를 보고 걱정했듯이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만큼 한가하다면 그 카페는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꼼꼼하지 못하고 게으른 사람은, 얼른 그 꿈을 접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