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시턴의 아름답고 슬픈 야생동물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0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 지음, 김세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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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시턴"이라는 이름이 처음엔 낯설었는데 "동물"이라는 단어와 "시턴"을 연결시키니, 어린 시절 집집마다 있었던 "시턴 동물기"와 연결이 된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아이 읽으라고 사놓고 한쪽에 고이 전시된(아이는 창작 소설만 좋아하기에) 책을 꺼내 오랜만에 들춰보았다. 전혀 다른 책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1898년에 <어니스트 시턴의 아름답고 슬픈 야생 동물 이야기>를 발표하고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후 계속해서 야생 동물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덧붙여 <시턴 동물기>가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나는 원래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함께하길 바라는 사람이라서 이 책이 제목대로 참 아름답고 슬펐다. 읽으면서는 한 편 한 편 아껴 읽었다. 그만큼 좋았다. 일상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서 읽고 싶어질 만큼.

 

책은 모두 일곱 개의 야생 동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늑대, 까마귀, 숨꼬리토끼, 사냥개, 여우, 야생마, 양치기 개 등 종류도 다양하다. 책을 읽을 땐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문화 같은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목처럼 야생 동물들은 모두 슬픈 결말을 맺게 되는데 그 결말이 거의 인간에 의해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생 동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농장주나 양치기들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자신들의 재산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딱 그 중간의 입장에서 시턴은 청탁을 받고 야생 동물을 관찰하기 시작하지만 그 동물들의 삶에 감동하고 공감한다. 따라서 자칫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도 그 두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론 "가슴 저미는 눈물, 어미 여우 빅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어린이 동화 <검은 여우>와 비슷한 이야기였는데 결말은 많이 달랐다. 아마도 동화책 속에서는 적극적으로 아기 여우를 풀어주려는 주인공 아이의 적극적인 행동이 있었던 반면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인간에게 잡혀 굴욕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선택한 빅슨의 결정이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모른다. 그렇게 결정했던 빅슨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구차스러운 삶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미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야생 동물의 삶은 항상 비극으로 끝난다. ...(중략) ... 동물들도 우리처럼 느낌이나 소망을 가진 생명체들이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권리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8p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아이들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다. 시턴이 동물을 관찰하면서 느낀 점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대화도 하고 생각을 따라가며 행동하듯 서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이야기들이 거짓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시턴이 동물들에게 애정을 갖고 무척 자세히 관찰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제 우리 주변에서 야생 동물을 쉽게 볼 수 없다. 혹은 편견으로 무조건 내쫓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생태계를 이루는 아주 중요한,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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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울 땐 어떡하지? - 마음속 두려움과 불안감 극복하기 인성교육 보물창고 22
코넬리아 스펠만 지음, 캐시 파킨슨 그림, 마술연필 옮김 / 보물창고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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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주 어렸을 땐 용감무쌍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녔죠. '어떻게 저렇게 겁이 없지?' 싶을 정도로 말이에요~. 어둡거나 밝거나 신경쓰지 않고 위험한 곳도 성큼성큼. 사실 그건 아이가 정말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3살이 되자 아이는 갑자기 겁쟁이가 되었거든요. 어두운 곳은 무서워서 가기 싫고, 엄마랑 떨어지는 것도 무섭고,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도 무서워졌죠.

 

<무서울 땐 어떡하지?>는 그런 3~4세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이제 무언가 조금 알게 되는 나이, 자신과 주변을 구별할 줄 알고 그 차이도 알게 되고 그러므로 익숙한 것이 더 좋고 새로운 것은 조금 두려워지는 나이죠.

 

<무서울 땐 어떡하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읽는 아이들에게 공감하게끔 만들어요.

 

 

언제 무서운지 각각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럴 때 무섭다고 이야기하니 아이들은 저절로 "나도 그래~"하고 외치게 되겠죠.

 

심지어 어른들도 그런 무서움을 느낀다고, 무섭다고 해서 아기 같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서울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주죠.

 

 

책 내용 중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이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었어요.

무서움이 때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사실 말이죠. 다칠까봐 느끼는 무서움은 오히려 우리를 안전하게 해준다는 것.  그 외 위험하지 않은 것이라면 직접 확인하고 무서워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에요.

 

"난 가끔 무서워.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지!"...(본문 중...)

 

우리 딸아이는 맨날 엄마 택배만 온다고 슬퍼하다가 이번 <무서울 땐 어떡하지?>를 받고 정말 좋아했어요. 게다가 좋아하는 곰돌이 주인공까지~! 자러 갈 때 읽어달라고 꼭 끌어안고 갔죠. 사실 처음엔 스토리 위주의 책이 아니라서 아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그건 그냥 엄마의 기우네요. ^^ 아이는 책 내용을 들으며 "응, 나도 그래", "맞아맞아." 등등 엄청 공감하면서 읽더라고요. 그리고 무서움을 이겨나가는 부분에선 "나도 그렇게 하지~ 엄마?"하고 묻기도 하고요. 그리고 며칠 후, 불 꺼진 부엌에 가서 뭘 좀 가져오라고 시켰더니, 무서워서 못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책 내용을 떠올려 주며 함께 손잡고 갔죠. 여기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고요. 그리고 무서울 땐 불을 켤 수 있다고.

 

아이가 무섭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이 책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네요. 때론 무서움이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지만 위험하지 않은 경우엔 언제든 용기를 내어도 괜찮다고 말이에요. 또 주위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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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비룡소 클래식 41
빅토르 위고 지음, 윤진 옮김 / 비룡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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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인가...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의 최초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고, 큰 맘 먹고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예약하고 남편과 함께 관람하러 갔던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책으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간단하게나마 줄거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공연의 언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오리지널 팀의 훌륭한 음악과 연기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리고 그만큼 만족시켜 주었던 공연이었다.

 

아... 그런데, 그때 난 정말 그 음악과 노래의 감동만 들었던 것인지... 이번에 "비룡소 클래식"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으며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용과 너무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길고 긴 소설을 약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으로 줄이다 보니 생기는 오차도 있을 것이고 음악이나 이미지로 표현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르게 기억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하며 자책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파리의 노트르담> 독서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적어도 이젠 이 내용을 잘못알지는 않을테니까.

 

원래 빅토르 위고의 원작 <파리의 노트르담>은 이 비룡소 클래식 531페이지 보다 두 배 가량 많은 분량이라고 한다. 익히 <레미제라블>에서도 그랬듯이 빅토르 위고는 당시의 역사적 현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것들이 이 소설들이 이루는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룡소 클래식"은 청소년들이 좋은 작품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시리즈이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고 읽기 싫어질 수 있는 그 많은 페이지들 중 분량만 줄인 에꼴 데 루아지르 출판사의 <파리의 노트르담>을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읽어보니 <파리의 노트르담>의 시대적 배경이 빅토르 위고 시대보다 훨씬 앞이기 때문에 작가는 루이 11세의 시대적 배경과 "파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장대한 묘사가 곳곳에 펼쳐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소도 아닌데 그 시대,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니 역시 조금은 따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스메랄다와 카지모도, 프롤로 부주교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하도록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그 절망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 오히려 파괴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이들의 불행과 인연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점점 얽히고 점점 단단해져 끝모를 비극으로 치닫는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단지 세 주인공의 엇갈린 사랑과 비극 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비열하고 너무나 권위적인 윗사람들(왕을 비롯한 귀족들, 사제들)과 그 반대편에 서 매일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기적궁 사람들을 대비하며 과연 누가 더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오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지 그저 자기 안위와 자존심만 중요한 권력자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지도 말이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은 아이들에게 살아가야 할 방향, 삶의 목적을 가르친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아주 즐겁게, 음미하며 읽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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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Fi 지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5
뤽 블랑빌랭 지음, 곽노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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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포켓몬 고"가 한국에 상륙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출시되었고 그 재미나 위험성까지 익히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는데도 단 며칠 만에 5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 게임을 다운받았단다. 길가를 돌아다니거나 공원 같은 곳을 가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포켓 스탑"을 찾거나 체육관을 찾는 아이들이 자주 보인다. 재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익히 닌텐도를 통해 만랩까지 갔던 이로서...) 저러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빙판길에 미끄러지지나 않을지 엄마 사람으로서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작은 컴퓨터가 손 안에 들어오며 우리는 이미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한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자주 들여다보며 보이지 않는 공간 어딘가의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떠도는 뉴스를 검색한다. 눈 앞에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 작은 핸드폰 안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또 4차혁명이 다가온다니,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WI-Fi 지니>는 클릭 한 번으로 가상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 특히 현실과 상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작품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내 맘대로 댓글을 달고 게임 속에 살며 신나게 폭력 속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그런 생활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

 

파비앵은 곧 휴가를 앞두고 있다. 따분한 할머니와의 생활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엄마, 아빠는 파비앵만 할머니댁에 맡기고 둘 만의 두 번째 신혼 여행을 떠나버렸다. 컴퓨터도 없는 할머니댁에서 할머니가 짠 계획대로 산행이나 산책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파비앵은 눈앞이 캄캄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파비앵을 위해 노트북을 한 대 준비해 주셨고 그 노트북으로 인해 파비앵은 더없이 스펙타클한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된다.

 

알라딘의 램프 요정 지니가 현대에선 노트북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더군다나 이 지니의 능력은 단 세 개의 소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작업도 할 수 있으니 인터넷 없이 지낼 수 없었던 파비앵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요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원하는 파비앵의 욕심 때문에 노트북은 오류가 나고 파비앵은 아주 큰 교훈을 얻게 된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것만큼 위험해 보이는 것이 없다.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차가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핸드폰만 쳐다보며 고개를 수그리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식당에서 각자 핸드폰만 보며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는 가족을 보면 또 얼마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던지. 때론 낸 눈 앞에 있는 사람, 현실 속의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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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 라임 청소년 문학 25
슈테파니 회플러 지음, 전은경 옮김 / 라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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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중2병이 부모들에겐 가장 두려운 단어인데, 내 인생에 가장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을 꼽으라면, 단연 중2 때이다. 왜인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중2 시절은 "스스로 외톨이"였다. 아마 시작은 골치 아팠던 친구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고 그러다 그렇게 인상 쓰고 입 다물고 고독을 씹는 것에 혼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아무도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했다. 지금도 난 관계에 서툰 편인데 그때에는 아마도 극에 달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잘 풀어갈 힘이 없으니 도망쳤던 거다. 중2 말 새로운 친구가 내게 다가오면서 그 시절은 끝이 났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를 읽으며 내 중2 시절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너무나 왕성한 호기심으로 언제나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아무도 가지지 않을 만한 Z를 쓰는 조냐라는 이름을 가져서 언제나 혼자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점이라면 난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지만 어떻게 빠져나올지 몰라 항상 허둥댔다면 조냐는 그렇지 않았고 주위에 관심이 많은, 어쩌다 보니 외톨이가 된 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냐는 당당하게 행동한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은 자신의 호기심을 하나씩 채워가며 지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조냐가 원래 그런 아이, 혼자 지내도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란, 없다. 어쩌면 조냐 또한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에 바쁜 척 호기심을 노트에 적고 하나씩 해결하며 지워나가는 조금 별난 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 또다시 혼자서 여름을 보내던 조냐는 수영장 한 켠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멋진 다이빙을 할 것 같던 남자아이는 별안간 깊지 않은 수영장 속으로 떨어지더니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구조원도 보이지 않아 조냐는 그 남자아이를 구하고 그들은 곧 친구가 된다. 이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아이들의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처음엔 무심한 듯 낱말 게임을 하며, 조금 후엔 서로에게 질문을 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럼에도 조냐는 쥐죽(집에서 항상 쥐죽은 듯 지냈다 하여) 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특히 가족에 대해.

 

처음엔 이 길지 않은 청소년 소설이 그냥 외톨이 소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외톨이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으니 참, 너무 뻔한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술 방법이 흥미로워서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쥐죽에 대해 조금 더 밝혀지고 결국 쥐죽의 아버지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로 옮아간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는 아동 폭력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조냐의 외톨이 문제와 쥐죽의 가정 폭력, 그리고 소년 소녀의 우정까지 합쳐 딱 그 중간...정도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도가 아니라 셋 모두 흥미롭고 가슴 아프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서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무엇을 기준으로 평범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한 아이들이 봤을 때, 조냐와 쥐죽은 특이한 아이들이다. 자신들이 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거나 하지 않고 바로 물어봤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리는 건 옳지 않다. 전학을 자주 다닌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둘이 만나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면서 자신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못해도 다시 앞으로 나갈 내면의 힘이 생겼다. 나의 전부를 믿어주고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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