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노트르담 비룡소 클래식 41
빅토르 위고 지음, 윤진 옮김 / 비룡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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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인가...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의 최초 내한 공연 소식을 접하고, 큰 맘 먹고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며 예약하고 남편과 함께 관람하러 갔던 적이 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책으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간단하게나마 줄거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공연의 언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오리지널 팀의 훌륭한 음악과 연기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리고 그만큼 만족시켜 주었던 공연이었다.

 

아... 그런데, 그때 난 정말 그 음악과 노래의 감동만 들었던 것인지... 이번에 "비룡소 클래식"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으며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용과 너무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길고 긴 소설을 약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으로 줄이다 보니 생기는 오차도 있을 것이고 음악이나 이미지로 표현되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르게 기억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하며 자책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파리의 노트르담> 독서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적어도 이젠 이 내용을 잘못알지는 않을테니까.

 

원래 빅토르 위고의 원작 <파리의 노트르담>은 이 비룡소 클래식 531페이지 보다 두 배 가량 많은 분량이라고 한다. 익히 <레미제라블>에서도 그랬듯이 빅토르 위고는 당시의 역사적 현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런 것들이 이 소설들이 이루는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룡소 클래식"은 청소년들이 좋은 작품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시리즈이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고 읽기 싫어질 수 있는 그 많은 페이지들 중 분량만 줄인 에꼴 데 루아지르 출판사의 <파리의 노트르담>을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읽어보니 <파리의 노트르담>의 시대적 배경이 빅토르 위고 시대보다 훨씬 앞이기 때문에 작가는 루이 11세의 시대적 배경과 "파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장대한 묘사가 곳곳에 펼쳐진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소도 아닌데 그 시대,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자니 역시 조금은 따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스메랄다와 카지모도, 프롤로 부주교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하도록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너무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그 절망감에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무나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을 때 오히려 파괴해버리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이들의 불행과 인연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점점 얽히고 점점 단단해져 끝모를 비극으로 치닫는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단지 세 주인공의 엇갈린 사랑과 비극 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비열하고 너무나 권위적인 윗사람들(왕을 비롯한 귀족들, 사제들)과 그 반대편에 서 매일을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기적궁 사람들을 대비하며 과연 누가 더 비인간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오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지 그저 자기 안위와 자존심만 중요한 권력자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지도 말이다.

 

고전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했다. 좋은 작품은 아이들에게 살아가야 할 방향, 삶의 목적을 가르친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아주 즐겁게, 음미하며 읽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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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Fi 지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5
뤽 블랑빌랭 지음, 곽노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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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포켓몬 고"가 한국에 상륙했다. 다른 나라에서 이미 출시되었고 그 재미나 위험성까지 익히 뉴스를 통해 보고 들었는데도 단 며칠 만에 5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 게임을 다운받았단다. 길가를 돌아다니거나 공원 같은 곳을 가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포켓 스탑"을 찾거나 체육관을 찾는 아이들이 자주 보인다. 재미는 충분히 이해하지만(익히 닌텐도를 통해 만랩까지 갔던 이로서...) 저러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빙판길에 미끄러지지나 않을지 엄마 사람으로서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작은 컴퓨터가 손 안에 들어오며 우리는 이미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한시도 핸드폰을 놓지 못하고 자주 들여다보며 보이지 않는 공간 어딘가의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떠도는 뉴스를 검색한다. 눈 앞에 존재하는 것보다는 이 작은 핸드폰 안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또 4차혁명이 다가온다니, 아니 이미 시작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WI-Fi 지니>는 클릭 한 번으로 가상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 특히 현실과 상상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경고를 날리는 작품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내 맘대로 댓글을 달고 게임 속에 살며 신나게 폭력 속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그런 생활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준다.

 

파비앵은 곧 휴가를 앞두고 있다. 따분한 할머니와의 생활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건만 엄마, 아빠는 파비앵만 할머니댁에 맡기고 둘 만의 두 번째 신혼 여행을 떠나버렸다. 컴퓨터도 없는 할머니댁에서 할머니가 짠 계획대로 산행이나 산책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파비앵은 눈앞이 캄캄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파비앵을 위해 노트북을 한 대 준비해 주셨고 그 노트북으로 인해 파비앵은 더없이 스펙타클한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된다.

 

알라딘의 램프 요정 지니가 현대에선 노트북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더군다나 이 지니의 능력은 단 세 개의 소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작업도 할 수 있으니 인터넷 없이 지낼 수 없었던 파비앵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요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을 원하는 파비앵의 욕심 때문에 노트북은 오류가 나고 파비앵은 아주 큰 교훈을 얻게 된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것만큼 위험해 보이는 것이 없다.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차가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핸드폰만 쳐다보며 고개를 수그리고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식당에서 각자 핸드폰만 보며 각자의 세계에 빠져있는 가족을 보면 또 얼마나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던지. 때론 낸 눈 앞에 있는 사람, 현실 속의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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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 라임 청소년 문학 25
슈테파니 회플러 지음, 전은경 옮김 / 라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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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중2병이 부모들에겐 가장 두려운 단어인데, 내 인생에 가장 우울하고 어두웠던 시절을 꼽으라면, 단연 중2 때이다. 왜인지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지만 나의 중2 시절은 "스스로 외톨이"였다. 아마 시작은 골치 아팠던 친구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고 그러다 그렇게 인상 쓰고 입 다물고 고독을 씹는 것에 혼자 빠져들었던 것 같다. 아무도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치고 지냈다. 그렇게 지내는 게 더 편했다. 지금도 난 관계에 서툰 편인데 그때에는 아마도 극에 달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잘 풀어갈 힘이 없으니 도망쳤던 거다. 중2 말 새로운 친구가 내게 다가오면서 그 시절은 끝이 났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를 읽으며 내 중2 시절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하다. 너무나 왕성한 호기심으로 언제나 엉뚱한 행동을 일삼고 아무도 가지지 않을 만한 Z를 쓰는 조냐라는 이름을 가져서 언제나 혼자인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점이라면 난 스스로 외톨이가 되었지만 어떻게 빠져나올지 몰라 항상 허둥댔다면 조냐는 그렇지 않았고 주위에 관심이 많은, 어쩌다 보니 외톨이가 된 아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조냐는 당당하게 행동한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은 자신의 호기심을 하나씩 채워가며 지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은 조냐가 원래 그런 아이, 혼자 지내도 괜찮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란, 없다. 어쩌면 조냐 또한 외톨이가 되었기 때문에 바쁜 척 호기심을 노트에 적고 하나씩 해결하며 지워나가는 조금 별난 아이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 또다시 혼자서 여름을 보내던 조냐는 수영장 한 켠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한 남자아이를 발견한다. 멋진 다이빙을 할 것 같던 남자아이는 별안간 깊지 않은 수영장 속으로 떨어지더니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구조원도 보이지 않아 조냐는 그 남자아이를 구하고 그들은 곧 친구가 된다. 이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일반적인 아이들의 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처음엔 무심한 듯 낱말 게임을 하며, 조금 후엔 서로에게 질문을 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아간다. 그럼에도 조냐는 쥐죽(집에서 항상 쥐죽은 듯 지냈다 하여) 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특히 가족에 대해.

 

처음엔 이 길지 않은 청소년 소설이 그냥 외톨이 소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외톨이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놓으니 참, 너무 뻔한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술 방법이 흥미로워서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중반 이후 쥐죽에 대해 조금 더 밝혀지고 결국 쥐죽의 아버지가 등장하면서부터는 조금 다른 주제로 옮아간다.

 

<우리는 외계에서 왔을지도 몰라>는 아동 폭력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지는 않다. 조냐의 외톨이 문제와 쥐죽의 가정 폭력, 그리고 소년 소녀의 우정까지 합쳐 딱 그 중간...정도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정도가 아니라 셋 모두 흥미롭고 가슴 아프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서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무엇을 기준으로 평범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라도)한 아이들이 봤을 때, 조냐와 쥐죽은 특이한 아이들이다. 자신들이 외계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지만 궁금한 것이 있어도 참거나 하지 않고 바로 물어봤다는 이유만으로 따돌리는 건 옳지 않다. 전학을 자주 다닌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둘이 만나 서로를 진정 이해하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면서 자신들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는 못해도 다시 앞으로 나갈 내면의 힘이 생겼다. 나의 전부를 믿어주고 걱정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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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Z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44
로버트 C. 오브라이언 지음, 이진 옮김 / 비룡소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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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빨간색 표지와 <최후의 Z>라는 제목은 다분히 도전적이다. 게다가 표지 속에는 비록 그림자의 형태이지만 총을 든 누군가가 있지 않은가. "최후"라는 어휘에서부터 지구의 종말이 연결될 수밖에 없고 내용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읽었던 <인투 더 포레스트>도 비슷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 내용이 확장될 것인가, 어느 부분에 작가가 중점을 두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시작 부분은 <인투 더 포레스트>와 아주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고립된 시골 집, 이 골짜기 너머에선 이 세상에 멸종을 불러올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인투 더 포레스트>에선 알 수 없는 전염병 같은 것이었지만 <최후의 Z>에선 핵전쟁이다. 핵이 떨어졌고 세균 전쟁이 일어나며 전쟁은 단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결국 살아남았던 사람들조차 분진이나 그 영향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버든 언덕 골짜기만이 달랐다. 이곳은 바람이 밖에서 불어오지 않고 안에서 순환했기 때문에 이 골짜기 안에 살던 두 가족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고 골짜기에는 16살의 딸 앤만 남았다.

 

원래는 동생도 함께여야 했다. 하지만 동생은 몰래 차 속에 숨어들었고, 사촌동생의 개 파로 또한 사라졌다. 그 이후 앤은 혼자만의 삶을 이어간다. 살아남기 위해 소의 젖을 짜고, 텃밭을 일구고 골짜기 안 슈퍼마켓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고 오염되지 않은 연못 물을 길고 음식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은, 이미 사라졌다.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한루하루를 살기 위해 버티는 삶이었고 매일매일을 기억하기 위해 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골짜기에 낯선 이가 찾아온다.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앤은 두려움과 희망, 기쁨을 함께 느낀다.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면 이 골짜기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중요한 건... 이 낯선 이 "그"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철저하게 앤의 시선으로 묘사된다. 앤이 일기를 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루미스의 생각은 전혀 알 수 없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조차 앤의 생각을 따라가며 함께 추리해야 한다. 동시에 앤의 심리가 고스란히 일기에 적혀 있으므로 우리는 앤이 루미스의 어떤 행동, 어떤 말에 반응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생각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앤이 얼마나 적극적이고 치밀한지, 얼마나 꿈을 꾸며, 미래를 바라며 사는지를 말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최근 개봉된 영화 "지포 자카리아"에 대해 찾아봤다. 16세 보다 훨씬 나이 들어보이는 여주인공과 두 명의 남자...였다. 왠지 "사랑" 냄새가 물씬 풍겼고 삼각관계까지 될 것 같으니 이게 정말 지구의 종말에 대한 책일까 싶었는데, 영화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바꿨나 보다. 소설에선 루미스 외에 다른 누구도 나오지 않는다. 또,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최후의 지구에 두 사람 만이 남았을 때 벌어질 만한 두 인간 간의 이야기이다. 평화롭게 지낼 것이냐, 누군가를 소유할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치밀한 심리 싸움이다.

 

"자카리아"는 앤이 좋아하는 책(어릴 적 알파벳을 익혔던) 속 마지막 Z의 설명이며 Z가 들어간 인물이다. 소설에선 지구의 가장 마지막 인간이라는 뜻이 담긴 듯하다. 하지만 앤이 정말 최후의 인간이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앤을 위해, 인류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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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며 놀고 있네 라임 틴틴 스쿨 7
야니 판 데어 몰렌 지음, 김희상 옮김, 김고은 그림 / 라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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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에 표지 그림도 참 익살스러운데... 책을 본 중1짜리 딸은 "헉! 헐~"이라고 내뱉곤 "나보고 읽으라고 할 거 아니지?"란다. 이유는 하나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는 것. 도대체 왜 "철학"이라는 낱말이 이렇게 쳐다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존재가 되었을까.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외워야 할 것만 잔뜩 있고 이해조차 할 수 없었던 학문. 그래도 이해해보겠다고 그때 당시 유명했던 책 <소피의 세계>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나 실패. 잘 외워지지도 않는 인물들의 이름만 잔뜩 나온다고 기억했던 책. (다시 읽어봐야겠다. 지금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철학에 대한 수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철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느낌 등을 먼저 묻고나서 철학의 정의를 알려준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 궁금한 것, 더 찾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해 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철학이라고. 우리가 좀더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 우리는 제대로 생각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여기까지는 이해하지만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아이들은 다시 멘붕 상태이다. 각각의 단계는 이해하겠으나 하나로 합쳐놓으면 다시 "철학"은 내가 모르는 것, 어려운 것, 끔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하며 놀고 있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반 아이들과 철학 선생님이 계시고 이들의 철학 수업과 함께 반 아이들 각자의 고민이 함께 소개된다. 그래서 좋았다. 현실적인 아이들의 고민이 철학 수업을 통해 소개되는 철학자들의 고민과 함께 연계되며 아이들과 독자가 아주 자연스럽게 철학에 대해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일반적인 철학책처럼 철학자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고 개념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 훌륭한 철학 선생님은 자신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만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그러다보니 철학이 외워야 할 대상이 아닌, 내 생활 속에 스며드는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황금의 중도'라는 아름다운 개념으로 표현했어. 균형 잡힌 생각을 하며 중도를 찾아 완벽해지려 노력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야."...236p

 

철학자들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때에 만난 책이라 아주 즐겁게 읽었다. 스와트 선생님의 설명은 더할나위 없이 간결하면서도 쏙쏙 이해를 돕는다. 시험도, 채점도 없는 선생님의 수업처럼 철학자의 이론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있기에 관심을 확장시키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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