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50 -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김혜민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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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책 제목대로 <눈 떠보니 50>이다. 어렸을 때에는 얼른 서른이 되고 싶었다. 공부 하고 진로 선택하고 부모님의 싸움 같은 모든 고민하는 중간 과정을 뛰어넘어 가장 행복하고 안정되어 있는 상태가 서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가정을 이루어 겉으로는 안정된 상태였을지 모르겠으나 이제 막 태어난 아이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남편에 대한 고민으로 또다시 다른 나이를 꿈꾸었다. 십 년 후면 괜찮아질까. 이십 년 후면 괜찮아질까. 항상 십 년 후를 꿈꾸는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좀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50이라는 나이는 또 다르다. 반백 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훌쩍 삶의 반을 넘어버려 뭔가 조바심이 날 것 같은 나이. 게다가 인생의 후반부이므로 좀 더 높은 위치에 서야 할 것 같은 나이. 이제 그런 나이가 머지 않았지만 나만 혼자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눈 떠보니 50>은 라디오 PD인 저자 김혜민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 만의 방식으로 단단한 삶을 살고 있는 인사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주제는 역시 그들이 바라보는 50에 대하여, 3040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담고 있다. 책은 크게 5개로 나뉘어 있는데 50이라는 나이가 아직 전성기가 될 수 있다는 점, 젊게 생각하며 활발하게 청년처럼 살아갈 나이라는 점, 가족 간의 관계를 재정비할 나이라는 점, 다시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는 점, 사회와 함께 할 나이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터뷰이들이 무척 흥미를 끈다. 광고계의 전설인 박웅현에서부터 정신분석학자 정혜신, 최근 시나리오까지 자신의 활동 범위를 넓힌 문유석 판사, 홍세화 작가나 사회학자 송호근 등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유명인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50이 지난 선배들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소중하다. 꼰대로 남지 않기 위해, 아이들이 다 성장하고 떠난 후의 빈 둥지 중후군을 이겨내기 위해, 평생 직장일 것 같던 곳에서 밀려난 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해체될 것 같은 가족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만들기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을 조언해 준다. 


"제게 50대가 어떤 나이냐고 묻는다면 사소함을 주목해야 하는 나이라고 대답할 거예요."...22p 박웅현의 말 중

"나이가 들수록 정말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며,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 내면의 자신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96p 권대욱의 말 중


40대는 앞만 보고 달려갈 수밖에 없는 나이이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한창 공부하는 나이인 아이들 뒷바라지에 일도 한창 집중해야 하는 나이이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니 바로 지금 앞이 아닌 나 자신, 지금의 자리, 내 가족, 무엇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라 한다. 조바심을 내기 보다 아주 사소한 것에 만족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 한다. 그야말로 "나"에게 집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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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가 낳은 천재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29
이나미 리쓰코 지음, 이동철.박은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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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는 한국사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무척 가깝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워낙 방대하고 다양한 이 역사를 막상 이야기 하려고 하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럼 도대체 중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한 눈에 꾈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우선은 사건을 중심을 통사를 공부한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과 결과를 찾아가며 훑어본다. 그 다음으로 이어져야 할 작업은 사람이다. 그 시대에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통해 역사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씨실과 날실이 엮이는 것처럼 구석구석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사가 낳은 천재들>은 아주 탁월한 책이다. 춘추전국 시대 공자에서부터 현대 루쉰에 이르기까지 전 중국사를 통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56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통 역사 하면 정치적인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정치뿐만 아니라 문학가, 예술가와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워낙 일획을 그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역사책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이들도 있어 즐거웠다. 각 인물에 대한 일러스트 같은 얼굴이 먼저 작게라도 그려져 있는 것 또한 책을 읽는데 즐겁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책은 가장 유명한 사상가 공자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상가인 공자의 이야기를 짧지만 확실하게 갈무리할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 인물들은 우리가 흔히 알듯 제자백가 인물들이 차지한다. 그동안 중국사를 꾸준히 공부해 왔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한 번 복습의 의미로 읽고 넘어갈 만 하다. 그 뒤는 시대를 평정했던 왕 진시황제와 한무제가 등장하지만 그 이후엔 문장가인 사마상여나 병법가인 반초, 의사 화타 같은 인물을 통해 왠지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끈임없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정치적으로 배타당하든, 자신의 삶이 무너지든 상관없이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가슴을 울린다. 근대로 오면 인물들이 더욱 다양해진다. 아마도 고대와 중세에 머물렀던 역사 공부를 질타하듯 말이다. 특히 최초의 편집자였던 풍몽룡의 이야기나 장서가인 모진, 남장 여인 유여시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고 팔대산인의 이야기나 납란성덕의 시는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한다. 


한 번 독파했다고 이들이 모두 내 기억 속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길지 않은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어 이젠 아무때나 잠깐 펴서 한 사람 한 사람 읽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자주 중국사 속으로 들어간다면 나의 중국사 공부가 좀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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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 라임 청소년 문학 35
엘리 스와츠 지음, 김선영 옮김 / 라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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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에 기억나는 장면, 행동이 있다. 좀 몸이 힘들다 싶으면 침대에 누워 천장 벽지의 빙글빙글 도는 듯한 무늬를 하염없이 쳐다보며 혼돈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 혼돈이 의외로 편안함을 가져다 주어서 나중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오면 나도 모르게 벽지 무늬를 찾아 넋을 놓곤 했다. 이런 행동을 강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대로는 커서도 이러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강박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그런 증세는 어느 정도 자신의 불안을 낮춰준다는 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강박이 점점 심해져서 결국 일상 생활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면 어떨까.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행동이 될 것이고 자신이 미쳐가는 건 아닌지 두려울 것 같다. 


아직 어린 소녀, 몰리는 지금 극한에 몰려있다. 처음엔 별 거 아니었다. 조금 불안할 때 작은 유리 몽돌을 손 안에 넣고 쓰다듬기만 하면 안정되었고 그러면 자신이 하려는 걸 잘 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조금씩 더 늘어났다. 자신이 가진 장식품들을 자로 일렬로 정렬시켜야 했고 양말 서랍이나 책상 서랍을 몇 번이나 정리해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자신의 오른쪽에 서야 행운이 온다고 믿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고 자신이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몰리는 더이상 일상 생활 속에서 자신의 이런 행동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를 통해 강박 장애라는 것이 그저 단순히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유전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상담"을 받는다는 것을 굉장히 창피해 하고 꺼리는데 그 무엇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선 주위에 알리고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장점은 몰리라는 아이의 내면을 무척 섬세하게 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이라고 이제 부모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어린 동생이 있을 땐 자신의 불안과 걱정을 억지로 숨기고 그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중압감까지 얹게 되니 극심한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다 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린 동생 앞에서 나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몰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린 동생 이안과 둘도 없는 친구들 덕에 몰리의 앞날은 어둡지 않다. 


어릴 때부터 똑 부러지게 말을 잘 해서 다 큰 아이 취급 당했던 중학생 큰딸은 이제 집에서 거의 어른 취급을 받는다. 늦둥이로 태어나 매일 아기 흉내를 내지만 역시나 말, 표현을 잘한다는 이유로 5살 둘째도 더 큰 아이 취급을 받는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돼>를 읽으며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라 그렇다며 변명하면 안된다는 것, 금쪽 같은 내 자식들에게 좀 더 많은 애정 표시를 해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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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에서, 안녕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8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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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하면 떠오르는 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책보다 먼저 조용필의 노래가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앞부분의 그 긴 부분의 독백이 주는 진지함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웃음이 떠올랐다. 킬리만자로가 어디 있는지 그 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다. 이제 "킬리만자로"를 들으면 지금까지처럼 마냥 웃으며 노래 한 소절을 떠올릴 것 같지 않다. 대신 그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계 곳곳에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 같다. 


그 전, <킬리만자로에서, 안녕>은 지금 여기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공부에 지치고 경쟁에 시달리는,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아 미래의 불학실성 앞에 무너지기 직전의 대한민국 학생들 말이다. 그런 고등학교 2학년생, 윤성민은 가방 하나 둘러메고 킬리만자로를 향해 떠난다. 과감하게 "엄마,돈 좀 주세요."를 외치고 이유도 묻지 않고 아무 의심 없이 현금 카드를 내주는 엄마를 외면한 채. 독자가 의아함을 막 품고 있을 때 7음절의 두 문장을 보여준다. 


"아 버 지 도 죽 었 다.

 진 수 회 도 죽 었 다."...10p


그 이후 서술을 통해 성민이의 짧은 생을 되감기 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생 윤성민의 이야기는 조금 지루하다. 지금까지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흔하고 흔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청소년 소설에서, 이웃집을 통해서, 뉴스를 통해서... 무척이나 일반화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혹은 잘 사는 집과 비교하여 조금은 가난한 우리를 변명 혹은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내기 좋은 이야깃거리랄까. 너무 흔한 그 이야기가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 바로 킬리만자로행이다. 


자신을 꼭 킬리만자로로 데려다 달라는 여자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 성민은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만난 여대생과 동행을 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킬리만자로로 향하면서 만나게 되는 아프리카 사람들, 사건들을 맞딱뜨리며 조금씩 자신을 확인해간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폴레폴레(천천히)"라고 외치는 그들 사이에서 처음엔 그들의 여유를 배웠다가 답답함, 억울함 속에서도 폴레폴레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화도 냈다가 극한의 가난함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행복하다는 가족을 만나 삶을, 자신의 위치를 되새겨본다.


청소년기에는 많은 것들이 고민으로, 힘듦으로 다가온다. 억측하게 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바깥에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아는 분이 그래서 청소년기에서 힘들게 사는 나라를 방문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인지 깨닫게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꼭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만 힘든 건 아니라고, 깨닫게 해 줄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성민이가 킬리만자로행 이후로  부딪혀 살아보자고 마음 먹은 것처럼. 


수능이 끝났다. 불수능이라고 그 어느 때보다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아이들에게 이 하루의 결과가 너희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다. 결국은 너희들이 가장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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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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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은 실로 놀랍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잘 기억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편한대로 변형, 굴곡시킨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처음 읽은 건 한창 세계 문학, 고전이라는 작품들에 빠져 있던 중학생 때였다. <이방인>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었지만 <페스트>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막 세상에 대해 알아가던 때였으므로 무언가 그 강렬함이 어린 나에게도 확실하게 각인되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기억하는 <페스트>는 그 강렬한 잔향과 중세시대 "페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때 읽었을 때에는 세계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앞부분 분명 194X년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그냥 무시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었던 좋은 기억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 <페스트>를 읽었다. 이제 나는 인생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읽은 <페스트>는 그때의 책과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시나... 훨씬 더 좋았다...고 해야겠다. 책의 분위기나 서술 방식, 점점 조여오는 공포, 인간 군상들의 심리까지 미세먼지 가득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읽기 아주 제격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술자가 있다. "연대기"라고 밝힌 이 책의 서술자는 아주 담담하게 오랑 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오랑 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의 중심은, 의사 베르나르 리외이다. 진료실에서 나오던 중 발에 밟힌 물컹한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건물 관리인은 우리 건물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흥분하지만 곧 이 쥐 사체들은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두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길가에 가득 쌓이는 피 토한 죽은 쥐들. 이 쥐들을 직접 처리한 건물 관리인들부터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고 그들을 진료한 의사 리외는 무언가 이 도시가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을 목격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페스트는 중세 유럽에서 인구의 1/3을 죽였다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다. 그때는 무엇보다 위생이 좋지 않았고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으므로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냈을 것으로 보지만 이런 질병이 현대에서도 완전히 제압된다고도 볼 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사스 같은 질병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긴장했는지를 보면 말이다. 그러므로 이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희망을 잃고 살아가게 하는 어떤 대상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 대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페스트> 속 등장인물들이 "페스트"에 맞서는 행동은 모두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운 이 질병에 대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비극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선된다. 하지만 곧 정부에서 공식 발표가 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도시가 폐쇄되자 이번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리외나 카스텔 같은 사람들의 헌신에 감동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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