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세트 - 전2권 생각뿔 세계문학 미니북 클라우드
알베르 카뮈 지음, 안영준 옮김, 엄인정 / 생각뿔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인간의 기억은 실로 놀랍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잘 기억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편한대로 변형, 굴곡시킨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를 처음 읽은 건 한창 세계 문학, 고전이라는 작품들에 빠져 있던 중학생 때였다. <이방인>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었지만 <페스트>는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막 세상에 대해 알아가던 때였으므로 무언가 그 강렬함이 어린 나에게도 확실하게 각인되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기억하는 <페스트>는 그 강렬한 잔향과 중세시대 "페스트"를 배경으로 하는, 전혀 다른 소설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때 읽었을 때에는 세계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앞부분 분명 194X년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그냥 무시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었던 좋은 기억은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 <페스트>를 읽었다. 이제 나는 인생을 조금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 읽은 <페스트>는 그때의 책과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시나... 훨씬 더 좋았다...고 해야겠다. 책의 분위기나 서술 방식, 점점 조여오는 공포, 인간 군상들의 심리까지 미세먼지 가득하고 우중충한 날씨에 읽기 아주 제격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술자가 있다. "연대기"라고 밝힌 이 책의 서술자는 아주 담담하게 오랑 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오랑 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의 중심은, 의사 베르나르 리외이다. 진료실에서 나오던 중 발에 밟힌 물컹한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건물 관리인은 우리 건물에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흥분하지만 곧 이 쥐 사체들은 한 마리에서 두 마리, 두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어난다. 그리고 길가에 가득 쌓이는 피 토한 죽은 쥐들. 이 쥐들을 직접 처리한 건물 관리인들부터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하고 그들을 진료한 의사 리외는 무언가 이 도시가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이는 것을 목격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페스트는 중세 유럽에서 인구의 1/3을 죽였다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다. 그때는 무엇보다 위생이 좋지 않았고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으므로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냈을 것으로 보지만 이런 질병이 현대에서도 완전히 제압된다고도 볼 수 없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사스 같은 질병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긴장했는지를 보면 말이다. 그러므로 이 페스트는 단순한 전염병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대상,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고 희망을 잃고 살아가게 하는 어떤 대상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과연 이 대상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페스트> 속 등장인물들이 "페스트"에 맞서는 행동은 모두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운 이 질병에 대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런 비극이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선된다. 하지만 곧 정부에서 공식 발표가 있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도시가 폐쇄되자 이번엔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는 리외나 카스텔 같은 사람들의 헌신에 감동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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