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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와 준 ㅣ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아나이스 닌 지음, 홍성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웅진 펭귄클래식 코리아에서 표지에 변화를 주고 있다. 양장본은 아니지만 표지 디자인이 단연 압권이다. 마카롱 에디션을 봤을 때에도 예쁜 색감에 소장 욕구가 뿜뿜이었는데 뒤이어 레드 에디션이 출간되었다.

에로티시즘의 문학의 정수이자 꼭 읽어야 하는 명저만을 담았다는 레드 에디션은 모두 7권으로 구성된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을 문학으로 읽지 않고 성교육 지침서로 삼았던 유명한 제목들을 보며 오랜만에 아주 반가웠다. 이 중 내가 선택한 책은 <헨리와 준>. 사실 아무 정보도 없이 가장 안 야해보일 것 같아서 선택한 책이었다. (우리집 고딩이 제목에 현혹되지 않길 바라며..ㅋㅋ)
책을 읽는 데 온 마음을 쏟았으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해야겠다. 가독성이 좋은 소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헨리와 준>은 아나이스 닌이라는 작가가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일기 중 <북회귀선>을 쓴 헨리 밀러를 만나 "사랑"을 나눈 1년 동안의 일기를 그대로 출간한 작품이다. 그래서 사실 이 작품이 소설 카테고리에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나 어딜 봐도 일기 소설이라고 되어 있어서 혼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일기라는 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쓴다. 도저히 어디 풀어놓을 데가 없어 쏟아놓는 것이 일기이다. 하지만 동시에 글쓰기라는 건 누군가 보여주기 위해 쓴다. 따라서 온전히 자기 만의 생각을 그대로 모두 풀어놓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누군가는 나의 일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깔린다는 이야기다. <헨리와 준>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나이스는 자신이 쓴 일기는 처음부터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읽히며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하지만 너무나 솔직하고 담대한 내용이라(그 내용이 전부 100%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피해가 될지도 모르기에(특히 남편인 휴고에게) 일기마다 색깔을 붙여 제한을 둔다.
헨리 밀러와의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 또한 남편인 휴고의 생전엔 어느 정도의 편집을 거쳐 출간되었다가 휴고의 사망 이후 무편집본으로 펭귄클래식에서 다시 출간된 것이라 들었다. 따라서 이 작품엔 아나이스의 떠다니는 생각과 헨리와 그의 아내 준, 사촌 에두아노르, 그 밖의 창녀들 사이의 난잡한 성교 묘사가 난무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성교 묘사 자체보다는 그 당시에 자신이 느꼈을 감정 묘사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일기라고 하지만 날짜마다 구분된 것이 아니고(월마다는 구분되어 있다.) 생각의 간극에 따라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에 자칫 놓치면 이 글 안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이 글은 아나이스라는 다소 무명인 한 여성 작가가 이미 유명한 헨리 밀러와 그의 부인 준을 만나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는 신파로 다가가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보다는 정체된 듯한 생활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한 여성이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는 한 남성과 여성을 만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고 조금이라도 성장하려는 노력이 담긴 일기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내가 작가가 아니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실험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충실한 아내가 되었을 거라고 믿는다."...25p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고 했다는 아나이스의 이 가치관은 솔직히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거꾸로 자신이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그녀의 사랑 편집증에는 아버지 사랑의 부재가 존재한다.) 것을 풀어내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이해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사랑해야만 남편에게 더욱 충실할 수 있는 그녀에게 온전히 공감하진 못한다. 그런 일탈이 꼭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녀의 모든 행동에도 끝까지 그녀 곁을 떠나지 않은 남편이야말로 승리자가 아닐런지!
p.s 영화 <북회귀선>은 <헨리와 준>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한 영화이다. 도대체 그 영화 제목은 왜 <헨리와 준>이 아닌, 심지어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이 존재하니 당연히 사람들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소설이 원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아나이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헨리 밀러가 <북회귀선>을 출간토록 했으니 그 과정을 담아 그렇게 제목을 붙인 것 같다고 결론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원작자인 아나이스 닌의 이름이 가려져 좀 아쉽긴 하다. 소설 <북회귀선>까지 읽어야 아나이스 닌과 헨리 밀러 사이의 중심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다소 두렵긴 하지만.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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