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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평점 :
나 또한 문학 소녀이고 싶었다. 어린이 동화에서 벗어나 "문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이후로 사춘기의 감성과 함께 그 문학의 숲 안에서
살았다. 시를 필사하고 문학 노트를 만들고 작가에서 작가로 이어지며 나름 깊이있는 독서를 위해 애쓰던 때도 있었다. 그 독서가 계속 이어지진
못했다. 고등학생이 되며 손을 놓았다가 대학생이 되어서는 내세우기 위한 독서나 재미를 위한 독서를 했던 것 같다. 내게는 문학 소녀라는 말이
어리거나 유치한, 겉멋 든...이라는 속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정말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고 흠뻑 취해 깊이 있는 독서를 하고 글을
쓰는...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문학소녀>라는 책을 읽으며 적잖이 당황했다. 한때는 '문학소녀'라는 말에 어떤 속뜻이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전혜린이라는 이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책과 전혜린이라는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그림움 같은 것을 갖고 살았다. 어디선가 이름을 듣고, 책에 대한 소개를 듣고 문학소녀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성들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불운한 삶과 남성들에 반항하는 듯한 이미지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던 작가와 책, 이미지에 대해 많은 것들이 뒤집어졌다. 여류 작가가 전무하던 시절, 1세대 여성 작가로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녀가
바라던 것과 얼마나 다른 이미지로 덧씌워졌는지 등. <문학소녀>는 전혜린을 비롯한 그 시대 읽고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김용언은 전혜린의 삶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한다. 굉장히 많은 자료를 찾고 전혜린의 흔적을 쫓아 그녀가 어떤 가정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쓰려고 했는지 말이다. 가정 환경과 나라의 상황, 결혼 후 가난한 삶과 어린 시절 맛보았던 물질적 풍요, 지적 욕구와
현실 속 삶 속에서 전혜린은 너무나 극과 극인 현실과 이상 속에 힘들어했다. 그녀가 쓴 책 두 권을 통해 드러난 그녀의 사유 또한 온전히 그녀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낸다고 볼 수 없기에 저자의 이 작업은 무턱대고 선망하던 작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계기이자 덧씌워진 굴레를 벗기고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소녀들의 독서와 글쓰기는 훈육과 계몽의 주체, 많은 경우 '남성'들의 시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떤 소녀는
실존주의 문학을 '잘못' 이해해서 자살을 기도했고, 어떤 소녀는 '소녀답지 않은 현실 인식을 글로 썼기 때문에 옳지 않고, 또 어떤 소녀는
과도한 감상을 글로 쓰는 바람에 '열등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어디까지나 공인된 권장 도서를 읽되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교양으로서의
지식으로만 습득해야 했고, 그럼으로써 '서녀다운' 순수성은 간직하며 남성-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제가 제시된
것이다."...157p
남성들의 수많은 질책과 비난이 있어도 꿋꿋이 그들만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녀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우리들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온전히 평등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므로 더 나은 세상을 우리 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더 많은 문학소녀들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