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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3월
평점 :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처음 접한 건 대학 입학 후 일본어를 배우면서였다. 어느 정도 중급 이상의 실력이 되자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는데 첫 독서는 원서였기 때문에 사실 거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단지 책 속 주인공이 등장인물들을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 번역본을 다시 구입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내가 좋아하는 청소년 시리즈 "징검다리 클래식"으로 <도련님>을 읽었다. 대략 10년 만에 다시 읽는 것 같은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나이를 먹어가며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바뀌어서 그럴 것이다. 나이에 따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제 나는
주인공인 도련님보다 두 배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도련님의 입장 보다는 키요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소설은 "나"의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한다. 몇몇의 사건을 통해 "나"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호기롭고 때로는 제멋대로이며 하지만 얼마나
정의롭고 순수한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 성격 때문에 가족들은 "나"를 "글러먹은 놈"이라거나 "사람 구실도 못할 놈"이라고 제쳐놓았다.
그럼에도 자신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주는 이가 있는데 바로 집안의 가정부인 키요 할머니이다. 키요는 "성격이 올곧아서 참 좋다"거나 "마음이 너무
깨끗하다"라면서 맹목적으로 "나"를 지지해준다. "나"는 그런 키요 덕분에 아주 엇나가지 않고 가족과는 모두 헤어져도 키요 만은 자신이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도련님>의 주 무대는 됴쿄가 아니다. 어린 시절의 설명은 무척 짧고 본격적으로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은 이 도쿄를 떠나 첫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시코쿠 지방의 아주 작은 중학교이다. 아직 스스로도 제대로 독립을 하지 못한 상태라 키요 할머니와 함께 할 수 없었고 얼른
돈을 벌어 자신을 꼭 데려가라는 키요와는 안타까운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골 중학교에서 "나"는 무척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된다. 시골이라서 사람들이 순진할 것이라든가 알력 싸움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또다른 편견이다. "나"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별명을 붙여 부르며 솔직하지 못하고 잔머리를 굴리며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진저리를 친다.
"나는 원래가 무던한 성격이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별걱정없이 오늘날까지 버텨왔다. 그런데 여기 와서 한 달도 채 안 된 사이에 세상일이
너무 번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지만, 갑자기 나이를 한꺼번에 대여섯 살쯤 먹어 버린
기분이랄까."...133p
<도련님>을 두 번째 읽었을 때에는 한창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때였다. 그냥 솔직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만 다하면 되는 것이
사회 생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으며 나처럼 첫 사회 생활에 실망하고 다 버리고 떠나버리고 싶었던 도련님에게
가장 많이 공감했었다. 물론 도련님처럼 정의의 복수 같은 것은 꿈두 꿀 수 없었겠지만.
이번에 읽은 <도련님>은 도련님의 키요에 대한 애정이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진정으로 믿고 훌륭하다고 칭찬해주며 지지해준 인물에
대한 가슴 깊은 애정이 소설 전반에 걸쳐 표현된다. 그 애정을 자세히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첫 사회 생활을 겪으며 키요를 그리워하고 자신을 걱정할
키요를 생각하며 편지도 쓰고 키요에 대한 고마움도 깨닫게 되는, 도련님의 "성장"이야기였다. 특히 마지막 키요의 마지막까지 잘 돌봐준 도련님의
이야기는 가슴이 찡할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