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정말 아름다운 책을 만났다. 분명 앞, 뒤 표지는 다른 책처럼 생겼는데, 책 등이 없다. 제본 하다 만 것처럼, 약간은 끈적한... 책 제본시 사용되는 실이 그대로 보여지도록 그 위에 접착제를 바르고 말려 그 위에 그대로 제목을 찍었다. 처음엔 이대로 괜찮은 건지, 혹 책이 오래 가지 못하고 갈라지거나 두 쪽으로 쪼개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는데 그래서 조심히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어나가는 와중에 점점 이 표지에 빠져들게 된다. 제본 실의 보라색이 페이지를 펼칠 때마다 그대로 드러나면서, 앞표지의 보라색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하고 참 아름답다고 여기게 되었다.

 

책도 그렇다. 일반 소설들과는 좀 다르다. 언제 시작했는가 싶게 시작되어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있고 선뜻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다가도 정신 차리면 푹 빠져들게 된다. 경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 의아하고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며 읽고 있다 보니 앞부분을 제대로 이해했는가 싶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곤 했다. 그래도 아마 나는 이 책을 몇 번을 더 읽어야지 싶다.

 

장 라신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 아니, 어디선가 "라신"이라는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이 책을 통해서가 처음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니 그의 삶이나 작품 등에 대해선 문외한이다. 티투스와 베레니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책 소개를 통해 대강 알지 못했다면, 뒤쪽 옮긴이의 말을 통해 알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을 2%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말 그대로 글만 읽었을지 모르겠다.

 

소설은 현대의 베레니스로부터 시작한다. 티투스에게서 버림 받는 베레니스. 도저히 이 이별의 슬픔을 견딜 수 없던 베레니스는 우연히 라신의 비극시를 접하게 되고 자신들과 같은 이름, 티투스와 베레니스를 발견하고 어떤 숙명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흡입하듯 라신의 작품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새 이야기는 라신의 삶과 작품, 그의 생각, 감정들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현재형이다. 대화체는 존재하지만 따옴표 없이 물 흐르듯 씌여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라신의 시구처럼 의미를 함축하고 이미지를 전달하고 아름답게 노래한다. 솔직히 내게는 좀 어려웠다고 고백해야겠다. 몇 번이나 앞에서부터 다시 읽고 싶은 충동을 내리눌러야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즐거웠던 이유는 처음 알게 된 라신이라는 작가의 노력과 감정이, 그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이별, 사랑의 아픔을 잊으려는 베레니스의 마음이 어느새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배워야 하고 새로 읽어야 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다지 시를 즐기지 않는 나이지만 사춘기 그 시절처럼 라신의 시를 찾아 소리내어 읊어보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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