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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소설, 사진과 만나다 해외문학선 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민 옮김, 홍성덕 사진 / 청년정신 / 2017년 3월
평점 :
이번 <데미안>을 읽음으로서 지금까지 7번을 읽었다. 처음 한 번은 어떻게든 완독하겠다는 일념으로 정말 활자만 읽었던 청소년
시절이었고, 성인이 된 후 다음 두 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데미안>은 나의 상황이 어떠한지, 어떻게 읽는지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책이므로 정말로 정독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줄거리를 안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수업을 하면서 거듭 읽으며 나
자신을 투영하고서야 <데미안>과 친해졌다.
많은 이들이 잘 알고 있듯이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청소년기 시절을 <수레바퀴 아래서>에 담고 있다. 물론 <데미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작가의 직접적인 과거나 심리를 추측하기에는 <수레바퀴 아래서>가 훨씬 쉽다. 신경 쇠약에 이를 정도로까지 학업에
시달리며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야 했던 헤르만 해세가 돌파구를 찾은 건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글쓰기라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 보고 탐구한 후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만약 헤세가 글쓰기를 도구로 삼지 않았다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처럼 우울한 결말을 맞이하고 우리는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또 한 번의 슬럼프가 있다. 작가로서 자리도 잡은 후였고 결혼하여 아이도 두었다. 그런데 그
아내와 아이가 자신처럼 신경쇠약에 걸린 것이다. 이때 헤세는 두 번째 돌파구를 찾는다고 한다. 조용한 곳으로 이사한 후 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고 그림으로 마음껏 발산하는 것. 그런 후의 집합체가 후기 작품들이다.
<데미안>은 크게 보면 한 소년의 청소년기를 다루고 있다. 부모님의 평온하고 깨끗한 보살핌 아래에서 지내던 어린 소년이 차츰
바깥 세상을 향해가고 그러면서 자신 내부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이 세상이 선과
악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바로 앞의 욕망들 사이에서 고민될 때, 도대체
자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등 우리가 어른이 되며 겪는 사춘기 감성들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매우 오랫동안, 카인과 살인, 그리고 이마에 새겨진 표식에 관한 문제는 안식과 회의, 비평에 이르는 내 시도의
출발점이었다."...51p
"아, 오늘에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74p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명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208p
비단 청소년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는 곧잘 우리가 갈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작가 해세 본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아야 하고 그런 길이야말로 올바른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데미안>은 한 번 읽고 말 책이 아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마다 꺼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집에는 이미 문예출판사의 <데미안>이 있다. 이번 청년정신의 책은 홍성덕 작가의 사진이 더해져 있다. 사실 사진을 잘
알지는 못하는데 홍성덕 작가의 사진은 사진이지만 색채가 없고 마치 수묵화처럼 은밀하고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다. 때문에 감성적인 면에서는 읽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활자에만 빠져있고 그림이나 사진은 잘 보지 않는 타입이라 그다지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만약
처음 읽는 사람들이라면 문예출판사 <데미안> 표지가 도움이 될 것이다. 표지에 있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베아트리체" 그림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책이라 번역 면에서 좀 낡은 느낌이 많이 난다. 이번 청년정신 책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에 조금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