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
마고 리 셰털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동아엠앤비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표지가 예뻐서... 선택했다는 사실에 부정하지 못하겠다. 청보라색 바탕에 형광 주황빛 제목이 무척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 띠지 속 영화 포스터에 관심이 갔다. 영화를 좋아하는데다 원작이 있다면 가능하면 원작을 먼저 읽는 타입이라서, 별 생각없이 선택한 책이다. <히든 피겨스>는 논픽션은 아니다. 소제목 "미국의 우주 경쟁을 승리로 이끈, 천재 흑인 여성 수학자들의 이야기"을 보면 왜 영화로 만들어졌고 원작은 어떤 내용일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그 픽션의 이야기들 속에 숨겨진 진실된 역사와 감동을 느껴보고 싶어서다.

 

책은 '들어서며'와 23장의 본문, '에필로그', '감사의 글' 로 나뉘어 있다. 어떻게 나사의 숨겨진 흑인 여성 수학자들에 관심을 갖고 조사하게 되었는지와 그렇게 만나게 된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여려 사실들이 얼기설기 얽히며 본문을 이루고 본문에서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에필로그'에서 이야기 한다.

 

워낙 옛날의 이야기이다. 작가에겐 아버지 세대 이전 세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작가가 자란 햄프턴의 특성 상, 주위 흑인 이웃들 사이에서 들려오던 전설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는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조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책의 주인공들인 "흑인"에 "여성"의 성공이라는 점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1940년대는 역사적 사실 뿐이다. 내게도 우리 부모님이 태어나신 때이므로 어떤 연관성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인으로서는 일제 강점기 막바지로 격동의 혼란 속이었다는 점, 세계인으로서도 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 시작점에 서서 마찬가지로 혼란의 시기였다는 것을 그저 머리로만 이해할 뿐.

 

<히든 피겨스>를 읽다 보면 전 미국에 살던 몇몇의 흑인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삶을 일구고 앞으로 나아가며 싸워왔는지가 처절하게 느껴진다. 가장 명망있는 학교 선생님이 되어도 살아가기 빠듯해 다른 일거리를 찾아 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너무 똑똑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와 교수가 없어 그저 또다시 평범한 일들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시대적으로 전쟁에 필요한 격투기를 만들기 위해 여성들이 필요했고 흑인들도 필요한 상황에서 그녀들은 멈추지 않고 가정을 위해, 자신의 마음 속 불씨를 위해 그 격전지로 뛰어든다.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화장실이나 식당은 격리되 곳을 이용해야 하고 그런 사소한 무시들도 모두 견뎌야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렇게 수용하지만은 않는다.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능력을 보여주며 결국 하나씩 뛰어넘어 갔다.

 

"웨스트 컴퓨팅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무너지면 자신들뿐 아니라 다음에 오는 여자들의 기회까지 박탈된다고 느꼈다."...80p

 

그녀들은 백인 남성이 아니라 흑인 여성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인물이 아니라 흑인 여성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은 자신들 이후 세대까지 대표하며 다음 그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들을 증명했다.

 

나사라는 엄청난 두뇌 집단에는 당연히 다양한 인종,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곳조차도 인종이나 여성 차별의 벽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히든 피겨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히든 피겨스>는 그곳에 몸담고 최선을 다한 몇몇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사회를, 문화를 이야기한다. 단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다소 산만한 서술 방식은 책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었고 너무 미국 영웅주의로 흘러가는 듯도 보인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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