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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허 (완역판) - 그리스도 이야기 ㅣ 현대지성 클래식 10
루 월리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8월
평점 :
어릴 적 TV에선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방영해 주었다. 흥미진진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도 많았지만 서부 영화나 유명한 고전 영화들도
많았다. 그때엔 그런 영화들이 다분히 그리스도교적인 줄도 몰랐다. 그냥 굉장히 외국적(서양)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몇 번이나 그리스도교인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그러지 못한 나로서는 그나마 그런 영화들도 보지 못했다면 그들의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 많은 외국 영화 중 "벤허"는 가장 많이 본 영화에 속한다. 명절이나 무슨 날만 되면 반복해서 나왔기 때문인데 참 신기하게도, 그 어떤
줄거리도 생각나지 않고 유독 전차 경주 씬만 생각날 뿐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벤허"하면 생각나는 유일한 장면이다. 이번에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영화 "벤허"의 원작소설이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무려 81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책이다. 그럼에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완역본이라면
무조건 달려드는 나의 허영심도 있었지만 그리스-로마 신화 이외에 유럽의 근간을 이루는 그리스도교적인 문화 이야기를 좀 더 재미있게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로마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리스도교가 퍼져 나가던 때의 이야기는 당연히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소설
<벤허>는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나가다 보니 쉽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영화
"벤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주인공 벤허가 겪는 이러저러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부제로 "그리스도 이야기"라고 붙어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리스도와 벤허의 만남, 그리스도가 벤허에게 끼친 영향 등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880년에 출판된 작품인 만큼 지금
우리가 읽는 스피디한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19세기에서 바라보는 로마시대의 시대적 상황(정치, 경제, 문화)을 구구절절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독자들로 하여금 좀이 쑤시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이유가 한몫했을 수도 있다.
소설은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탄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어릴 적 교회에서 세뇌당하듯 들었던
동방박사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동방박사가 전혀 다른 세 대륙,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났지만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온 민족을 구원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시대를 건너뛰어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유다 벤허가 어떻게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어떻게 살아남는지로 넘어간다. 유복하게 자란 소년 유다가 시련을 거쳐 남자로 바뀌는 부분이다.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며 인고의 세월을 견딘 유다가 어떻게 복수하고 유대인의 왕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지.
여러 번 이야기했듯 나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역자 서문에서 영화 속에서 전차 장면을 너무 많이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벤허가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고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을 읽다 보니 작가 루 월리스는
아마도 유대인 유다 벤허를 통해 유대교로서의 하나님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인으로서 유다 벤허는 처음에 그리스도는 당연히 자신들만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오신 분이어야 했다. 하지만 동방박사가 이야기 하듯
예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하러 오셨다. 여기서 유대인 벤허의 갈등이 일어난다. 소설은 이 부분에 많이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비그리스도인으로서는 역시 벤허가 친구이자 적이었던 메살라에게 복수하는 전차 장면이야말로 최고의 클라이맥스가 되지 않겠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보여지는 매체이므로 말이다.
2016년 9월에 다시 만들어진 "벤허"가 개봉한다고 한다. 원작 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개봉
소식이 무척 반갑다. 오래된 화면이 아니라 모건 프리먼 등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배우도 등장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을 것이기에 기대도 크다.
벤허의 심리적인 갈등도 이해하게 되었으니 좀 더 영화를 풍성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