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비슷한 표지의 동명 소설이 있어 한동안 많이 헷갈렸던 책이다. 하지만 겉표지를 자세히 보면 "정의와 동정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책임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앞부분엔 문제 제기, 뒷부분엔 세계 저명한 인사들의 답변이 들어가 있다. 앞부분의 이야기도 집중력이 높지만 뒷부분 각각의 답변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아니 재미라고 표현하면 안될 것 같다. 기존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깨부수는 것 같은 전기가 올랐으니까. 마치 공부하듯, 그렇게 한 장 한 장 읽어갔다.

 

작가는 시몬 비젠탈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주위의 일가 친척, 친구들을 모두 잃고 아내와 단 둘이서만 살아남은 집단수용소 생존자이다. 이후 미국전쟁범죄조사 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유대역사 기록 센터를 만들어 나치 범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노력했다.

 

<해바라기>는 저자가 수용소에서 겪었던 한 사건을 주제로 한다. 집단 수용소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던 중 일어난 일. 죽음이 목전에 닿아 있고 매일 동료, 친구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비젠탈은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어느날 그는 다른 곳으로 차출되어 일을 가게 되고 그곳은 병원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비젠탈은 참을 수가 없다. 그 중에는 자신이 예전에 알던 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사람을, 아는 얼굴을 바라보는 눈빛이 아닌, 돼지나 오리, 마차는 수레 따위의 행렬처럼 보는 것이다. 그 와중에 비젠탈은 한 무리의 해바라기를 보게 된다. 무덤가에 심겨진 해바라기. 죽어서도 바깥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살아있으면서도 물건 취급받는 자신들을 생각하며 비젠탈은 병원에 도착한다.

 

그러다 갑자기 간호사에게 끌려간다. 내 의지가 아니다. 나는 감히 거역할 수 없다. 그렇게 간 어느 병실에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듯 붕대가 감긴 누군가가 누워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느닷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더니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끝까지 들어달란다. 어느 유대인들에게 지은 죄. 그것을 담고 죽으면 평안하지 못할 것 같으니 비젠탈에게 대신 용서를 해달라는 것이다. 비젠탈은 몇 번이나 그곳을 나오고 싶었지만 나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용서를 해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아마도 죽을 때까지 비젠탈은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묻는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152p

 

앞부분, 비젠탈의 이야기는 옛 영화를 보듯 그 시절의 아픔을 생각하며 그나마 편안히 읽을 수 있다. 비젠탈의 사유를 쫓아가며 너무나 고통받았을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하지만 전 SS대원이었던 카를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비젠탈의 고민과 친구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는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물음.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뒷부분의 심포지엄을 읽기 전까진 "용서하지 않겠다"였다. 하지만 이 다양한 인사들의 다양한 답변, 다양한 관점, 다양한 종요에서의 "용서"의 의미를 읽고 나니 이젠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믿는 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답변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다양한 답변을 읽는 나는 그저 이 모든 다양한 생각들에 놀라워하며 고개만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뒷부분의 심포지엄이 없었다면 이 <해바라기>는 반쪽짜리 책이 되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심포지엄은 더욱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 모르겠다. 나에게 묻는다면 나 역시 내가 살아온 역사, 경험, 가치관에 따라 대답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그들이 내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아마도 유대인들의 "용서"의 의미가 가장 큰 충격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안타까웠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범 처리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대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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