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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세트 - 전3권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라의 기틀이 비로소 잡히고 태평성대가 오려나 싶은 때에 일어난 사건이 있었다. 1498년의 무오사화로 그 이후에도 세 번의 사화가 더
있었다. "사화". 사림들이 큰 화를 입은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키며 왕이 되었을 때 그를 도운 훈구파들의 세상이었다.
하지만 권력이 유일하며 유지될 수는 없는 법, 조용히 숲에서 자신들을 갈고 닦던 사림들이 하나 둘 정계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훈구파인 공신들은
자신들의 자리에 위협을 받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일어난 첫 사건이 무오사화였고 조선엔 피바람이 불었다.
<금강>은 무오, 갑자사화 이후 중종반정을 통해 새롭게 공신이 된 이들과 신진 사류들의 싸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작은
중종의 기묘사화에서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난 선조 대까지의 이야기이다. 500여 페이지 3권으로 가히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긴 호흡의
소설을 읽는 것이 너무 오랫만이기도 하고 1부 연향편의 앞부분이 다소 산만하기도 하여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조금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다.
길고 긴 이야기의 배경이라 작가가 특별히 신경 쓴 듯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 말고 그냥 시간순으로 설명했으면 이해하는데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중종반란 이후 개혁을 위해 등정한 사람은 "조광조"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 된다. <금강>에선 조광조라는 큰 이름 뒤에
묻혀 있던 충암 김정에 주목한다. 조광조보다는 기다리고자 했지만 결국 함께 유배되고 결국 사사된 역사적 인물이다. 작가는 이 충암 김정을 필두로
그의 사상적 계승을 어떻게 이어가고 진정 그가 이루고자 했던 나라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충암이 주인공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책
1부의 시작과 함께 사사되어 사라지고 그 뒤를 잇는 인물들에 의해 그의 사상은 연결된다.
책의 1, 2, 3부 소제목은 모두 <금강> 속 주요 인물 중 큰 역할을 하는 여인네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충암 곁에서
보필하고 그의 동계 사람들의 실질적인 경제를 맡았던 소리꾼 "연향"에서부터 정희중의 아들 금석의 딸로 연향을 이어 상단의 대행수를 맡다 동계를
살리기 위해 희생된 "미금", 연향의 딸로 이 상단과 소리채의 대행수가 되어 창의 봉기를 후원하는 "부용"까지. 이들은 조선에서는 중심이 되지
못했던 여인들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아 조선이 누구나 꿈꾸는 세상이 되도록 물심양면 돕는다. 그들의
목숨까지 내어주면서까지.
"공신들은 그들의 나라를 이룬 것이었다. 그들만의 나라. 그들이 주인이고 그들만이 세상에서 당당히 살 권리가 있는 그들의 나라."...
1부 377p
충암 이후 남원의 동계가 된 이 사림, 신진사류들이 꿈꾸는 세상은 임금만의 세상도 아니고, 공신들의 나라도 아닌,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였다. 그저 배불리 먹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계절마다 꽃이 피고 그 아름다운 강산을 산책하며 특별한 고민 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
"이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력을 잡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설령 임금이 되었다 해서 이긴 것입니까? 그렇다면 하루도 쉬지
않고 역성이 일어나야 합니다. 진정 이기는 것은 백성이 천심인, 백성이 하늘이 되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2부 437p
1부의 앞부부만 제외한다면 이야기는 무척 탄탄하게 전개된다. 사건이, 인물들이, 주제가 모두 하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얼마나
오랜 시간 기획하고 구성했는지 알 수 있다. 역사소설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역사의 한 부분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풍부한 과거를
상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으며 등장인물 또한 역사적 인물이 있고 가상인물이 있다. 하지만
<금강>을 읽으며 그 간극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작가의 심혈을 기울인 시간들이 빛나는 순간이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은 대단했다. 너무나 많은 피바람이 불어 훈구파의 승리로 끝날 것 같던 이 싸움의 진정한 승리는 결국 사림파였다.
사림은 어느 한 사람을, 어떤 특정 인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사상의 연결, 후학으로의 연결이 결국 사림들을 살아남게 했다.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 권력이 있고 명예나 부를 가지고 있다고 주인이 아니다. <금강>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