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 - 후암동 골목 그 집 이야기
권희라.김종대 지음 / 리더스북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려고 틀었다. 마침 최근 내가 관심있어 하는 주택에 대한 이야기 중이었다. 직접 집을 지었다는 부부. 경기도도 아니고, 서울 한복판이란다. 외관과 내부가 조금은 차갑게도 보이고 또는 그 여백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도 보였다. 먹방, 쿡방의 시대가 가고 집방이 뜬다더니 TV에서도 전원주택이나 자투리 땅에 직접 집을 지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보여준다. 부부 중 남편이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남았다. 직접 집을 지어보고 나서야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더라는.

 

어릴 적 나는 주택에 살았다. 똑같이 찍어낸 듯한 연립주택이었지만 우리만의 마당도 있었고 다락 비슷한 것도 있었고 앞에는 산과 내가 있어 8살부터 11살까지 정말 신나게 뛰어놀던 추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힘든 일이나 삭막함이 느껴질 때면 나는 그때를 떠올린다. 동시에 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만들어주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집방의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나 또한 자꾸만 시골이나 여유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가 보다. 단, 거기까지이다. 한 번도 직접 지어보겠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왠지 만들어진 집보다 돈이 더 들 것 같기도 했고 그 일련의 과정 동안 기다림이나 경제적 융통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사당동의 한 자투리 땅에 지은 주택 건물이나 요즘 뜨는 신도시의 주택 단지 소개 같은 것들을 보고 생겨난 흥미에서부터 고른 책이다. 어쩌면 직접 집을 지으면 그냥 지어진 집을 골라 사는 것보다 더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부터 시작했달까. 막상 첫 장을 펼쳐들곤 깜짝 놀랐다. 얼마 전 TV에서 보았던 그 후암동 골목의 주택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예술 업종에서 일한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출근했다 저녁에 퇴근하는 삶이 아니라는 뜻이다. 들쭉날쭉하기도 하고 아직 아이는 어리고 어린 시절의 골목, 주택, 옥상 같은 추억을 가족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직업의 특성상 교통이 안좋은 경기도에서의 삶이 힘들기도 했다. 그렇게 결정한 서울 구심지에서 집 짓기.

 

쉬운 선택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 만의 삶을 담은 집이 필요했고 지어진 집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자신들에게 꼭 맞는 라이프 스타일과 어울리는 집에서 살려면 직접 짓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책은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땅을 알아보러 다니고, 땅을 구입하고 설계를 하고 착수에 들어가고 공사를 하고 이사를 마쳐 그 집에서 삶을 이어나가기까지의 과정이 희-노-애-락으로 표현되어 있다.

 

"노"와 "애"로 표현될 만큼 성질도 나고 짜증도 나고 결국엔 좌절 직전까지 갔지만 이 가족은 서로를 보듬고 이 집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희망을 가지고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내어 결국 "락"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 속에 말도 안되는 탁상공론식 범규나 제한으로 손해를 보기도 하고 전문가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들 편하고 이익을 내려고만 하는 업자들 사이에서 속을 끓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원칙을 고수했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을 다하자고.

 

"우리 가족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집짓기였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욕심을 비우고 남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낯춰야 하는 과정이었다. "...154p

 

그래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었다고 했나 보다.

 

사실, 책을 읽고 나도 지어보고 싶다,거나 꼭 지어야겠다,라는 생각보다 '아, 난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먼저였다. ^^; 난 도전적인 사람이 아니라 안전지향적인 사람이기에. 어떻게 보면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집을 짓고 싶을 정도로 우리 만의 집을 욕망하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조금 더 비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리고 무척 부럽기도 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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