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페터 볼레벤 지음, 장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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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엔 나무가 많았다.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우연히 이사했던 그 집이 해가 많이 드는 남향이었고 첫 집이라는 기쁨에 베란다에 화단을 만들었고 여러 종이 서로 어우러지며 무럭무럭 자랐다. 남편이 "정글"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은 너무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솎아주기"를 그때 가끔 관리해 주시던 정원사 분께 배웠다. 서로서로 너무 가까우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 거리를 두어야 하고 일조량을 위해 솎아주어야 한다고.

 

그다음 집은 같은 남향이지만 해가 들지 않고 겨울엔 베란다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춥다. 내 욕심으로 화분에 옮겨심겨진 전 집의 나무들은 그렇게 하나둘 죽어갔다. 지금은 집에서, 주변에서 나무와 가까이 할 수 없어 나는 나무와 관련된 책을 읽는다. 그렇게라도 도시에서의 생활에 숨통을 터보려는 것이다.

 

<나무 수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바로 "솎아주기"였다. 자연 상태에서의 숲에서는 일조량이 없어도, 아니 없기 때문에 더욱 건강하게 자라는 나무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모든 나무가 해만 바라보며 자라지는 않는다는, 오히려 그렇게 지난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서야 병충해와 자연재해로부터 버틸 수 있는 강한 나무가 된다고 말이다.

 

"너도밤나무가 우정을 나눌 줄 알고 심지어 서로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이미 말한 바 있다. 숲은 제아무리 허약한 구성원도 함부로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중략)... 숲의 필요성을 잘 아는 나무들은 공평한 분배와 정의를 매우 중요시 한다."...29p

 

그저 하나의 개체, 개체라고 생각했는데 마치 인간처럼 우정을 나누고 약한 개체를 살리기 위해 뿌리를 통해 자신들의 물과 영양분을 나눠준다니, 정말 놀랍다. 약하기 때문에 구성원에서 버림받고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정말 나무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부터 해왔다. 직접 키우다 보면 하루하루의 변화를 알게 되고 그렇게 식물들의 감정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접했던 나무들은 기껏해야 몇십 년 사는 나무들이었기에 <나무 수업> 속의 숲 이야기는 우리 세계를 굉장히 거시적으로 보게 해 주었다.

 

도시에 심어진 많은 가로수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인간의 삶을 좀 더 보기 좋고 편하게 하기 위해 심겨진 이 나무들의 생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사람들은 소모된 나무는 베고 다시 새로운 나무를 심지만 몇 백년이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나무 입장에서는 성장을 억제당하고 기후에 시달리고 쓸모에 의해 차단당하기까지 한다. 인간의 삶이 고작 100년이 채 안되니 그 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 리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가.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은 비단 인간 사이의 이야기 뿐은 아니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말로는 번지르르 해대면서 행동은 따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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