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설을 낳다 - 테마소설집
김진초 외 지음 / 케포이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에야 중학생 수업을 위해 <원미동 사람들> 중 한 편을 읽었다. 부천이라는 곳이 내게 아주 먼 곳이 아닌, 한동안 몸담고 있었던 곳이었기에 시대를 뛰어넘어 더욱 애착과 공감이 갔다. 마치 내 옛 고향을 들여다 보는 듯 했던 것 같다. <인천, 소설을 낳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끌렸던 건 바로 이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느꼈던 향수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부천 만큼, 더 어린 시절에 내가 살던 곳. 그 이후에도 애착을 갖고 가끔 찾아가는 곳. 한 작가가 아닌, 여섯 명의 작가가 쓴 테마 소설집이기에 더 많은 인천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리라...하는 기대감에 말이다.

 

우선, <인천, 소설을 낳다>는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인천을 소재로 한 테마 소설집이다. 여성 작가 여섯 명이 모여 "인천"을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 여덟 편을 써서 모았다. 이들끼리의 모임 "소주 한 병"이라는 소설 모임 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구성된 책이라니 소설집이 만들어진 계기가 참 멋지다.

 

인천이라는 도시를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한 도시명에 불과할 것이다. 얼마나 크고 얼마나 다양하며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지 상상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그 다양성을 제외하면, 어쩌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 학교 대표로 인천 부두항에도 가봤고 (단 하루 두세 시간 정도의 방문이었는데 왜 그렇게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지 모르겠다.) 가정을 이루고서는 아이와 함께 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에도 가 봤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 배경들이 마치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과 묘한 허전함, 샘솟는 애정 같은 감정들로 뒤섞였다. 나는 이 소설집이 "사람" 밖 "장소"로 보인 것이다. 특히 양진채 님의 <검은 설탕의 시간> 속 연립 주택은 내 어린 시절의 우리집과 너무나 닮아 있어 안타까움과 긴장감으로 어쩔 줄 몰랐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다들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형이 사라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형을 찾아 나서는가 하면<검은 설탕의 시간> 회사 부도로 일자리를 잃고 1년이 지난 뒤에야 환경미화원 자리를 얻었으나 가족의 냉대를 받는가 하면<2번 종점>, 어린 시절의 가정 불화로 끝없는 고뇌를 안고 있다<그물에 들다>.

 

"머리가 하얗게 쇠어도 나는 아는 게 없다. 인생이 뭔지,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얼 용서하고 무얼 용서받아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때그때 내 앞에 닥치는 상황은 또 무엇이고 그로 인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모르겠다."...<너의 중력> 중 67p

 

그래도 이들은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 매일 같이 백팔배를 하고, 반신불수 환자를 간호하고, 여기저기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서며 자신을 버티는 것이다.

 

"문득 그때 그 검은 설탕이 물에 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떠다니느 부유물만 따라내면 그 아래에 녹고 있는 달디단 설탕이 있지 않은가."...<검은 설탕의 시간> 중 39p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한두가지 고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 왜 이러고 있지...하고 생각하다가도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가다 보면 또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 참 잘 버텼다고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하루하루를 버텨보련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많아지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부유물처럼 걷어내고 저 아래 녹고 있는 설탕을 찾아 조금만 더 버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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