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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류전윈 지음, 문현선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중국에선 산아 제한 정책을 풀었다. 고령화되는 중국을 걱정해서이다. 지금까지 한 부부 당 한 자녀 원칙을 고수하고 그를 어기면 큰
벌금을 내게 했던 것을 깬 것이다. 이젠 한 부부 당 두 자녀가 허용된다. 어떻게 하면 출산률을 늘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지원금을 주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대체 산아 제한 정책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다. 가난할수록 피임은 쉽지 않고 저절로 생기는 아이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래서 중국에선 그동안 버려지는 아이들이나 낙태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회의 현실을 어떠한 가감없이 보여주는 신사실주의 작가 류진원의 작품이다. 따라서 소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중국을 들여다 보여준다. 책은 서론 : 그 해와 서론 : 20년 후, 본론 : 장난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거의
대부분이 서론에 해당하며 제일 마지막 부분 몇 페이지에만 본론이 할애되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에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었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도 흥미로웠지만 90 퍼센트에 해당하는 서론이 마치 한 권의 책인 듯 풀어내다 본론에 독자들의 허를 찔러 주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리설련은 작년 남편과 이혼했다. 진짜 이혼이 아닌 가짜 이혼이었다. 배 속의 아이 때문이었는데 이 아이가 둘째였음으로 불법이라 낙태를 할까
하다가 갑자기 느껴진 태동으로 인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리설련은 온갖 꾀를 생각해 보았고 주변에 비슷한 예가 있었던 부부를 떠올리며 가짜
이혼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6개월 후, 가짜 이혼이 들킬까 연락도 끊고 지냈던 남편은 그동안 가짜 이혼을 진짜 이혼으로 만들어 버려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고 그녀 또한 임신한 상태였다. 리설련은 분노한다.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생각하다 진짜 이혼이 되어버린 이
이혼을 가짜 이혼으로 인정받기로 하고 고소길에 들어선다.
리설련의 복수는 쉽지가 않다. 명백한 이혼증명서가 있기 때문에 진짜 이혼이 되어버린 가짜 이혼을 증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공직자들로 인해 리설련은 고소할 사람을 한 명, 두 명 자꾸만 늘려가며 더 윗사람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각급 정부와 각급 관원들이 이 인민 대중의 애환과 고통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하나 같이 나 몰라라 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미루며
처리하기 꺼렸기 때문이네....(중략) ... 깨알만 한 일이 결국 이렇게 수박만 해졌다네. 개미 한 마리가 코끼리로 변한
셈이지."...145p
처음엔 그저 사적인 작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믿어주지 않았기에 이 일은 자꾸만 커져서 이젠 그녀가 속한
진, 현, 시의 공직자들이 모두 긴장하게 되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리설련을 응원했다. 그녀 친구의 말처럼 "난 일 벌이는 것을
싫어하지만, 두려움 없이 일 벌이는 사람을 존경"(...43p)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결국 보답을 받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 허무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쏟은 그녀의 고소장은 과연 누구에게서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모든 것을 잊고 새로이
시작하려던 시점에서조차 그녀를 배신한 것들에 어떻게 복수해야 할까. 하지만 소설의 압권은 마지막 몇 페이지 되지 않는 본문에 있다.
"그런 말이 있지요. 목을 매는 데 한 나무만 고집하지 마라. 다른 나무로 바꾸면 시간을 벌 수 있다."...383p
행복한 삶이란, 내 가슴 속에 있는 한이나 울분, 화를 풀어내는 데 많은 시간을 쏟으며 낭비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에 집중하여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으로 한순간 한순간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리설련을 응원하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여성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할 데 없는 연약하고 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 없는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과 그대로 삶을 보여주며 자신의 말을 전하는 센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흠뻑 빠졌다 나왔음을 인정해야겠다. 현실에선 이렇게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하는 공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