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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ㅣ 사계절 1318 문고 101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15년 9월
평점 :
그리스 로마 신화는 유럽 문화의 근간이라고 한다. 이야기 하나하나 속에 담겨진 많은, 또다른 이야기가 그들의 생각, 지향하는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여러 이야기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려면 더 많은 그들의 역사와 배경지식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받아들이면 그저 재미있고 신나고 때론 아름답지만 인간의 욕망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들이지만
역시 그렇게만 읽기엔 조금 아쉽다.
<미궁 -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는 조금 색다른 책이다.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의 이야기(더불어
연결된 이야기도)를 담고 있다. 줄거리 식으로 간단히 이야기를 전하는 신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신화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그의 모험과 경험
속에 그의 생각과 성장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 생각을 따라 나 자신을 들여다 보고 함께 고민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와 함께 라비린토스, 미궁의 문 앞에 서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었을 때 포세이돈이라고 알려준
외할아버지 덕분에 그의 가슴 속엔 언제나 포세이돈이 함께 했다.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그만큼의 능력을 가진 이라고, 자신감과
용맹함으로 무장시켰던 것이다. 친아버지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도 그는 그 두 아버지를 모두 품었다. 그리고 라이벌격인
헤라클레스처럼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테세우스는 많은 괴물, 악당들을 죽이고 영웅의 길에 한 발 다가간다. 이것이
미궁 속으로 들어가기 전의 테세우스이다.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소년의 모습, 약간의 자만심과 무모할 정도의 용맹함, 아직 깊은 내면을 바라다볼
줄 모르는 교만함을 지닌 사람.
미궁 속에선 달랐다.
"미궁이 없다는 건,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투명하다는 거야. 겉과 속, 앞면과 뒷면이 똑같다는 거지. 그러므로 거기에는 삶도 없고 모험도
없고 역사도 없지 거기에는 찾아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우리 안에 미궁이 있으니까 우리 삶이 삶다워지는 거야. 우리 자신을 알아 가는 것,
우리 안의 미궁을 알아 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이고 모험이고 역사야."...84p
미궁 속에서, 어둡지만 완전한 어둠이 아닌 어둠 속에서 그는 순간이 영겁과 같고, 영겁이 순간과 같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디디며
자신을 잃을 뻔 했다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조금씩 성장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되돌아보고 "삶이란, 죽음이란, 영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드디어 미노타우로스를 만나고 그와 대화를 할 때에 미노타우로스 또한 이 젊은이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손에 쥔 실꾸리는 우리 삶의 지침이 되어주는 "지혜"일 것이다. 간혹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일까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어디로 가도 막혀 있을 것만 같은 길을 가고 있을 때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꾸리. 해낼 수 있다는
"의지"와 "용기",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해도, 잘못된 길로 들어서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실패를
경험 삼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책 속 테세우스와 이카루스를 통해 아직 제대로 생각할 줄 모르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내면, 미궁으로 들어가 마주 하고 바라보라고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선과 악, 흰색과 검은색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조금 더 넓은 생각의 뿌리를 보여준다. 내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