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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 엄마의 죽음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
시몬느 드 보부아르 지음, 성유보 옮김 / 청년정신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죽음이 익숙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 주변에 많은 이들이 떠나갔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하나 떠날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록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죽음이 삶의 일부이며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고 말했어도 말이다. 쉽게 삶을 놓을 수 있을까. 그만큼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주 편안한 죽음>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동시에 작가인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이다. 어느날 닥친 어머니의 병환.
처음엔 별 것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입원한 어머니 곁에서 간호를 시작한다. 하지만 대퇴골절 말고도 가끔 기억을 잃는다든지, 소화가 너무
안 돼 몇 끼니를 건너뛰는 상황이 되자 그 이유를 찾기 시작하고 그 결과 어머니의 몸 속에 암이 자라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내게 엄마는 늘 곁에서 살아 있는 존재였다. 언젠가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나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의 죽음은 그 탄생처럼 내가 알 수 없는 신비의 시간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30p
부모님이 살아계시다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부모님을 잃고 나서야 부모님이 내 곁에 안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면 너무 늦었다는 것. 그 생각에 한 번 더 무너지는 것이다.
입원 후 약 60여일의 기간 동안 시몬느는 여러 갈등을 겪는다.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머니의 암을 수술로 떼어내야 하는지, 어떤
다른 조치로 어머니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더 연명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어머니가 더이상 고통을 겪지 않게 해드리기 위해 어떤 다른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또한 병환 앞에 조금씩 뭔지는 엄마의 육신을 보며 자신과 엄마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엄마의 인생을 돌아본다. 엄마일 뿐만 아니라 한
여성이었을 엄마.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만들었을 그녀의 성격과 자신의 성격으로 인해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시몬느는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고 가까워진다.
"그날 저녁에 나는 이제는 다만 괴로움과 고통에 지나지 않는, 생명의 액체가 흘러 들어가고 있는 엄마의 팔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자문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가?"...109 p
"내가 그런 일을 겪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사회적 윤리에 굴복한 대신 나 자신의 가치관을 부정했던 것이다."...110p
이 소설은 비단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모습과 연명 치료에 대한 갈등 등 여러 주제를
함께 다룬다. 의식적으로 다룬 것이 아니라 엄마의 죽음 앞에서 갈등하는 자신의 이야기와 고뇌를 솔직하게, 가감없이 들려주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나 개인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돌발 사건이다. 죽음은, 그가 인식하고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무엇으로든 정당화
할 수 없는 폭력이다."...217p
이 마지막 문장이 그녀의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을 터이다. 엄마에게 무엇이 최선이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몬느의
선택은 옳았다. 그럼에도 어머니 자신에게는 갑자기 닥친 죽음이었기에 역시, 폭력일 수밖에 없다. 독실한 신자임에도 그 병원에선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하시는 엄마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