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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빈티지 : 디지털을 버리다 ㅣ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23
린지 레빗 지음, 유수아 옮김 / 내인생의책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아주 예쁜 그림의 표지가 흥미롭다. 딸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자기가 읽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한창 핸드폰에 빠져
지내는 딸을 위해서였다. 손에서 좀 내려놓으라는 암묵적인 요구랄까.^^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딸이 이 책을 그런 의도로 받아들일까 싶다. 깊은
주제에 닿기 이전에 연애 이야기에 집중할 것 같아서. 그럼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 하고 꼭 짚어줘야지. 흠~ 그럼 너무 꼰대 같은 엄마가 되는
걸까나. ㅋ
맬러리는 16살이다. 첫 남자친구가 생긴 지 1년이 넘었다. 학교에서나 하교 후에도 거의 붙어지낸다. 함께 숙제를 하고 데이트도 하고.
물론 그 중간중간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키스 타임까지. 하지만 맬러리는 학생으로서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 때문에 자꾸 들러붙는 남자친구
제러미의 키스를 피할 방법을 연구 중이다. 이런 나날이 계속 되었다면 맬러리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남친의 인터넷 게임 계정에 접속하게 되고 그 속의 사이버 아내와 제러미의 관계에 충격을 받는다.
"한 가지 물음이 귓가에 맴돌았다. 도대체 제러미한테 왜 이런 게 필요했을까? 뒤이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거센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로는 부족한가? 왜지?"...21p
사이버 상의 아내와 사랑을 속삭인다는 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맬러리는 자신에게는 털어놓지 않는 여러 고민들도 그녀에겐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1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의 사랑이 모두 허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은 제러미의 허상, 겉모습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정한다. 이 모든 일이 디지털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제 더이상 디지털에 의지한 삶을 살지 않겠다고. 그녀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90년대 초만 해도 주변에 이렇게 많은 디지털 기기들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이제 막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고 삐삐 정도. 약속이
어긋나면 어긋나는 대로. 오히려 그렇게 기다릴 사람을 배려해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흔적들이 있었다. 지금은 아이들도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아이팟이나 MP3까지 한 명이 몇 개의 디지털을 사용하는지 모른다. 핸드폰을 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운전을 하고, 게임을
하느라 숙제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자꾸 뒤로 밀린다. 디지털 기기가 없다면 하늘을 바라보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었을텐데 디지털 기기에
의지하고 의존하느라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맬러리는 할머니가 자신의 나이와 같았던 1962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무언가 낭만적이고 훨씬 인간적이며 아무 걱정 없이 신나는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머니가 그 시절 남긴 리스트를 대신 이룸으로서 실연의 상처를,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결국 내가 리스트로부터 얻길 원하는 건 이해와 공감이었다. 제러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지, 할머니가 삶을
어떻게 살아 오셨는지 이 질문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답을 얻게 된다면 리스트에 매달릴 이유로는 충분했다."...150p
엄청난 고통을 이겨나가는 맬러리를 통해 우리와 참 많이 다른 문화들이 의식되었다. 나 스스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가족, 친구들의 위로가 말이다. 내 딸이 이런 16살을 통과하고 있다면 난 조금 뒤에서 든든히 의지가 되어줄 수
있을까.
"얘야, 십 대로 살아가는 건 언제나 힘들단다."...153p
"뭔가 적극적인 행동을 하란 말이지. 배움은 위임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법이야."...154p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어떻게 지나느냐는 중요하다. 맬러리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주변의 도움으로 하나씩
성장해 나아간다.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들을 수행해 나아가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디지털 사이에서 중심 잃지 않기. 내가 먼저 바로 서면 디지털
기기들은 나를 도와주는 것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