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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의 첫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이안 옮김 / 열림원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이지)
처음 표지의 "허무하거나 사랑을 잃었거나 삶에 실망한 여자 셋이 세계 일주를 떠났다"라는 표어를 봤을 때 생각난 것은 "델마와
루이스"였다. 남편에게 갇혀 답답한 현실에 불만이던 델마와 웨이트리스로 식탁 사이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루이스의, 일상을 떠난 여행 이야기.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슬퍼해야 하는지, 그들의 결정에 공감하고 지지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들의 불 같은 여행과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가슴이 펑! 터질 것 같은 감정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남은 생의 첫날>은 그보단 훨씬 즐겁고 밝은 소설이다. 뒷표지의 "웃음과 감동의 로드 무비"가 딱 어울린다고 할까. 시작은
비슷하다. 스무 살에 결혼해 결혼생활 20년을 맞는 마리는 남편과 "늙은이처럼" 살고 있다. 그녀의 보물이었던 아이들은 다 커서 이미 독립했고
남편은 그의 많은 애인들을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부인에겐 의무적인 남편으로서만 존재했다. 그녀에게 사회 활동도 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집
안의 인형처럼 주부라는 이름 안에 가둬둔 채.
그런 그녀이지만 마리는 한 번도 남편 곁을 떠날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딸들의 강력한 지지에 마리는 남편의 특별한 40번째 생일
파티를 준비하며 그에게서의 독립을 결심한다. 그 계기로 그녀는 스스로에게 '고독 속의 세계 일주'라는 크루즈 세계 일주 여행을 선물한다.
'고독 속의 세계 일주'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100일간 배를 타고 일곱 개의 바다를 건너 다섯 개의 대륙을 지나
서른여섯 개의 나라를 방문하는 여행이다. 마리는 이 배에서 평생 함께 할 결심을 할 정도로 사랑했지만 큰 위기 앞에 그를 끝까지 지지해 주지
않아 버림 받은 안나와 뚱뚱한 몸매였던 예전의 자신을 버리고 새롭게 변신했으나 아직까지도 남자들에게 자신이 없어 남자들을 꼬시기 위해 배를 탄
카밀과 함께 어울리게 된다.
"이 여행에서 마리는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를 상상했었다. 여객선 안에서 사색에
잠기거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명상을 하고, 유적지들을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영장 안에서 하릴없이 떠다니는 그런 모습을 그렸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상상 속 그녀는 언제나 고독 속에 혼자였다. 그것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고독과 함께하는 이 세계 일주를
선택한 것이었다."...47p
책 속에서 마리는 처음엔 어쩌다 보니, 이후엔 그들이 너무 좋아져서 함께 어울리게 되지만 난 책을 읽는 내내 이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일상 속의 모든 걱정 훌훌 털고 이렇게 여기저기 떠다니며 100일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 과연 이 크루즈는 얼마나 할까..등등 정말 떠날 것처럼 말이다.
사실 마리는 고독을 통해 자신을 되찾으려 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좋아하는 손뜨개질을 하고 이리저리 생각의 부유 속을 떠다니면
남편에게 얽매여 있던 20년을 뒤로 하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마리는 오히려 도움이 절실했던 60대의 안나와
너무나 외로움을 타는 20대의 카밀과 함께 어울리며 진정 행복한 여행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꼭 혼자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께닫게
된다.
"화려하고 신비롭게만 보이던 무대 뒤가 사실은 매우 복잡하며, 생각만큼 아름다운 것들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때로 실망감을 안겨 주기도
하는 추한 것들로도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래도 삶은 계속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공연이 시작될 때마다 매번 삶의 무대 위로
뛰어든다."...212p
그래서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다. 어둡고 힘들고 괴로운 어제는 훌훌 털고 오늘부터는 내 남은 첫날로 새롭고 희망차고 즐겁게
보내자고, 그렇게 힘을 내자고.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