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하루키와 음악
백영옥 외 지음 / 그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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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루키의 책을 처음 접한 건 21살 때였다. 책에 파묻혀 지냈던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암울한 중고등학교 시절엔 거의 책을 펼쳐보지 못했기에 대학생이 되자마자 그 남아도는 시간(아르바이트나 학과 공부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에 그동안 못한 독서를 마구마구 해치웠던 것이다. 파란색 배경에 사람 그림자가 뻥 뚫린 듯한 표지는 제목처럼 "상실"이었다. 그렇게 <상실의 시대(원제 : 노르웨이의 숲)>를 처음 읽고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어른들의 책다운 책을 처음 읽었다고나 할까. 나의 20대는 하루키와 함께였다. 누군가 내 인생의 책을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상실의 시대>로 답했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그를 좀 더 가까이 곁에 두고 싶었으며 소설을 넘어 에세이를 접하고 이젠 정말 하루키의 팬임을 주장하며 무라카미 하루키 홈페이지에 가입해 일본 원서 번역팀에 들기도 했다. 하,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아마도 결혼하고 아이 낳고 키우며 하루키는 이미 잊혀졌고 그나마 책을 놓지 않았던 건 아이를 위한 책을 고르면서였다.

 

어느새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신기하다. 다시 "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다시 하루키의 책으로 돌아오진 못했다. 물론 하루키의 책들은 언제나 저 깊은 곳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 젊은 시절의 열정은 사라지고 그저 그 젊음의 추억이라고나 할까, 향수라고나 할까... 그런 자리가 된 것이다.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강렬하게 '아, 이 책을 읽으면 왠지 다시 하루키로 돌아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도 나의 책이라고 생각했던 <상실의 시대>가 이젠 줄거리도 거의 생각나지 않는 것에 어처구니 없지만 그래도 다시 그 열정있는 독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그렇게 이 책을 들었다.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전편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하루키의 음악"에 대한 책이다. 문학, 재즈, 팝송, 클래식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하루키 문학 속에 들어있는 음악의 역할과 배경지식, 그리고 그 음악 자체까지 정리하고 설명해 준다. 네 명의 전문가는 각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하루키를 설명하고 있어 각각의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하루키의 작품들을 읽고 해석하고 분류할 수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백영옥 작가의 하루키 이야기는 자신의 미발표 소설들과 어우러져 조금 특이하게 읽을 수 있다. 워낙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푹 빠져 읽다 보면 하루키와 백영옥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소설들이 마구 섞여 조화로워진다. 특히 어떻게 읽어도 백영옥 작가에게는 고독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야기로 읽힐 것 같다는 말에 조금은 놀랐는데 나에게 하루키의 소설들은 언제나 충격적이면서도 강렬하고 너무 어렵게 읽혀졌기 때문이다.

 

황덕호 재즈 평론가나 팝을 설명한 정일서 PD, 클래식을 담당한 윤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들의 글 또한 나에겐 새로운 세계였다. 전문가들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모르는, 이렇게나 다양하고 넓은 지식들에 그야말로 허우적댔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을 소설에, 에세이에 담은 하루키야말로 대단한 사람 아닌가!

 

"그가 소설과 에세이 등 자신의 수많은 작품 속에 새겨넣은 음악의 색채 또한 다채롭기 그지없는데, 특히 팝송은 그 분량에 있어서만큼은 재즈와 클래식을 압도할 정도로 방대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 곳곳에 녹아 있는 팝송을 발견하고, 그것이 위치한 배경과 쓰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때로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197p

 

음악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무지한 나이기에 20대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제대로 이해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격렬하게 하루키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번엔 기필코 음악들을 찾아 들으며 이 책을 옆에 두고 말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하루키를 읽는다면 난 조금 더 하루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때만큼의 격렬함은 아니더라도 오히려 그 깊은 의미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리스트부터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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