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퓨처클래식 2
바데이 라트너 지음, 황보석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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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주 정권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전 국민의 1/3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처음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국민들은 환영했다. 하지만 폴 포트는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마구 학살했던 것이다.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될 때까지.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는 작가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고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 강제 노동과 굶주림, 처형 등의 위기를 겪은 후 많은 가족을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아 남은 실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심지어 이 책의 주인공이자 작가는 왕실 사람이다. 그녀가 이 혹독한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남았는지 놀랍기만 하다.

 

책의 주인공은 일곱 살이다. 책은 시종 그녀의 사유를 따라 움직이는데 그녀의 풍성한 감성과 놀랍도록 깊은 사색, 상상력까지 더해져 때론 아이의 마음으로, 때론 훨씬 더 나이 많은 어른의 정신연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책의 앞부분을 읽는 동안은 난 이 아이가 10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아이는 주변의 작은 움직임, 소리,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고 많은 것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을 하고 또 했다. 아마도 그런 그녀의 정신력이 그녀를 지켜준 것이 아닐지.

 

라미는 당시 캄보디아 왕조의 왕자였던 시소와스 아유라반의 딸이다. 라미는 공주로서의 교육을 받고 자랐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모든 교육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가 들려주던 많은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라미가 세상을 향해 잘 바라볼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라미, 너 스스로 그걸 보았으면 해. 네 주위에서 네가 그 어떤 추악함과 파괴를 목격했건, 나는 네가 언제나 여기저기서 아주 조금씩 얼핏얼핏 보는 아름다움이 신들의 거처를 반영한 것이라고 믿었으면 해. 그건 실제로 있는 거니까, 라미. 세상에는 그런 곳, 그런 신성한 곳이 있어. 그리고 너는 그곳을 마음속에 그리고 꿈을 꾸려고만 하면 돼. 그곳은 네 마음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으니까."...126p

 

라미가, 크메르 루주 정권 아래에서 그 숱한 더럽고 끔찍한 것들을 수없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아버지의 이야기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건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아름다운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그렇게 소중하던 아버지가 자신의 실수로 끌려가고, 자신과 같은 소아마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 번쯤 생각했던 동생을 말라리아로 잃고, 내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도 라미는 그 더러운 것들 사이에 아빠가 존재하고 있음을, 테보다(천사)들이 굽어보고 있음을, 내 가족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기억하고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500여 페이지를 읽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사라졌다. 아무 잘못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목적과 방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적 추억의 한 장면이 있다. 엄마와 동생과 영화관에 갔고, 너무나 지루해 푹~ 자고 일어났더니 영화는 거의 막바지였고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그 장면, 끝도 없는 지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던 헤골들, 시체들. 그 장면이 너무나 강렬해서 나는 무려 30년이 지났는데도 그 영화의 제목을 지금까지도 잘 기억하고 있다. "킬링 필드" 아직도 많은 땅에선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하고 도와주지 않는다면 라미 같은 아이들은 살아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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