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잉글리시 티처 푸른숲 어린이 문학 34
박관희 지음, 이수영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들에게도 이런 저런 고민들이 있다. 어리다고, 그런 고민쯤이야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고, 혹은 시시한 고민이라고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에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고 너무나 심각한 일일 수도 있다. 어른의 입장에서 그런 아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아이들은 더욱더 성장할 것이다.

 

<마이 잉글리시 티처>는 이런저런 상황 속에 갇힌 네 명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그다지 어리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의 상황을, 환경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입장이며 어떻게 해서든 함께 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르다. 오히려 어른들은 자신들만의 입장만 주장하고 아이들을 배려해주려 하지 않으며 아이들더러 이해하라고 강요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른으로서 너무나 창피하고 답답하고 화끈거린다.

 

첫번째 이야기 "마이 잉글리시 티처"는 "톱 클래스"에 들기 위해 애쓰는 엄마와 그런 아이들 속에서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선희(써니)의 에피소드이다. 지금 우리 교육 환경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토미'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토미' 선생님의 행동 보다는 선희 엄마와 선희, 주변 엄마들의 반응과 아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마음 속에 남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이런 환경 속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 "아빠하고 나하고"는 또 어떤가. 아빠의 실직, 엄마의 공부방 운영, 갈 곳 없어 밖에서 떠도는 아이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낯설지 않을까. 우리 아빠 만큼은...., 우리 아이 만큼은.... 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누구든지 처할 수 있는 상황 속에 가족은 서로를 피하고 창피해 하면서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고 서로를 이해하려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 "여인숙에서 사는 아이"는 특히 더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이다.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는 또다른 아이의 장난과 그런 아들을 두둔하며 앞과 뒤가 다른 가면을 쓴 어른들의 모습이 또 얼마나 잘 묘사되어 있는지.

 

네번째 이야기 "어디까지 왔니" 또한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의 뭣 모르는 선의는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네 이야기 모두를 통해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선하고 착하고 순수하다. 어른들과 소통하려 하고 가능하면 이해해 보려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르다. 지금 나만 힘들다고, 그러니 너희들은 저리 가라고 밀어낸다. 동화는 어둡다. 특별한 결론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아이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충분히 공감할 것이고 어른들의 행동에 답답해 할 것이다. 어른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무언가 반성할 거리를 찾는다면 이제부터 서로가 소통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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