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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린 우리 누나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33
베티나 옵레히트 지음, 전은경 옮김, 송효정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내게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도, 의사소통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도 않는 사촌동생이 한 명 있다. 어릴 적 그 동생을 만날 때에는 항상 조심스러웠고 마치 별세계에서 온 듯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가족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만나는 외삼촌댁은 어느샌가 그 동생의 존재가 빠져있다. 어릴 때에는 어떻게든 데리고 다니셨던 것 같은데 이제 성인이 된 동생을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 데리고 다니는 게 많이 부담스러우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외삼촌이나 외숙모께 전해듣는 동생의 이야기는 항상 밝고 즐거워 보여 장애가 있다고 모두 불행한 것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보다 어린 우리 누나>>는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리자네 가족 이야기이다. 동생인 얀은 누나를 돌보며 점점 지쳐가는 엄마와 집보다 바깥에 더 열심인 아빠,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누나 사이에서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얀에게는 자신과 말이 통하는 앵무새와 장난감들, 이웃집에 사는 친한 쌍둥이 친구 마라와 니코가 있다. 엄마가 누나에게 모든 신경을 쏟아 자신에게 조금은 소홀하다 해도 가족을 원망하거나 탓해본 적이 없는 착한 아이이다.
오히려 얀은 그 특유의 섬세함과 바깥을 향한 레이더를 가지고 그 누구보다 더 깊이 누나를 이해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수록 힘들어하는 엄마가 언젠가는 우리를 두고 떠날 거라고, 이제 모두 손을 놓고 엄마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가족인데, 조금 더 참아주지 않는 엄마가 야속하고, 속상할 뿐이다. 얀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님의 입장 보다는 누나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깨지 않으려는 얀의 반항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기특해 보이는지!
가족이라면 무조건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가족이라면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최대한 배려하고 이해하고 이야기 나누며 온갖 추억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얀의 조그만 반항들이 훨씬 더 공감되는 것이다. 하지만 얀이 엄마를 조금씩 이해해 나갔듯이 한 사람으로 인해 나머지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 간다면, 또한 그 한 사람의 삶도 다른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을 때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모두의 행복을 지켜 나아가는 것이 훨씬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엄마는 친구가 없어."
얀은 이렇게 말하고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87p
<<나보다 어린 우리 누나>>는 장애를 가진 한 가족의 이야기를 참으로 진실되게 풀어놓았다. 헛된 희망이나 해피엔딩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이 겪을 고통이나 고민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그들이 선택한 결론을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보게끔 말이다. 어느 방법이 옳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가족들만의 고민이 녹아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일테니 말이다. 다만 그 누구보다 누나를 이해하고 누나와 함께 하고 싶어했던 얀의 마음이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잔상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든든한 동생이 있다면 리자의 삶도 전혀 불행한 것은 아닐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