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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내 맘을 몰라 -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27
재니 호커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황세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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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자 아이라면 한 번쯤 형제과, 혹은 남자와의 차별에 기가 막히고 억울했던 일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미 21세기이고 남녀 차별이 많이 없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들 선호 사상이나 남녀 차별이 은연 중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 혹은 동양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영국 작가의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으니 무척 신기하기만 하다.
리즈는 아빠와 오빠와 함께 산다. 엄마가 어릴 적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느끼지 못했을지도 몰랐을 것들이 리즈가 자라 사춘기가 되니 억울하고 화가 나는 일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아빠와 오빠의 무심함 때문이다.
"불공평하다고요."
리즈는 이렇게 말하고는 베이컨을 들고 풀밭으로 나가버렸다. 앨런은 늘 여자들에 대해 멍청한 소리를 지껄여대지만 리즈 말고는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34p

그래도 리즈에겐 가슴 속에 담겨있는 것들을 풀어놓을 수단이 있다. 바로 그림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빠를 따라 온 오토바이 경주 대회가 열리는 칼튼 홀 정원에서 리즈는 독특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듣게 되는 놀라운 이야기는 리즈에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론 그때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아갈 때가 훨씬 더 행복했어!"...93p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샐리 백이 소년으로 지냈던 순간들보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자신만의 삶을 되찾았을 때가 훨씬 행복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리즈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은 아빠와 자기 좋을대로만 행동하는 오빠 사이에서 차라리 나도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리즈의 다짐 부분이 확실하게 묘사되지 않고 조금의 여지를 남겨주었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미로 같은 정원 그림들과 분위기가 샐리 백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리며 오묘하게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아빠는 내 맘을 몰라>는 그저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섬세한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그 정체성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리즈 자신,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극적인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짧은 이야기를 통해 소녀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