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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 소설에는 그 어떤 나라의 소설들보다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읽은 듯, 안읽은 듯 편안한 소설 분야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언가 심각하고 심오한 주제를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이나 대서사적 구성, 사회적 부조리 등을 꼬집는 소재와 주제가 아닌... 그저 우리 일상을 편안하게 읊조리듯 써놓은 이런 소설들은 에세이가 아닌데도 우리의 삶을 그저 나열해 놓는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심심한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왠지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단 한두시간만에 다 읽어버릴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면 왠지 아쉽고 자꾸만 생각난다.
<<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도 그렇다. 왠지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어느 한적한 마을에 가면 있을 듯한 2류 영화관이 있고, 노면 전차가 다니는 이 길은 사람들에게 옛추억을 선사하며 설레임을 갖게 한다. 옛날 영화에 심취(실은 그 영화들에 등장하는 한 여배우에 대한 것이지만)한 오리군은 그런 설레임을 간직하며 영화를 보고 싶어 '쓰키부네초'로 이사를 한다. 그야말로 시대의 역행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 핸드폰도 없애버리고 싶고 직장을 구하는 대신 팝콘을 들고 보고 또 본 옛날 영화를 감상한다. 소설의 주인공 치곤 참으로 독특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주인공이 하나도 특이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소설 속에선 이런 주인공보다 한술 더 뜨는 샌드위치 가게 트르와의 주인 안도 씨도 있고 그의 아들 리쓰군도 있다. 거기에 집주인 마담은 또 어떤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도시 생활과는 전혀 다른 이 쓰키부네초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적시고 그 마음은 자꾸만 퍼져나간다. 큰 사건도, 큰 감동도 없지만 그냥 이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놓고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 인간은 안쓰러울 정도로 단순하다. 그런 단순한 삶이 이것저것 모여 가게 안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146p
"나는 언젠가 영화 대본을 쓰고 싶어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휘파람> 같이 지극히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움직임도 없지만 그래도 역시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있는,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해가는 것 사이에서 무력한 마을 사람들은 종종 길을 헤매다 말을 잃는다."...211p
영화 속에선 그렇지만 쓰키부네초에선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힘이 되어준다. 그래서 따뜻하다. 이런 마을에서 이런 삶을 사는 그들이 부러울 지경이다. 매일 똑같은 듯 조금씩 발전하지만 옛날 것도 지키고 싶어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좋다. 가끔은 이렇게 편안하게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소설이 내게 힘이 된다.
